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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600년 왕국 머물던 자리 찬란한 중세 문화의 향기

폴란드 왕국의 옛 수도 ‘크라쿠프’ & ‘비엘리치카’

  • 글·사진=허용선 여행 작가 yshur77@hanmail.net

600년 왕국 머물던 자리 찬란한 중세 문화의 향기

600년 왕국 머물던 자리 찬란한 중세 문화의 향기

시민들의 정신적 안식처인 크라쿠프의 성 마리아 성당.

폴란드라고 하면 피아노의 시인인 작곡가 쇼팽, 물리학과 화학 2개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퀴리 부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먼저 떠오른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주변 열강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여러 차례 국토가 유린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폴란드 국민은 그들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지켜왔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문화유산만도 바르샤바의 역사지구, 중세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옛 수도 크라쿠프,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암염광산 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폴란드 도시는 수도 바르샤바다. 하지만 폴란드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도시는 크라쿠프다. 크라쿠프는 11세기 이후 약 600년 동안 폴란드 왕국의 수도로 번성했던 곳으로, 이 시기가 폴란드 최고의 전성기로 꼽힌다. 당시 크라쿠프는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과 더불어 중부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 후 폴란드는 쇠퇴했지만 크라쿠프는 여전히 수많은 문화유산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지금도 이 도시의 궁전과 성당에는 중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크라쿠프 구(舊)시가지에서는 중세 때 건축된 300개가 넘는 역사적인 건축물, 58개의 교회, 30개가 넘는 박물관과 그곳에 소장된 200여만 점의 전시품이 폴란드의 찬란했던 과거를 말해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폴란드는 국토 대부분이 전쟁의 화염에 휩싸였고 국민 6명 중 1명이 희생되는 절망적인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크라쿠프는 전쟁 중 독일군 사령부가 있었던 까닭에 다행히도 다른 도시와 달리 나치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연합군 측도 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은 이곳을 보호하려고 공격을 자제한 덕분에 크라쿠프는 문화유산을 잘 보존할 수 있었다.

크라쿠프 시내에는 ‘용의 동굴’이라 부르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옆에는 크라쿠프 아가씨들을 잡아먹었다는 용의 동상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크라쿠프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잡아먹던 용을 처치하려고 한 구둣방 청년이 용에게 타르와 유황을 잔뜩 채운 양고기를 먹게 했다는 것. 이를 먹은 후 목이 말라 고생하던 용은 강물을 전부 마셔버렸고, 끝내 몸이 1000개로 파열돼 죽었다고 한다. 이후 청년은 크라쿠프 왕의 딸과 결혼했고, 청년의 용맹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용의 동상을 세웠다고.

# 문화재 보호 위해 연합군 공격 자제



중앙시장 광장의 서쪽에는 시청 탑, 동쪽에는 성 마리아 교회가 서 있다. 성 마리아 교회는 1222년에 건축했는데 현재의 모습은 14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재건축한 것이다. 성 마리아 교회에는 국보로 지정된 제단이 있다. 제단은 조각가 파이트 슈토스의 작품으로, 제작 기간만 12년이 걸렸다. 높이가 3m나 되는 중앙부의 거대한 조각에는 참피나무를 사용했다. 사도의 품에 쓰러진 성모 마리아와 깊은 슬픔에 잠긴 사도들을 조각한 이 작품은 슈토스의 최고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좌우에는 성모와 어린 예수를 다양하게 조각해놨다.

성 마리아 교회에는 모두 12개의 탑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높이가 80m나 된다. 이 탑에선 매일 정오 폴란드 전국을 향해 나팔소리가 울린다. 나팔소리는 중간에 한 번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은 1241년 4월 9일 폴란드를 침입해 폴란드군과 독일 기사단 연합군을 격파했다. 유럽 사람들은 몽골인을 타타르인이라 부르며 ‘지옥에서 찾아온 자’라고 두려워했다. 타타르인이 크라쿠프로 쳐들어왔을 때, 성 마리아 교회 탑에서 이들의 습격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나팔수는 타타르인이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지금도 성 마리아 교회는 이 일을 기념해 1시간마다 4번씩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팔소리를 울리는 것이다. 이때 타타르인이 쏜 화살을 맞고 쓰러진 나팔수를 애도하는 뜻에서 나팔소리는 반드시 중간에 한 번끊는다.

