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6

2011.12.12

‘금융 빅4’ 영업 진검승부 벌어지나

하나금융, 외환銀 인수 땐 업계 2위로 도약…자산 불리기 ‘대형 M&A’ 가능성도 농후

  • 김영필 서울경제 금융부 기자 susopa@sed.co.kr

    입력2011-12-12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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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4일 오후 4시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21층 회의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이하 하나금융) 회장이 밝은 얼굴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김 회장이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가격 재협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는 간담회여서 일요일임에도 취재진 70여 명이 참석했다. 김 회장은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나서도 독립 경영을 보장하고 ‘외환은행’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하나로 합치지 않고 ‘투뱅크(two bank)’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 이는 금융당국의 인수 승인이 나지는 않았지만 향후 외환은행 인수를 가정해 경영구상을 짜놓았다는 얘기다.

    내년 상반기 은행산업 구도 재편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다시 커지지만, 산업자본으로 판명되더라도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업계에서도 당국이 내년 초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해줄 것으로 내다본다. 결국 내년 상반기 중에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마무리돼 국내 은행산업의 구도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당장 업계 2위로 뛰어오른다. 9월 말 현재 주요 금융지주사의 총자산(고유계정+신탁계정) 규모는 우리금융지주가 372조4000억 원으로 1위, KB금융지주(이하 KB금융)가 363조6000억 원으로 2위, 신한금융지주(이하 신한금융)가 342조4000억 원으로 3위를 달리고 있다. 하나금융은 236조9000억 원으로 이들과 차이가 있다. 4대 금융지주사라는 말을 많이 써왔지만 사실상 ‘빅3+1’ 체제였던 셈이다.

    하지만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품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하나+외환’의 몸집을 9월 말 기준으로 계산하면 366조5000억 원으로 KB금융을 제치고 단숨에 2위로 올라선다. 은행 영업에 중요한 지점 수도 크게 늘어난다. 9월 말 현재 은행 지점 수는 KB국민은행이 1162개로 1위, 신한은행이 965개로 2위다. 우리은행은 932개. 하나은행은 654개로 선두권과 격차가 있지만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1012개로 경쟁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덩치만 커지는 게 아니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이 한 지붕 아래 살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통적으로 하나금융은 소매금융에 강점을 보여왔고, 외환은행은 대기업과 외환업무에 강하다. 특히 외환은행은 해외 점포망도 잘 갖추고 있다. 하나금융 측은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프라이빗뱅킹(PB), 무역금융, 펀드 판매, 이종통화거래(FX마진거래) 등의 분야에서 업계 1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나+외환’ 조합이 강력한 이유다.

    반대로 다른 시중은행 처지에선 골치가 아프다. 금융권에서 외환은행은 어느 은행과 합병해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은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적 자원도 우수한 데다 현대자동차그룹 등 대기업 거래가 많고, 외환업무에도 강해 모든 은행이 탐을 내왔던 것이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도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관심은 내년도 영업전쟁이다. 당초 금융권에선 올해 4대 금융지주사의 영업대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KB금융은 지난해 상반기 강정원 전 회장 내정자가 자진 사퇴키로 하면서 ‘경영 공백’이 생겨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작년에는 883억 원 흑자라는 사상 최악의 실적을 내면서 고꾸라졌다. 신한금융 역시 라응찬 전 회장, 신상훈 전 사장, 이백순 전 행장 등 ‘빅3’가 동반 퇴진하는 신한사태로 휘청거렸다.

    ‘산은+기은+우리금융’ 모델도 거론

    ‘금융 빅4’ 영업 진검승부 벌어지나
    이 때문에 경영진을 새로 꾸린 올해부터는 대규모 영업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급속도로 악화되는 유럽 재정위기와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은행은 제대로 영업을 하지 못했다. 금융감독 당국은 은행에 가계대출을 늘리지 못하도록 하고, 자본을 더 쌓으라고 지도하는 등 공격적인 영업을 막았다.

    따라서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대규모 영업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은행 간 국지전은 충분히 가능하다. 외환은행의 경우 론스타 밑에 있던 8년 동안 영업력이 많이 쇠퇴했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은행 발전이나 자금중개 구실을 하기보다 기업 가치를 높여 차익을 남기는 데 주력한 탓에 신규 대출 등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하나금융 측이 외환은행을 가져오면 일단 자산 불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4대 금융지주사가 모두 휘말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은행권에 자극을 줄 수는 있으리라는 것이 은행권 관계자들의 말이다. 윤용로 외환은행장 내정자도 “외환은행을 잘 키워 경쟁력 있는 은행으로 만들겠다”며 “한 지붕 아래 있는 하나은행과도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은행 간 목숨을 건 영업전쟁까지는 아니어도 외환은행발(發) 자산 경쟁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결국 하나금융을 제외한 다른 금융지주사도 인수합병(M·A)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한 발 더 치고 나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매년 조금씩 성장해가는 자생적 성장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KB금융이다.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빼앗긴 데다 은행 부문 의존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KB금융은 자사주 매각으로만 1조8000억 원의 실탄을 보유한 상황이다. KB금융 측은 은행은 물론, 증권과 보험 등 비은행도 한 번에 강화할 수 있는 우리금융 인수에 희망을 걸고 있다.

    강만수 회장이 이끄는 산은금융지주(이하 산은금융)의 참여로 최근 우리금융 민영화 입찰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민영화를 재추진하면 다시 한 번 도전하겠다는 게 KB금융 측의 복안이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이 합치면 자산규모만 736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은행, 메가뱅크가 탄생한다. KB금융은 이르면 내년, 아니면 새 정권이 출범한 직후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이 다시 추진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산은금융의 행보도 관심사다. 산은금융은 현재 HSBC 서울지점의 소매금융 부문 인수를 추진 중이다. 민영화를 앞두고 개인금융 기반을 강화해야 하는 산은금융 측으로서는 HSBC의 소매금융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강 회장이 추가 M·A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SC제일은행도 주요 M·A 대상으로 거론된다. SC제일은행 측은 부인하지만 SC제일은행 매각설은 금융권에서 계속 떠돌고 있다.

    정부가 민영화를 추진 중인 기업은행도 은행들이 호시탐탐 노린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기업은행의 지분 일부를 매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2013년에는 기업은행의 완전 민영화를 위해 지배지분을 판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셈도 빨라지고 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전문은행으로, 외환은행처럼 특정 분야에 강점이 있어 가치가 높다. 일각에서는 ‘산은+기은+우리금융’ 모델이 거론되기도 한다. KB금융 등에서도 기업은행에 관심이 많다. 민영화 차원에서 시장에 나오기만 한다면 이를 사겠다는 곳이 적지 않다.

    당장 몇 개월 내는 아니겠지만 2~3년 안에 초대형 ‘빅딜’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은행산업의 지형도는 크게 바뀐다. 다만 메가뱅크에 따라 특정 금융지주사가 거대해지는 것이 좋은지는 명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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