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로 불거진 유로존의 불안한 모습은 자유주의자에게는 악몽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각 나라가 자국 통화를 포기하고 경제를 통합하는 꿈을 현실화한 최초의 사례니까요. 자원 공급조절이라는 작은 협력에서 출발해 단일시장을 넘어 국가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진군하던 유럽이 위기가 자국에 번질까 우려하는 개별 국가들의 불길한 예감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 국민에게 던져졌던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개별국가로서의 정책기조를 포기하고 하나 된 유럽에 남을 것이냐, 아니면 문을 닫아거는 한이 있어도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이냐.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에게 묻는 물음도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습니다. 통합된 세계경제에 몸을 맡길 것이냐, 다른 나라의 이해에 흔들리지 않는 우리만의 성채를 쌓느냐. 이런 의미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둘러싼 논쟁은 본질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쏟아지는 갖가지 우려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FTA의 본질상 ISD가 있든 없든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련의 논쟁을 지켜보며 지금 우리가 맞이한 질문은 단순히 협정조항의 기술적 조율에 관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이 과연 어떤 미래를 택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지요. 괴담이냐 아니냐를 놓고 싸울 게 아니라, 이 본질적인 ‘선택’에 대해 토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하나 된 세상의 꿈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힘센 나라들의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공교롭게도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주간동아 812호 (p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