# 바다가 융기해 만들어진 암염광산

600년 왕국 머물던 자리 찬란한 중세 문화의 향기

조형적인 건축미가 돋보이는 크라쿠프의 왕궁.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국경 사이에 있는 비엘리치카는 세계 12대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다. 197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으며 크라쿠프에서 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다. 비엘리치카는 작은 도시지만 13세기경 폴란드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대규모 암염(岩鹽)광산이 있다. 암염은 땅에서 산출되는 소금, 즉 염화나트륨(NaCl)이다. 암염은 지하로부터 300m 이상의 층(層)에 분포해 있다.

폴란드에서 바다는 북쪽의 발트해밖에 없다. 해안선도 짧고 밀물과 썰물의 차이도 거의 없어 이곳 해변에선 소금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내륙에는 1500만 년 전에 바다였던 곳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해 생긴 거대한 암염단지가 있다. 바다가 융기할 당시 바닷물이 있던 지역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물은 모두 말라버리고 소금 성분만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암염이 된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비엘리치카로, 13세기 이곳에서 암염을 채취하기 시작한 이후 700여 년 동안 암염광산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비엘리치카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후 371개의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광산 입구에 도착한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과거 이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소금으로 만든 갖가지 조형물이 보인다. 킹가 공주는 암염광산의 수호신이다. 13세기 헝가리 공주였던 킹가는 폴란드 왕족과 결혼하려고 오다가 소금물이 담긴 습지에 자신의 약혼반지를 빠뜨렸다. 그래서 폴란드 비엘리치카에 도착한 후 주위 사람들에게 구덩이를 파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이곳에서 반지와 함께 암염덩어리를 발견했다. 그 후 이 지역은 커다란 광산으로 발전했고 공주는 수호신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600년 왕국 머물던 자리 찬란한 중세 문화의 향기

과거 암염광산에서는 말을 이용해 무거운 소금을 운반했다. 마구간으로 사용하던 곳이 지금도 있다.

중세 시대 암염은 비싸게 거래하는 귀한 상품이었다. 강한 왕권을 가진 당시의 폴란드 왕들은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암염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상의 암염이 고갈됐기 때문에 땅속 깊이 파고 내려가야 했는데, 그러려면 많은 인력과 도구가 필요했으며 이를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왕밖에 없었다.

오래전 암염광산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기독교도로 신앙심이 강해서 지하 암염광산 곳곳에 예수상과 성모상을 비롯한 종교적인 동상을 많이 세웠다. 특히 지하 110m에 있는 예배당은 규모가 아주 크다. 소금 약 2만t을 가지고 65년에 걸쳐 만든 이 예배당은 세계 유일의 초대형 소금예배당이다. 샹들리에, 킹가 공주 동상, 예수와 제자들의 벽화, 계단 등 모든 것을 소금으로 만들었다.

700년 동안 암염을 채취한 비엘리치카의 광산은 지금도 소량의 소금을 생산해낸다. 광산 지하의 크고 작은 소금호수에 담긴 물은 이스라엘, 요르단의 사해와 같은 수준의 염도 32%(완전 포화 상태)를 유지한다. 물 1ℓ를 증발시키면 320g의 순수한 소금을 얻을 수 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비엘리치카는 식용 소금을 만들기도 하고 비누 성분과 색소, 향료를 혼합해 목욕 소금을 생산하기도 한다. 피부에 좋다고 소문난 목욕 소금은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기념품이다. 광산 내부 길이는 300km가 넘는데, 몇 시간 본다 해도 겨우 1% 안팎을 관람하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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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엘리치카의 암염광산에 있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 모습. 소금으로 만든 조각작품이다.(왼쪽) 세계에서 유일하게 소금으로 만든 거대한 지하 예배당.(오른쪽)





주간동아 813호 (p60~62)

글·사진=허용선 여행 작가 yshur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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