주간동아 821

2012.01.16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이 겨울 놓치면 후회할 ‘4대 명산’ 눈꽃 산행

  • 김화성 동아일보 편집국 전문기자 mars@donga.com

    입력2012-01-16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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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방

    그걸 글이라고 쓰는 거니

    봐라

    어둠 속에서

    써내려간 글이지만



    하나 흐트러짐 없이

    눈길 닿는 곳마다

    순박하게 쓰여진

    하얀 언어들을

    알겠니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진정한 시인은

    자연

    그 자체라는 것을.

    -박우복, ‘눈꽃 시인’

    겨울 산은 뼈만 남았다. 이중섭의 그림 ‘소’ 같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 굵은 어깨뼈는 추위에 얼어 뻣뻣하다. 가만히 지르밟기만 해도 우두둑 으스러질 것 같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뼈가 삭는다.

    겨울 산 그 삭은 뼈에 하얀 꽃이 핀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꽃이 우르르 돋는다. 밤새 소리 없이 다발로 핀다. 눈 타래마다 송이송이 눈이 부시다. 그렇다. 겨울 산은 눈꽃이 으뜸이다. 눈꽃을 보러, 눈을 밟는다. 눈을 맞으며, 설산을 오른다.

    겨울 산은 눈 밟는 재미로 오른다. ‘싸르륵 사그락’ 방금 내린 싸락눈 밟는 소리, ‘보드득 보드득’ 행여 미끄러질까 봐 조심조심 밟는 소리, 마치 곰삭은 홍어 뼈를 잇몸으로 씹는 것 같다. ‘저벅 부드득’ 발뒤꿈치부터 지르밟는 소리, ‘퍼벅 퍼버벅’ 아이들이 종종걸음 치며 밟는 소리, ‘저벅 절푸덕’ 내려갈 때 내디디며 밟는 소리, 발바닥 가운데 은근히 부풀어오는 물렁한 촉감이 쏠쏠하다.

    사람은 저마다 눈 밟는 게 다르다. 여성은 나긋나긋 밟는다. 살몃살몃 지그시 밟는다. 살금살금 어르듯 밟는다. 남자는 퉁퉁 몸을 실어 밟는다. 다리를 쭉쭉 뻗어 퍽퍽 내디딘다. 그러다 한순간 아이쿠! 넉장거리로 나뒹군다.

    겨울 산에 오르려면 아이젠과 스틱은 필수 장비다. 신발 속으로 파고드는 눈과 정강이의 찬 기운을 막아주는 스패츠도 물론이다. 신발은 발목 끈을 다시 한 번 꽉 조여야 한다. 눈길은 조금씩 밀리는 맛으로 걸어야 제맛이다.

    설산의 눈꽃은 높이에 따라 다르다. 중턱까지는 낙우송, 졸참나무, 물박달나무, 고로쇠나무, 생강나무가 온몸에 눈꽃을 매달고 있다. 층층나무, 가래나무, 물푸레나무가 앙증스러운 눈꽃을 달고 있다. 눈꽃은 나뭇가지에 눈이 쌓여 된 것이다. 눈꽃덩어리가 너무 많이 쌓이면, 한순간 스르르 통째로 떨어진다. 계속 내리는 눈의 무게에 속절없이 지고 만다. 모가지가 툭 꺾이는 동백꽃 같다.

    역시 눈꽃의 으뜸은 상고대(Air Hoar)다. 꼭대기 부근의 철쭉, 분비나무, 주목, 구상나무, 잣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하나같이 눈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다. 상고대는 나무서리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이 얼어붙은 ‘얼음꽃’이다. 겨울나무의 사리 ‘눈물꽃’이다. 한줄기 겨울햇살에도 반짝반짝 빛난다.

    상고대는 봉우리 부근에서 핀다. 산잔등의 키 작은 철쭉 무리 가지에 얼음 꼬마전구가 덕지덕지 매달려 있다. 억새 쑥대머리에도 하얀 얼음꽃이 피었다. ‘살아 1000년 죽어 1000년’ 주목나무에도 주렁주렁 매달려 수정처럼 빛난다. 영락없는 크리스마스트리다. 금방이라도 깜박깜박 거릴 것 같다.

