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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저성장시대 자산 관리법 01

묻지마 재테크는…끝났다

저성장·저금리시대 수익률보다 ‘자산보호’에 초점 맞춰야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묻지마 재테크는…끝났다

모두가 ‘부자아빠’가 되려고 재테크를 ‘열공’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잘만 투자하면 대박을 터뜨려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너나 할 것 없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재테크에 매달렸다. 하지만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본격화하면서 과거 자산 인플레이션에 기댄 재테크는 수명을 다했다. 무엇이든 투자만 하면 돈이 되던 시절이 막을 내리면서 자산 증식의 패러다임도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국내 증권회사 채권파트에서 일하는 신모(31) 씨는 지인들이 재테크 방법을 알려달라고 할 때마다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회사에서 업무 능력은 인정받고 있지만 그 역시 재테크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2011년 초 코스피지수 2000시대가 다시 열리면서 주식과 펀드에 거액을 투자해봤지만, 유럽발(發) 재정위기가 불거져 벌어놓은 수익을 고스란히 까먹고 원금마저 잃었다.

자신의 주 종목인 채권에서 상당 부분 수익을 만회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2011년 한 해 투자수익률은 4% 남짓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주식, 펀드, 채권, 예·적금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했음에도 겨우 일반 시중은행 예금금리 수준의 수익만 거뒀을 뿐이다. 신씨는 “명색이 증권회사에 다니는데 재테크 성적표가 실망스럽다”면서 “이렇게 해서 언제 자산을 불릴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산 중심 패러다임 근본적 변화

묻지마 재테크는…끝났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집중투자보다 분산 투자가 중요하다.

연초에는 하나같이 대박 꿈을 안은 채 투자 세계에 뛰어들지만, 한 해가 지나고 나면 신씨처럼 한숨을 내쉬는 이가 적지 않다. 투자성적표가 영 신통치 않은 탓이다. 그나마 신씨처럼 은행 예금금리 수준이라도 건졌으면 다행이다. “○○상품에 투자하면 연 수익률 두 자릿수는 기본”이라든지 “여기 땅이 곧 개발될 예정이다. 지금 사면 거저 사는 것이다”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 자금을 한군데 몰아서 투자했다가 쪽박을 찬 경우도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이제 재테크로 대박 터뜨리기는 요원한 것 아니냐”며 장탄식을 한다.



재테크는 재물을 뜻하는 재(財)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보유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최대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뜻한다. 1980년대 자산 거품이 극에 달했던 일본에서 만들어져 유행한 용어다. 부동산 가격 상승분이나 금융상품의 고리(高利)처럼 자산 가격 급등에 기댄 축재 기법의 또 다른 말이 다름 아닌 재테크인 것.

이런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재테크는 고성장, 고금리를 가정한 용어다. 한국은 197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하면서 1980년대 후반 잠재성장률이 10.1%에 달할 만큼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산 가격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 시기 한국인의 주된 재테크 대상은 ‘서울 강남 복부인’이 상징하는 부동산이었다. 당시는 은행 금리가 평균 10% 안팎을 넘나들었지만 은행 돈을 빌려서라도 부동산을 사놓으면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런 투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자산 가격 역시 계속 상승하리라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시중에 팽배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가 확산되면 돈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고, 은행 등 제도권 금융에서 돈이 빠져 나와 부동산 같은 실물 부문에 몰리는 일이 발생한다. 실제 3저(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호황으로 1980년대 후반 경제가 고성장을 구가하면서 1980년대 초중반 2~3%대에 머물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8년 7.1%로 급등한 데 이어 91년엔 9.1%로 정점을 찍으며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더욱이 당시 서울로 대표되는 수도권 지역은 주택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인 데다 지방 인구가 계속 서울로 유입됐다. 이는 주택에 대한 초과수요를 불러일으켰고,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에 힘입어 증권시장도 불야성을 이뤘다. 2007년 로이터통신 분석에 따르면, 88서울올림픽 특수와 경기, 일산, 분당 등 신도시 건설 특수가 겹치면서 당시 한국 코스피지수는 건설주를 중심으로 서울올림픽 개최 1년 전부터 개최 일까지 90%가량 급등했다. 그야말로 수중에 돈만 있다면 부동산과 주식시장 모두에서 대박이 가능했던 시기다.

