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3

2011.11.21

“잡스와 안철수를 봐라, 불교자본주의에 답이 있다”

‘자본주의 이후 자본주의’에 천착해온 윤성식 고려대 교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1-11-21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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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스와 안철수를 봐라, 불교자본주의에 답이 있다”

    尹聖植 | 1953년생<br>●고려대 행정학과·오하이오대 경제학과<br> ●일리노이대 대학원 석사(회계학)<br> ●동국대 대학원 석사(불교학)<br>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대학원 박사(경영학)<br>●동국대 대학원 박사(불교학)<br> ●텍사스대(오스틴) 경영대학원 교수<br>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br> ●고려대 정부학연구소장<br> ●현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윤성식(58) 고려대 교수는 10년 넘게 위빠사나 명상을 해왔다. 위빠사나는 남방 불교 수행법. 위(Vi)와 빠사나(Passana)의 합성어다. 위는 대상을 주체와 객체로 분리해 본다는 뜻이다. 빠사나는 대상을 수관(隨觀·계속 지켜봄)하면서 본질을 알아차리는 것. 그가 주류의 옷을 벗고, 궤도를 벗어난 방식으로 ‘고장 난’ 자본주의의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경제학은 엉터리예요. 정치학, 사회학, 행정학도 똑같고요. 위기를 예측 못하는 학문이 과학인가요.”

    그는 불교를 배우고 수행하면서 30년 넘게 공부해온 사회과학이 부질없다고 느꼈다. 그러곤 불교와 사회과학을 융합해 자본주의 이후의 자본주의 모델을 독특하면서도 외로운 방식으로 탐색하는 중이다.

    “궤도를 벗어났다는 말을 적잖게 듣지만 생각보다 많은 학자가 일리 있다고 지지해주더군요.”

    그는 종교가 일으킨 문제는 종교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종교를 꺼내는 이유는 뭘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전지전능한 돈을 믿는 ‘돈교’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돈은 신이고 종교예요.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가 아닙니다. ”

    아리송하다. 당최 뭘 하겠다는 건가.

    막스 베버(1864∼1920)가 기독교를 틀 삼아 자본주의의 태동과 성장을 분석했다면 그는 탐욕, 이기심 탓에 탈을 일으킨 자본주의의 대안을 불교를 기반으로 마련하고자 한다.

    돈을 믿는 ‘돈교’가 세상을 지배

    “지금의 자본주의는 베버가 이상적이라고 여긴 청교도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투기로 나아가는 모험가 자본주의예요. 베버의 표현을 빌리면 천민자본주의고요. 베버는 자본주의가 종국엔 기독교를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고 내다봤습니다. 불교가 답을 내줄 때예요.”

    2006년과 지난해 2월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박사학위를 새로 받았다. 올해 10월에는 고려대출판부에서 ‘불교자본주의’라는 제목의 학술서도 냈다.

    “오랫동안 자유시장주의자였어요. 경제학이 말하는 시장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우쳤습니다. 정부, 기업, 정치인, 언론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민을 속여온 거예요. 시장의 자기조절 능력이라는 것은 책상머리에서 숫자로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죠.”

    불교와 자본주의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니던가.

    “생뚱맞다고요? 기독교로 자본주의를 들여다본 베버의 주장은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잖아요. 불교는 경제와 거리가 멀다 생각하기 쉬우나 어느 종교보다 자본주의 친화적이에요. ”

    불교는 인연(因緣)을 강조한다. 선한 행위를 했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니라고 가르친다. 인(因)을 도와서 과(果)를 맺는 게 연(緣)이다. 선한 행위를 했더라도 연을 잘 만나야 결실을 맺는 것. 선한 행동을 했는데 손해를 보면 연을 잘못 만난 것이다.

    “이기심을 발휘하고 탐욕을 부려야 돈을 번다고 가르치는 게 시장주의경제학입니다. 악한 인을 행해야 성공의 연을 만난다는 것이죠. 선하게 살면 성공하지 못하고 이기심, 탐욕을 부려야 남보다 잘되는 사회는 공정하지 못합니다. 연기사상(Tip 참조)에 입각한 불교자본주의를 통해 선한 인이 좋은 과를 맺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무아적(無我的) 경쟁, 자리이타(自利利他· Tip 참조)를 자본주의 이후 자본주의 윤리로 내놓는다.