    나뭇가지는 겨우내 상고대를 피우며 동안거를 한다. 살은 얼고 피부는 트다 못해 얼어터진다. 그래도 얼음꽃을 피우고 또 피운다. 콜록콜록 마른 기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원도 대관령 덕장의 황태처럼 얼음구덩이에서 산다. 나무는 그렇게 얼음꽃을 수없이 피운 뒤에야 비로소 새봄 황홀한 꽃을 피워 올린다.

    눈꽃은 완만한 산이 으뜸이다. 태백산, 덕유산, 무등산, 한라산이 그렇다. 하나같이 흙산이다. 암소 잔등이처럼 편안하다. 가파른 경사가 없어 좋다. 느릿느릿 산잔등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봉우리에 닿는다.

    #태백산 - 높되 험하지 않은 해맞이 명소

    ‘깔딱 고개’ 하나 없이 5시간이면 완주…4000여 그루 주목의 눈꽃이 황홀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태백산에 고시랑고시랑 눈이 내린다. 눈은 이미 수북이 쌓였다. 사위는 쥐죽은 듯 적막하다. ‘뽀드득 뽀득’ 눈 밟는 소리만 빡~빡 밀린다. 귓속의 공기가 팽팽해진다. ‘두둑 두두둑’ 문득 간밤에 얼었던 눈 허리 밟는 소리. 뭉툭하다. 발바닥이 푹 꺼진다. 눈이 무릎까지 빠진다.

    태백산은 편안하다. 낙동강과 한강의 고향. 크고 작은 온갖 산의 머리. 살집 두툼한 육산(肉山)이다. 굵은 뼈는 살집에 숨었다.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후덕하다. 높되 험하지 않고, 웅장하면서도 그 품이 아늑하다. 역시 ‘큰 밝음의 산’답다.

    겨울 태백산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그만큼 완만하고 코스도 짧다. 사길령매표소, 유일사매표소, 백단사매표소, 당골 광장 어느 코스나 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오르는 데 2~3시간, 내려오는 데 1~2시간. 대부분 산은 7푼 능선 위쪽으로는 가파르다. 하지만 태백산은 8푼 능선 위쪽이 평평한 언덕, 즉 평전(平田)이다. 영락없는 암소 잔등이다. 그곳은 5, 6월 철쭉꽃이 장관이다.

    겨울엔 눈꽃이 황홀하다. 8푼 능선까지 오르는 데도 ‘깔딱 고개’ 같은 것은 없다. 완만하다. 더구나 출발 지점이 이미 해발 850m를 넘는다(유일사주차장 850m). 꼭대기 장군봉 1567m까지 반쯤 거저먹고 오르는 셈이다.

    태백산 보호 주목은 모두 3928그루다. 설악산, 덕유산, 소백산, 주목보다 잘생겼다. 키도 크고 붉은 근육질 몸매가 탄탄하다. 붉은 열매, 붉은 껍질에 늘 푸른 뾰족 바늘잎. 그 사이로 주렁주렁 피운 하얀 얼음꽃. 살아 1000년 죽어 1000년, 그리고 땅바닥에 장렬히 쓰러져서 1000년. 얼음꽃을 무려 3000년 동안 피운다.

    태백산 천제단은 새해 해돋이 으뜸 명소다. 인터넷여행숙박사이트 인터파크투어 조사에 따르면, 2012 임진년 흑룡의 해 해돋이 예약 건수는 태백산 천제단이 23.4%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는 포항 호미곶 16.9%, 해남 땅끝 13%. 그렇다. 꼿꼿하게 서 있는 얼음꽃 주목나무. 그 뒤로 첩첩이 웅크린 겨울 태백의 장엄한 어깨뼈. 용처럼 꿈틀거리는 추사체. 윙윙 불어대는 맵싸한 칼바람. 푸른 동해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해. 태백산 천제단 위로 두둥실 떠오르는 붉은 햇덩이.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새벽 3~4시쯤 오르기 시작해 일출직전 장군봉이나 천제단에 이르면 된다. 삼대(三代)가 덕을 쌓아야 태백산 해돋이를 볼 수 있다던가. 날씨가 좋고 나쁜 것은 하늘의 뜻이다.