자산 감소와 소비 감소 이중고

묻지마 재테크는…끝났다

최근까지도 한국인의 주된 재테크 대상은 부동산이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국은 고도성장에 온점을 찍었다. 외환위기는 고금리를 통해 민간 자금을 끌어 모으고 그 자금을 일부 재벌에 집중투자해 양적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방식이 글로벌화한 경제 질서하에서는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극명히 드러냈다. 또 ‘거품이 붕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외환위기가 투자자에게 던져준 충격적인 교훈이었다. 자산 인플레이션에 기댄 과거의 재테크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는 의미다.

이제 과거처럼 고성장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이미 한국은 경제규모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다. 국내총생산(GDP)이 100조 원 남짓일 때 10% 성장을 하는 것과 1000조 원일 때 1% 성장을 하는 것은 성장의 질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런 저성장 기조는 인구구조 변화와 맞물리면서 지속될 전망이다. 2011년 12월 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한국 인구는 2030년 5216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31년부터 감소세를 기록할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전 내놓은 2006년 추계에 비해 인구 정점 시기가 12년가량 늦춰지긴 했지만, 산업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25~49세의 핵심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감소세로 접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박사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사람은 젊은 층”이라며 “경제 전체의 생산설비를 인구 5000만 명에 맞춰 놓았는데 적극적 소비층이 줄면 저성장, 저금리 환경이 조성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소비력을 갖춘 베이머부머 세대의 은퇴로 자산 감소와 소비 감소라는 이중의 고통이 눈앞에 왔다.

결국 시대가 변한 만큼 재테크를 바라보는 투자자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저성장·저금리시대를 겪고 있는 선진국에선 일찍부터 자산 인플레이션 시대의 유산인 재테크에서 벗어나 자산보호(Asset protection)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재테크는 무선인터넷시대의 다이얼식 전화만큼이나 시대에 뒤진 용어”라고 지적했다.

“자산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재테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남들을 따라 하며 무조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을 사는 식의 재테크 원칙은 더는 성립하기 힘들다. 섣불리 돈을 불리려 하기보다 일단 자산을 지키면서 기회를 노려야 한다.”

눈높이 낮추는 평정심 필요

즉, 저성장·저금리시대의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은 인플레이션에 기댄 일확천금의 한탕 투자가 아닌 생애주기에 걸친 자산관리 전략이다. 금융상품 하나를 고를 때도 자산관리라는 큰 틀에서 해야 한다. 핵심은 분산과 장기투자, 그리고 평정심이다. 말은 쉽지만 막상 행동에 옮기려면 어느 것 하나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먼저 플러스알파(+α) 수익을 낼 수 있는 다양한 투자처를 찾아 손실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고수익을 기대하고 단일 자산에 집중투자하는 ‘수직적 투자’보다, 포트폴리오 믹스(mix)를 통해 비록 수익은 작지만 안정적 수익률을 얻는 ‘수평적 투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정책금리에 대한 상승 기대감이 낮아지면서 10~20년간 장기에 걸쳐 고정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장기국채가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도, 여기에 모든 자산을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이상대 삼성증권 강남1사업부장(상무)은 “집중투자보다 분산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가진 투자금 일부를 장기채권에 투자해 고정 수익을 확보하는 한편, 또 다른 일부는 중국 소비재 기업이나 중국에 소비재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처럼 향후 성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식의 분산투자가 소위 ‘몰빵’ 투자보다 위험을 헤지하기 쉽고 수익률도 높다.”

이런 분산투자는 장기투자로 이어질 때 효과를 더한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예·적금 상품도 1년의 단기가 아닌, 3년 이상의 장기로 투자를 해나가면 ‘복리효과’를 볼 수 있다. 많은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주식이나 펀드투자 역시 목표를 정하고 장기간 투자한다면 주식시장의 등락에 상관없이 좋은 실적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진혜 한국재무설계연구소 과장은 “한국인은 초단기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심리적 공포 탓에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에만 집중해 합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투자전략을 바꾸면 투자수익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물론 이런 자산관리 전략이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올지는 몰라도 과거 재테크 붐이 일었을 때처럼 최고의 수익을 안겨줄지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다 투자했는데 10%도 안 된다”라는 투자자의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자산 가격 상승만으로 과거처럼 수십%의 수익률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자산관리에서 얻는 수익률 기대치에 대한 우리의 눈높이를 낮추는 평정심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저성장·저금리시대 자산관리 패러다임의 ‘핵심 중 핵심’이다.



주간동아 820호 (p26~28)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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