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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출 손민한, 재활投 던지나

명품 체인지업으로 한때 전국구 에이스… FA 대박 났지만 선수협 회장으로 마음고생

  • 김도현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방출 손민한, 재활投 던지나

부산 야구팬의 영원한 에이스이자 한때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던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36). 그는 11월 초 15년간 몸담았던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방출당했다. “해외 연수를 주선해주겠다. 은퇴하고 코치로 뛰라”는 구단 제안을 뿌리치고 현역 생활 연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새 둥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개인 훈련을 하며 재기를 도모하는 그의 현역 복귀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제9구단 NC 다이노스를 포함한 타 구단에서 별다른 관심을 내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특급 아마추어에서 정상급 투수로

부산고와 고려대 시절 ‘특급 아마추어’로 명성을 날린 손민한은 1997년 계약금 5억 원을 받고 롯데에 입단했다. 2004년 김수화가 5억3000만 원을 받기 전까지 7년간 깨지지 않았던 롯데 신인 최고 계약금이다. 그러나 아마추어 시절 눈부신 연투는 데뷔 초반 부진과 부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결국 프로 첫해 9경기에 나서 1승3패1세이브, 방어율 4.90을 기록한 특급 신인은 그해 말 선수 생명을 걸고 수술대에 올랐고, 어깨에 칼을 댄 손민한은 2년여에 가까운 지루한 재활 끝에 1999년 말 1군에 복귀했다.

2000년부터 제대로 된 프로생활을 시작해 그해 12승, 이듬해 15승을 거두며 부활했다. 점차 입단 전 기대치에 어울리는 위력을 찾아가던 그는 2002년부터 2년간 7승에 머무르며 잠시 방황했다. 2003년 말 투수에 대한 미련을 접고 타자로 전향하겠다는 그를 잡아준 이는 부산고와 고려대 선배로 당시 롯데 사령탑에 부임한 양상문이었다. 2004년 9승을 거두며 재기 가능성을 보인 그는 2005년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28경기에 출전해 18승7패1세이브, 방어율 2.46. 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 탈락팀이 배출한 시즌 MVP라는 영광까지 안았다.



2005년을 기점으로 손민한은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에이스로 거듭났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는 등 53승29패의 걸출한 기록을 보이며 ‘전국구 에이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아마추어 시절의 강속구는 잃었지만, 유연한 투구 폼에서 나오는 다양한 변화구와 정교한 제구력, 그리고 절묘한 두뇌 피칭으로 이를 커버했다. ‘타자 다루는 법을 잘 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민한이 수준급 투수에서 정상급 투수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체인지업이 있었다. 직구와 체인지업을 던질 때 투구 폼에 변화가 거의 없는데, 그의 특급 완급 조절 능력도 여기에서 비롯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6회 이상을 꾸역꾸역 막아내는 힘이 있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미국전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3구 삼진으로 처리할 당시 공 3개도 모두 체인지업이었다.

2008년 시즌이 끝난 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손민한은 구단과 3년간 총액 27억 원의 대형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사실 그의 몸은 2008년 말부터 서서히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2009년 초 WBC 대표팀 주장으로 선발됐지만 어깨 통증으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손민한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9년 연속 100이닝 이상을 던졌다. 9년간 총 1414이닝, 연평균 157이닝을 던진 피로감에 2009년 ‘주사 투혼’의 후유증까지 더해져 그는 다시 마운드로 돌아올 수 없었다.

‘민한신’ 카리스마로 사랑받아

계속된 통증으로 2009년 페넌트레이스 초반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던 손민한은 ‘8월까지도 힘들다’는 예상을 뒤엎고 6월 7일 잠실 두산전에 시즌 첫 등판, 6이닝 무실점으로 첫 승을 챙겼다. 겉으론 화려한 복귀전이었지만 실상은 주사로 통증을 삭이며 얻어낸 ‘안타까운 승리’였고, 그의 주사 투혼은 이후 한동안 지속됐다.

7월 중순 개인 3연승을 내달렸지만 구속은 회복되지 않았고, 급기야 8월 다섯 차례 등판에선 단 1승도 챙기지 못하며 3패만 떠안았다. 결국 그는 2009년 10월 미국 조브 클리닉에서 오른쪽 어깨 관절경 수술을 받았고, 2010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 단 한 차례도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사실 6월 갑작스러운 복귀 자체가 그의 어깨 상태를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타 팀 선수들까지 “올해만 야구하고 그만둘 게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했지만 그는 기어코 마운드에 올랐다. 주사를 맞으면서까지 마운드에 오른 것은 FA로서 ‘먹튀’란 소리를 듣기 싫었던 자존심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회장으로서 했던 실책을 만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선수협 제5대 회장에 취임한 손민한은 2009년 시즌 초반 노조 설립이라는 강경 카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여론 벽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회장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변 인물의 말에 휘둘렸다”는 구설수에 휘말렸다. 그런 비난 속에서 손민한이 할 수 있는 건 마운드에 오르는 일뿐이었다.

더욱이 2011년 시즌 초반부터 프로야구 선수들의 초상권과 관련한 선수협 내부비리 혐의가 불거졌으며, 여전히 선수협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야구 외적인 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급기야 선수들의 탄핵을 받아 곧 선수협 회장직에서도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일부 팬은 손민한의 방출 소식을 접하고 프랜차이즈 스타를 홀대하는 구단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지만 롯데의 설명은 다르다. 롯데는 최근 2년간 손민한이 1군에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음에도 매년 6억 원 연봉을 다 줬다. 2억 원 이상 고액연봉자는 1군에 머물지 못하면 연봉을 깎을 수 있지만 부상에 의한 재활이라고 해석해 연봉을 모두 지급했다. 다른 구단의 경우 FA라고 해도 부상으로 인한 ‘먹튀’로 판단하면 2년째부터는 연봉을 깎는 게 관례지만 롯데는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손민한을 대접했다.

이렇게 줄 건 다 준 구단은 손민한에게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다. 배재후 단장은 “2009년 시즌 뒤 수술을 받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재활할 수 있도록 서울에 숙소를 마련해줬다. 하지만 재활 대신 선수협 회장 일에 매달린 것은 구단 처지에서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선수협 회장을 맡지 않았다면 지금 선수 손민한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손민한은 15년간 총 282경기에 출전해 103승72패12세이브, 방어율 3.46을 기록했다. 한때 그는 한국 프로야구를 쥐락펴락하는 명투수이자 ‘민한신’이라는 애칭에서 알 수 있듯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에이스였다. 언제나 여유롭게 상대 타자를 농락하던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마운드의 제왕’이었지만, 현재는 초라한 방출선수일 뿐이다. 그가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11.12.12 816호 (p62~63)

김도현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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