    태백산 눈 축제

    올핸 1월 27일~2월 5일… “함 가보시죠”


    태백산에선 1994년부터 해마다 1월이면 눈 축제가 열린다. 2012년 눈 축제는 1월 27일(금)부터 2월 5일(일)까지 태백산 일대에서 펼쳐진다. 국제눈조각전시회, 눈사람페스티벌, 눈으로 만든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눈밭미니축구대회, 앉은뱅이썰매대회, 오리궁둥이 닮은 오궁썰매대회, 외발썰매대회, 개썰매대회, 태백산눈꽃등산대회…. 눈에 파묻혀 어린아이 마음으로 한바탕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스트레스가 사르르 사라진다. 숙박 등은 예약 필수.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교통

    ·승용차 : 서울~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남원주나들목~중앙고속도로~서제천나들목~5번국도~제천~영월~38번국도~사북~고한~태백

    ·버스 : 동서울터미널~태백행(06시 첫차, 23시 막차) 하루 30회 운행, 3시간 20분 소요

    ·기차 : 청량리에서 태백행(07시 첫차, 22시 40분 막차) 하루 6회 운행, 4시간 20분 소요

    ※태백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태백산 유일사, 당골로 이동(택시비 1만4000원 안팎)

    ●먹을거리 삼수동 태백순두부 033-553-8484, 토속한정식 너와집 033-553-9922, 태백산가는길 한식 033-554-1600, 한국관생등심 033-554-3205, 미락 돌솥밥 불고기 033-552-2855, 태백닭갈비(쫄면, 우동, 라면의 3색 사리) 033-553-8119, 태백 김서방네 닭갈비 033-553-6378

    ●숙박 콘도형(취사 가능) 태백산민박촌, 15동 73실 규모, 033-553-7460

    태백시청문화관광과 033-550-2081, 태백산도립공원 033-550-2741, 태백역 033-552-7788, 태백시외버스터미널 033-552-3100


    #무등산 - 해발 850m 위로 펼쳐지는 찰나의 설국

    논 물꼬 보듯 부담 없는 거리…10~16m 선돌들이 눈가루 뒤집어써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무등산(1187m)은 아버지의 등짝이다. 넓고 편안하다. 광주 사람은 그 잔등에서 논다. 찧고 까불며 목말을 탄다. 무등산 등성이는 평평하다. 봉우리도 ‘싸드락싸드락, 싸목싸목(느릿느릿)’ 가다 보면 닿는다. 여기저기 해찰하며 가더라도, 서너 시간이면 너끈하다. 황소 되새김질 코스다. 어디가 등짝이고, 어디가 골짜기인지 알 수 없다. 가끔 너덜겅을 만날 뿐이다. 너덜겅은 ‘작은 돌이 흩어진 비탈’을 말한다.

    무등산은 언제나 말없이 엎드려 있다. 밋밋한 등허리를 다 드러내놓고 황소처럼 웅크리고 있다. 꼭대기는 하늘, 땅, 사람(天地人) 3부분으로 이뤄졌다. 천왕봉(天王峰), 지왕봉(地王峰), 인왕봉(人王峰)이 그것이다. 천왕봉이 약간 높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그만그만하다. 하늘, 사람, 땅이 하나다.

    무등산은 광주 사람의 ‘동네 공원’이다. 어머니 젖가슴 같은 흙산이다. 삐죽한 바위는 950m 위쪽에 있다. ‘뭉툭한 돌뿔들’이 봉우리 부근에만 솟아 있다. 누구든 맘만 먹으면 뒷짐 진 채, 논 물꼬 보듯 휑하니 다녀올 수 있다. 아무리 먼 곳도 도시 한가운데서 그 거리가 15km를 넘지 않는다. 무등산은 돈 받는 곳도 없다. 사방이 산문이요, 툭 터진 길이다. 무등 아래 사람 없고, 무등 위에 역시 사람 없다. 주말엔 2만여 명이 몰려든다. 서쪽 자락에 있는 증심사 입구는 늘 북새통이다.

    무등산에서는 눈꽃이 금세 피었다 금세 진다. 밤새 눈이 오면 활짝 피었다, 햇살이 비치면 한순간 녹아버린다. 눈 내린 아침 서둘러 올라야 봉우리의 우뚝우뚝한 돌에 핀 눈꽃을 볼 수 있다. 보통 해발 850m가 넘으면 본격적인 ‘눈의 나라’가 시작된다. 우뚝우뚝 바위가 이마에 눈 모자를 쓰고 있다. 규봉암(950m), 입석대(1017m), 서석대(1100m)…. 질박하다. 추사체다.

    ‘서툴고 졸렬하다/ 지독히 못생긴 저 글씨에/ 내 심장 그만 멎는다/ 붓 천 자루가 닳아 몽당붓이 되고/ 벼루 열 개가 닳아 구멍이 뚫렸다’(장석주, ‘추사’).