    자기 조절 시장은 책상머리 환상

    “삼성, 애플이 적대적 관계이기만 할까요. 잡스가 스마트폰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것은 삼성에도 이득입니다. 새 시장이 생긴 것 아닙니까. 불교자본주의는 자리이타를 바탕으로 한 경쟁을 강조합니다. 안철수 원장이 컴퓨터 백신을 무료로 나눠준 게 자리이타의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불교자본주의는 복지국가를 어떤 관점에서 들여다볼까.

    “경전에서 상세하게 설한 이상적 사회가 복지국가입니다. 북유럽 국가가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에 가장 가깝죠. 부자에게 돈을 더 많이 벌게 해 가난한 이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는 낙수경제론은 허구일 소지가 커요. 폴 크루그먼(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은 글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스웨덴의 한 카페에 앉아 칼럼을 쓰고 있다. 복지 하면 망한다더니 활기차게 잘나간다.’불교가 말하는 복지국가는 세금을 늘려 저소득층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보다 더 중요한 게 공정한 사회입니다. 불공정으로 가난하게 해놓고 생색내면서 돈이나 나눠주는 복지국가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잡스와 안철수를 봐라, 불교자본주의에 답이 있다”
    불교자본주의는 또한 절제를 강조한다. 자리(自利)적 소유억제, 이타(利他)적 소유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 내놓은 제품에서 단순함의 가치를 강조한 것은 불교의 영향 덕분이라고 합니다. 잡스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돈은 저절로 벌린 거예요. 잡스는 또한 절제된 소비를 했어요. 잡스의 삶은 불교자본주의에 딱 들어맞는 형태입니다. 과잉생산을 줄여야 해요. GDP(국내총생산)가 늘어난다고 행복 지수가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젠 스타일(Zen Style)이라고 들어봤죠? 미니멀리즘(Minimalism·단순함을 추구하는 문화 흐름)과도 상통하는 것인데, 사치도 인색도 아닌 중도적 생산과 소비가 필요합니다. 탐욕, 이기심을 극대화하려고 하면 탐진치(Tip 참조)에 빠집니다.”

    사회과학은 엉터리라는 선언에서 시작한 대화가 어느덧 불교자본주의 윤리로 달려왔다. 그는 인드라망· Tip 참조)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를 쓰면서 공동체 복원의 중요성을 말했다.

    “인드라망은 서로의 도움으로 빛을 내는 구슬이 달린 그물망입니다. 예컨대 전남 완도군 보길도 풍습은 수익 일부를 떼어내 늙었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매달 1인당 80만 원씩 나눠 줍니다. 인드라망을 보여주는 기막힌 사례예요. 이기심, 탐욕에 의해서 세상이 발전하는 게 아닙니다. 불교자본주의는 인드라망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인드라망 작동하는 공동체 지향

    한국에서 그가 설파한 불교자본주의 윤리대로 생활하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자신 없어요. 2008년 이후 세계는 불교자본주의가 주장하는 쪽으로 조금씩 이동합니다만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죠. 고작 이런 내용으로 자본주의를 대체하겠다는 거냐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이야말로 단순하고 평이해요.남은 인생을 불교자본주의를 구체화하는 데 바칠 겁니다.”

    그가 게을리 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석가모니의 유언을 소개하면서 웃는다. 낙엽이 흩날리는 교정이 우중충한 날씨 탓에 을씨년스럽다.

    TIP
    연기사상 : 삼라만상 중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서로서로 관계를 가지면서 존재한다.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因·hetu)과 조건(緣·pratyaya)이 상호 관계해 성립되므로, 독립·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조건과 원인이 없으면 결과(果·phala)도 없다는 원리.

    자리이타(自利利他) :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행동하는 것을 규정한 불교 원리.

    탐진치(貪瞋痴) : 자기가 즐기는 것을 탐애(貪愛)해 구하고자 하는 것. 불교는‘나’와 ‘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가르친다.

    인드라망 :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고 인간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공동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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