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6

2011.12.12

어도비 “모바일 시장서 항복”

HTML5 대세 속 모바일 플래시 개발 중단 선언…PC 시장에서 변화 불가피할 듯

  • 문보경 전자신문 부품산업부 기자 okmun@etnews.co.kr

    입력2011-12-12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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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애플에 졌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모바일 플래시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후 마크 개럿 어도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한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2월 애플 창업주 고(故)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의 모바일 플래시 계획에 맹비난을 퍼부었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판까지 했다. 플래시는 개인용 컴퓨터(PC)에 맞는 기술이지 모바일에 맞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배터리 전력 소모가 많고 터치스크린 방식의 사용자 환경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결국 아이폰과 아이패드에는 모바일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미 공급한 제품 수정과 보완은 계속

    이후 논쟁이 계속되는가 싶었지만, 결국 어도비가 백기를 들었다. 어도비는 11월 9일 중도하차 결정을 내렸다. 어도비가 그간 공급해온 모바일 브라우저용 플래시를 더는 제공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안드로이드와 블랙베리 플레이북을 위한 ‘플래시 플레이어 11.1’을 끝으로 업그레이드 제품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 이미 공급한 제품에 대한 버그 수정과 보안 업데이트만 지속한다. 어도비는 애플에 졌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플래시를 배제해온 애플이 이긴 셈이다.

    어도비는 모바일 플래시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모바일 분야에서는 HTML5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시장이 빠르게 HTML5 표준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도비의 인터랙티브 개발담당 총괄책임자인 대니 위노커는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앞으로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프로그래밍 표준의 최신 버전인 HTML5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플래시는 첨단 게임이나 프리미엄 비디오 같은 영역에서 혁신을 계속하겠다”고 설명했다.



    플래시는 애니메이션 제작용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화면 크기와 해상도 구현이 가능하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는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플래시로 제작한 동영상도 많이 올라와 있다. PC에서는 플래시의 영향력이 막강했지만, 모바일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플래시 대신 HTML5가 인기를 끌었다. HTML5는 HTML을 잇는 차세대 마크업 언어로 주목받는다. 별도의 프로그램(플러그인)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플래시나 실버라이트, 자바FX 없이도 웹 브라우저에서 화려한 그래픽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용자는 플래시 플레이어나 윈도 플레이어가 없어도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또한 웹 표준에도 맞는다. PC나 모바일 환경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웹 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바일에서도 웹에 자유자재로 접속할 수 있는 상황에서 HTML5의 이런 특징은 엄청난 장점이다. 위노커 어도비 총괄책임자도 “HTML5는 현재 주요 모바일 디바이스상에서 공통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HTML5는 여러 모바일 플랫폼에 걸쳐서 콘텐츠를 만들고 배치하는 이상적인 솔루션이 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사실 모바일 플래시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배터리 전력 소모가 많다는 점이었다. PC와 달리 모바일에서 배터리 전력 소모는 프로그램 우월성을 따지는 데 절대적 기준이 된다. 게다가 다양한 모바일 플랫폼에 맞게 플래시를 각각 내놓는 것이 콘텐츠 제작자로선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잡스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가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애플은 개발자들에게 플래시 대신 HTML5를 비롯한 개방형 표준을 이용하라고 공개적으로 권고했다. 언론사 중에선 ‘파이낸셜타임스’가 HTML5 기반의 웹 페이지를 선보였으며, 아마존 킨들 클라우드 리더, 유튜브, 트위터 등도 HTML5 진영에 가세했다.

    이에 대해 어도비는 애플이 횡포를 부린다고 비난하면서 플래시를 고집하는 듯했다. 샨타누 나라옌 미국 어도비시스템스 대표는 7월 방한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이처럼 말했다.

    “애플 운영체제인 iOS에서 사용 가능한 플래시 등의 애플리케이션이 1000여 개나 앱스토어에 올라와 있다. 애플이 플래시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기술적 문제가 아닌, 비즈니스 문제다. 모바일에서도 어도비 플래시 기반이 최적이라는 데 많은 기업이 공감했다.”

    하지만 어도비 측으로선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애플의 노골적인 ‘반대’가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어도비는 2009년 처음 모바일 플래시를 선보였다. 이후 PC에서처럼 모바일에서도 플래시가 빠르게 확산됐다. 어도비는 올 초 모바일 웹 브라우저에서 플래시를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가 2000만 대 정도라고 추산했다. 연말까지 2억 대로 늘어나리라 예상하기도 했다. 주도권이 아무리 HTML5로 옮겨간다고 해도 어도비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PC 환경에서는 플래시 고수

    어도비 “모바일 시장서 항복”

    어도비는 모바일 플래시 개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많은 사람이 사용했던 모바일 플래시 개발을 중단한다는 소식에 개발자들은 한편으론 환영하면서 한편으론 혼란스러워했다. 중단 발표 이후 개발자들은 어도비가 플래시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HTML5로 어떤 식으로 이전할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이 같은 변화는 일면 예고됐다. 최근 어도비는 HTML5 플랫폼 ‘폰갭(PhoneGap)’을 인수했다. 어도비는 플래시와 함께 HTML5는 물론, 차세대 웹 표준 역시 크로스플랫폼으로서 지원할 계획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애플과의 충돌 대신 폰갭 기술을 이용해 HTML5 기술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기술 충돌을 완화하려는 것이다. 개발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미디어 플랫폼 기술에서 플래시와 HTML5 둘 다 함께 이끌고 가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전에 어도비는 플래시 개발 중단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당분간은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시장 조사기관 ABI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억900만 대 수준이던 HTML5 기반 기기는 오는 2016년 21억 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래시가 PC에서라고 안전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데스크톱 환경에서도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고 전망했다. 앞서 전망처럼 차세대 웹의 대세는 HTML5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윈도8이 보여주듯, PC에서도 터치 기반 인터페이스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플래시는 터치 인터페이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어도비는 PC 환경에서 플래시를 고수하고 있다. PC 환경에서도 모바일처럼 어도비의 ‘포기 선언’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애널리스트들 역시 어도비가 데스크톱 환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테지만 지금 당장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5년까지는 플래시가 PC에서 활약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트너의 한 애널리스트는 “HTML5가 웹의 미래”라고 말하면서도 “그렇다고 지금 당장 플래시 플레이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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