    조물주는 지상 최고의 요리사다. 그 어떤 요리사도 입석대 같은 작품을 못 만든다. 직사각형으로 길쭉길쭉 잘라낸 10~16m 선돌. 오각형, 육각형, 칠각형, 팔각형…. 입석대 서석대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다.

    ‘천만년 비바람에 깎이고 떨어지고/ 늙도록 젊은 모양이 죽은 듯 살아 있는 모양이/ 찌르면 끓는 피 한 줄 솟아날 듯하여라’(이은상, ‘입석대’).

    눈꽃이 매달린 서석대는 ‘하얀 면류관의 수정 병풍’이다. 눈가루를 뒤집어쓴 이마. 은발머리. 발아래 나무마다 눈꽃이 다발로 피었다. 햇빛이 눈부시다. 눈꽃덩어리가 스르르 뱀처럼 풀린다. 눈 낙숫물이다.

    무등(無等)은 불교의 ‘무유등등(無有等等)’이라는 말에서 왔다. ‘부처는 이 세상 모든 중생과 처음부터 아예 견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모든 생명은 부처다. 우주보다 크고 존귀하다. 무등산은 모든 생명을 품는다. 평평하면서 크다.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교통 무등산은 광주시내 어느 곳에서나 쉽게 오를 수 있다. 보통 무등산 옛길 코스를 따라 오른다.

    ·광천고속버스터미널 : 1187번 시내버스(번호가 무등산 높이와 같음) 25분 간격. 토·일요일에는 1187-1번(산수오거리~원효사) 셔틀버스 운행. 광천터미널~신세계백화점~서구보건소~그린파크~신안사거리~광주역~롯데백화점~금남로5가역~금남로4가역~법원입구~신수오거리(옛길1구간입구)~산수무등파크전망대~충장사~원효사(옛길 2구간 입구)

    ·광주공항 : 1000번 시내버스(무등산관광호텔행)를 타고 가다가 신수오거리 하차. 20분 간격. 광주공항~상무쇼핑~광천터미널~도청~동구청~조대입구~지산사거리~산수오거리~무등산관광호텔

    ·산수오거리행 시내버스 : 1, 15, 27, 28, 74, 80, 187, 1000, 1187번

    ●먹을거리 귀향정 062-522-2743, 북구 풍향동, 한식 코스요리, 해물샤브샤브, 생선조림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 : 062-368-1187, 062-365-1187

    #덕유산 - 눈밭 너머로 크고 작은 산의 파노라마

    계곡 따라 산책, 걸으면 물빛 맑고 주목 향 그윽… 곤돌라 타는 재미도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덕유산(德裕山)은 흙산이다. 둥글둥글하고 맏며느리처럼 후덕하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산이다. 뭇 생명을 따뜻하게 품는다. 나라에 난리가 날 때마다 백성은 앞다퉈 덕유산 품으로 숨었다. 그 넉넉한 품 안에서 목숨을 건졌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이 덕유산으로 스며들어 생명을 유지했다. 왜군은 덕유산을 그냥 지나쳤다. 왜군이 덕유산으로 들어오려 할 때마다 안개와 구름이 짙게 일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구천동 계곡은 덕유산 중에서도 가장 구불구불하고 긴 골짜기다. 전설에 따르면 ‘9000명의 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9000명의 스님이 머물렀다’는 뜻의 ‘구천둔(九千屯)’이 오늘날 ‘구천동’이 됐다는 것이다. 무주 설천면의 ‘설천(雪川)’도 9000명의 스님이 밥을 지을 때마다 쌀뜨물이 시냇물을 하얗게 만들어 그랬다고 한다. 다른 의견도 있다. 구천동 계곡의 굽이가 9000굽이라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다.

    구천동은 신라와 백제의 경계 관문이던 나제통문(羅濟通門)에서부터 덕유산 으뜸 봉우리인 향적봉까지 25km를 말한다. 산꼭대기에 쏟아진 빗물은 구절양장 구불구불, 돌고 돌아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덕유산은 보통 구천동계곡의 삼공탐방지원센터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한다. 계곡을 따라 산책하듯 느릿느릿 걸으면 된다. 왼쪽 아스팔트길(저전거길)보다 오른쪽 자연관찰로가 호젓하다. 계곡물소리가 우렁우렁 힘차다. 굽이굽이 푸른 웅덩이요, 작은 폭포다. 그 물속에서는 참갈겨니, 금강모치, 쉬리, 돌상어, 참종개 등이 겨울을 나고 있다. 바람이 알싸하다. 물빛은 맑고 그윽하다.

