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0

2012.01.09

집단 괴롭힘 발단 ‘게임’은 억울?

청소년들 게임 레벨과 현실 동일시…강한 캐릭터 만들기 시간과 돈 쏟아부어

  • 문보경 전자신문 부품산업부 기자 okmun@etnews.co.kr

    입력2012-01-09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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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 괴롭힘 발단 ‘게임’은 억울?
    최근 어린 학생이 동급생의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이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에서 드러난 학교 폭력의 수준과 온라인게임이 집단 괴롭힘의 발단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게임을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하게 만들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자살한 A(중2)는 같은 반 B에게 1년 가까이 괴롭힘을 당했다. 유서에 따르면, B가 게임 속 캐릭터를 키우라며 협박했고 통장에 있는 돈까지 빼앗아갔다. A는 협박에 못 이겨 매일 게임을 하느라 성적이 떨어졌고, 맞아서 생긴 상처로 고통스러웠다. 나중에는 다른 아이들까지 가세해 A를 괴롭혔다. 자살 직전까지도 “캐시(게임머니) 사라” “매크로를 켜라”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A는 2명의 가해 학생으로부터 230여 차례나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A는 또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총 845회에 걸쳐 가해 학생의 아이디로 접속해 게임을 했는데, 가해 학생들이 온라인게임을 하라고 지속적으로 강요하고 물고문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게임은 메이플스토리다. 메이플스토리는 ‘국민 게임’으로 불릴 만큼 이용자 수가 많은 역할수행게임(RPG). 가입자 수가 국내 1800만 명,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이 넘는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런 불상사로까지 이어진 것일까.

    먼저 다른 게임에 비해 폭력성이 덜하고 방법도 쉬워 초중학생이 쉽게 즐길 수 있다. 시간을 들인 만큼 캐릭터가 강해지기 때문에 레벨을 높이려면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문제는 메이플스토리에서 높은 레벨을 얻는 것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고가의 아이템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쉽게 강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아이들을 유혹한다.

    국민 게임 ‘메이플스토리’



    초중학생에게 게임 레벨은 현실 세계의 레벨과 동급으로 간주될 만큼 영향력이 막강하다. 공부를 잘하면서 게임 레벨까지 높으면 그야말로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의 경우, B가 해킹으로 게임 아이템을 도난당하자 A를 협박해 자신의 게임 속 캐릭터를 키우게 한 것이다. 또 아이템을 구입하려고 A의 돈을 빼앗았다.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지만, 초중학생 사이에서 게임 레벨을 올리려고 폭력을 비롯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부모가 집에서 게임을 해 레벨을 높여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성적이 오르거나 선행을 한 보상으로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 역시 ‘게임머니’다.

    집단 괴롭힘 발단 ‘게임’은 억울?
    사정이 이러한데, 어렵게 키워놓은 캐릭터가 해킹당해 게임 아이템이 사라졌다면 그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한 40대 남성은 “어렵게 레벨을 올리고 무기도 사 모았는데 어느 날 접속해보니 해킹당해 (캐릭터가) 발가벗고 있었다”며 “40대인 나조차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상실감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야 4만~5만 원이면 아이템을 새로 사서 회복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중학생 사이에서 메이플스토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럼에도 메이플스토리가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한 누리꾼의 얘기다.

    “N브랜드의 옷 때문에 돈이나 옷을 빼앗는 학생이 많다는데, 그렇다고 N브랜드가 문제인가. 옷을 판매 금지시킨다고 학교 폭력이 없어지겠는가.”

    게임을 못 하도록 막을 수도 없지만, 게임 금지 제도가 학교 폭력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것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게임 때문이 아니라도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은 숱하게 일어나니 말이다.

    외국은 자녀와 함께 즐겨

    더욱이 게임의 긍정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게임은 스트레스에 지친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화상품이다. 직장인 전모 씨는 “새벽 1시까지 야근하고 집에 와도 꼭 30분씩 게임을 하는데,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보상 같은 것”이라며 “짧은 시간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엔 게임이 최고”라고 말했다.

    건전한 게임문화를 조성하려는 게임회사의 노력도 필요하다. 게임 에티켓 교육 및 캠페인에 공을 들여야 한다. 해킹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안에도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계정유출은 PC방 등에서 악성코드나 게이머의 실수로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게임 업계가 나 몰라라만 해서는 안 된다. 일회용비밀번호(OTP)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외국에서 게임은 대체로 가족이 함께 즐기는 오락으로 자리 잡았다.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콘솔게임을 주로 하는데, 콘솔게임은 온라인게임에 비해 중독성이 덜하지만 폭력성은 오히려 강하다. 그럼에도 콘솔게임 때문에 어린아이의 폭력성이 증가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부모와 자녀가 게임을 함께 즐기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은 게임일 뿐 그 결과나 성과를 현실 세계로 끌어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게임에 너무 빠져 있다고 우려하는 부모는 대부분 게임을 금지하고 싶어 할 뿐, 아이가 왜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공부가 아닌 게임을 하는 자체가 그저 싫을 뿐, 어떤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에는 전혀 관심 없다. 그러니 부모가 요청하면 게임회사에서 사용 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게임을 금지할 수 없고, 금지하는 것이 학교 폭력을 근절하는 해법도 아니라면, 이제 아이와 함께 게임을 즐기면서 바른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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