    향적봉(香積峰) 오르는 길은 실제 백련사에서부터 시작된다. 2.5km의 거리지만 대부분 눈길이다. 향적봉은 ‘향기 가득한 봉우리’다. 주목나무 향이 진하다. 눈이 한 길이다. 상고대가 황홀하다. 맑은 날엔 눈밭 너머 가야산, 황매산, 중봉, 지리산 천왕봉,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산, 서봉, 대둔산, 계룡산, 적상산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산 뒤엔 산이 주름져 서 있다. 산 첩첩, 눈 아슴아슴. 얼음바위에도 얼음꽃이 활짝 피었다. 크고 작은 산과 들이 모두 발아래 있다.

    향적봉에서 곤돌라가 있는 설천봉까지는 20분 거리다. 눈밭 얼음꽃길을 따라가면 나온다. 스노보드나 스키를 즐기는 사람으로 발길이 북적인다. S자로 미끌미끌 내려가는 그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남덕유 쪽으로 향하려면 중봉으로 가야 한다. 중봉에서 보는 덕유산도 장관이다. 노약자들은 아예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이른 뒤 향적봉으로 향한다. 향적봉에서 경치를 감상한 뒤 다시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겨울 덕유산은 아늑하다. 매운바람도 눈꽃이 피면 잦아든다. 얼음꽃이 피면 하늘이 열린다. 하늘은 구만리장천 저 멀리 푸르게 뻗어 있다. 향적봉에 오르면 온갖 소리가 눈에 보인다. 관음(觀音)이다. 바람소리, 나무들의 신음소리, 벌레들의 겨울잠 숨소리…. 위대한 적막이다.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고은, ‘눈길’).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교통

    ·승용차 :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무주나들목

    ·버스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무주나 무주구천동행(오전 7시 40분 하루 1회). 3시간 소요

    ●먹을거리

    무주는 어죽이 유명하다. 금강 상류에서 투망으로 잡은 민물고기로 끓인다. 동자개(빠가사리), 모래마루, 메기, 모래무지를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삶아 육수를 낸다. 가시를 발라낸 뒤 그 육수에 불린 쌀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 뭉근한 불에 진득이 끓인다. 거의 다 끓었을 때쯤 수제비를 떼어 넣고 파, 마늘, 부추를 섞으면 된다. 후추와 들깻가루를 양념으로 친다. 얼큰하고 시원하다.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다.

    무주의 어죽은 동자개를 많이 쓴다. 잡아 올릴 때 ‘빠각빠각’ 소리를 내 일명 ‘빠가사리’라 부르는 민물고기다. 물 흐름이 느린 강바닥에서 주로 산다. 금강물이 휘돌아나가는 무주 내도리(內島里) 일대에 어죽식당이 많다. 그곳에서 동자개가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내도리는 안동 하회마을처럼 물이 휘돌아나가는 물돌이동이다. 이름 그대로 ‘육지 속의 섬’이다. 앞섬(전도리), 뒤섬(후도리)이 있다.

    무주엔 어죽식당이 수두룩하다. 무주 사람들은 군청 옆에 있는 25년 역사의 금강식당(063-322-0979)을 많이 찾는다. 내도리에서는 큰손식당(063-322-3605)과 섬마을(063-322-2799)이 붐빈다. 버섯전골 산채비빔밥집인 장미회관(063-322-5551)도 있다.

    #한라산 - 돈내코 계곡과 백록담 분화구 남벽 장엄

    눈 덮인 구상나무가 지천…영실 노루샘 일대는 ‘산상의 정원’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한라산(1950m)의 또 다른 이름은 두무악(頭無岳)이다. ‘머리가 없는 산’이라는 뜻이다. 제주 사람은 “한라산 꼭대기가 거센 바람에 잘려나가 서귀포 쪽으로 떨어졌다”고 말한다. 산방산(395m)이 그 떨어져나간 봉우리라는 것이다. 그만큼 제주 사람은 문학적 상상력이 뛰어나다. 용암을 내뿜었던 불구덩이를 그렇게 표현한다.

    한라산은 해발 1700m 부근까지는 대체로 완만하다. 그 이후부터 삐죽삐죽한 돌 성곽이 완강히 자리 잡고 있다. 크라운 모양의 분화구벽이 빙 둘러 있다. 오세영 시인은 그것을 ‘해수관음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그것은 손잡이 없는 트로피의 안과 밖 같다. 무쇠솥단지가 산봉우리의 뾰족한 부분을 깔아뭉개고 앉아 있는 것과 닮은꼴이다. 왕관을 쓴 산이라고나 할까. 백록담 분화구는 벽의 둘레가 1.7km, 면적은 약 21만㎡(6만3600여 평)다.

    백록담 분화구 남벽은 장엄하다. 깎아지른 수직 벽이다. 그 앞엔 윗방아오름이 있다. 오름 모양이 방아와 비슷하다. 방아오름샘도 눈에 띈다. 해발 1700m가 넘는 곳에서 용출수가 솟아난다.

    남벽은 서귀포 돈내코 계곡으로 오른다. 돈내코 코스(9.1km)는 2010년 12월 15년 만에 문을 열었다. 아직 사람 왕래가 많지 않다. 돈내코 계곡에서 올라가 웃세오름 쪽으로 빠진다. 분화구 남벽부터 서북벽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휘돌아나간다. 서북벽은 U자형 홈통바위가 육중하게 뻗어 내린다. 맛있고 튼실한 제주 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해발 1000m가 넘으면 눈 덮인 구상나무가 지천이다. 눈을 그냥 흠뻑 뒤집어쓰고 있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산다는 토종나무. 늘 푸른 작은 키 나무. 살아 100년 죽어 100년. 산 나무 반, 죽은 나무 반이다.

    ‘넋이 나간 고사목/ 죽어서도 미래를 사는 고집// 살아서도 청청했다/ 죽어서 꼿꼿한 뼈대/ 마른 주먹엔 무엇을 쥐고 있을까’(이생진, ‘한라산고사목’).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영실 노루샘 일대는 ‘산상의 정원’이다. 해발 1700m에 펼쳐진 고산습지. 한라산에 사는 뭇 생명의 목을 축여준다. 물이 꿀처럼 달다. 그 물 앞에선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 사람, 새, 노루, 다람쥐, 제주도롱뇽, 줄장지뱀, 산굴뚝나비, 가락지나비…. 봄이면 산철쭉, 털진달래 꽃이 붉은 융단을 깐다. 바람이 불면 사철 푸른 조릿대가 으스스 몸을 떤다. 영실 병풍바위 주위에선 뭉게구름, 먹장구름이 한순간 우르르 몰려와 몸을 씻은 뒤,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사라진다.

    겨울 한라산엔 까마귀가 많다. 산자락에서부터 백록담 분화구 위까지 없는 곳이 없다. ‘까악 까~악’ 귀가 따갑다. ‘과악 과아~악’ 우는 것도 있다. 큰부리까마귀다. ‘까악 까~악’ 따갑게 우는 것은 까마귀다. 몸이 큰부리까마귀보다 조금 작다. 큰부리까마귀는 부리가 길고 두툼하다. 독수리부리 같다. 머리와 부리가 직각이다. 검은 깃털에 기름이 자르르하다.

    까마귀는 제주 사람에게 한이요, 슬픔이다. 아니다. 야성의 끈질긴 생명력을 뜻한다. 좋든 싫든 까마귀와 제주 사람들은 ‘영혼의 끈으로 묶인 한 가족’이다. 제주 출신 작가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까마귀가 등장한다. 까마귀와 함께 울고 웃는다.

    코끝 싸한 겨울 산 난, 눈꽃에 눈을 멀었다
    ●겨울철 한라산 트레킹 주의할 점

    한라산은 입산과 하산이 엄격히 통제된다. 겨울철(11~2월)에는 돈내코 코스 오전 10시, 어리목 영실 12시까지만 입산이 허용된다. 윗세오름에서는 오후 3시면 하산해야 한다. 남벽 분기점에선 1시간 빠른 오후 2시면 내려와야 한다.

    ●탐방 문의 064-713-9950~9953, 064-725-9950, 064-747-9950, 064-756-9950

    ●먹을거리 횟집 제주범섬수산 064-744-7997, 제주갈치와 고등어 064-749-1212, 흑돼지 전문 고기굽는사람들 064-744-4468, 몸국 새올레국수 064-745-6226, 미풍해장국 064-749-6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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