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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갔어도 특허전쟁은 남았다

애플 vs 삼성전자 당분간 자존심 싸움…IT 업계 헤게모니 잡기 누가 웃을까

  •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잡스는 갔어도 특허전쟁은 남았다

잡스는 갔어도 특허전쟁은 남았다
10월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본사. 팀 쿡 최고경영자(CEO)의 인사말로 아이폰4S 신제품 발표회가 시작됐다.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를 느꼈다. 어느 대목에서 와우(WoW)를 외칠지, 환호성을 질러야 할지 몰랐다. 슬라이드와 함께 관객의 혼을 빼놓듯 프레젠테이션하던 잡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애플은 잡스가 영영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없게 됐다고 발표했다.

잡스는 애플 그 자체였다. 애플은 CEO가 기업 브랜드이자 아이콘이던 독특한 회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PC)에서 아이팟, 아이튠즈,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숨 가쁜 혁신을 30년에 걸쳐 이뤘다. 그가 곧 정보기술(IT)의 역사인 셈이다.

생애 마지막 10여 년은 창조적 파괴자로 군림했다. 자기 영역에서 열심히 잘하던 기존 글로벌 IT 기업들은 잡스의 창조적 파괴에 설 자리를 잃었다. 예전에는 각자 자기 영역에 강자가 있었다. 노키아는 휴대전화를, 닌텐도는 게임기를, 휴렛팩커드(HP)는 노트북을 잘 만들면 됐다. 하지만 잡스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리케이션(앱)스토어는 영역을 파괴해 애플 중심의 생태계를 만들었다.

애플의 창조적 파괴에 글로벌 휴대전화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잡스의 죽음으로 반전 기회가 왔다. 과연 잡스가 떠난 뒤 글로벌 IT 업계의 지도는 어떻게 그려질지, 애플과 직접적인 경쟁선상에 있는 국내 업체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세계 관심이 쏠린다.

애플 중심의 IT 생태계 구축



주식시장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잡스 없는 애플은 혁신성이 그만큼 둔화될 것이기에 국내 업체들이 시장에 좀 더 편하게 뛰어들 여지가 충분하다는 기대감이다. 실제 삼성전자 등 국내 IT 업체의 주가는 잡스 사망 소식이 전해진 10월 6일 일제히 올랐으며, 코스피 전기전자 업종은 3.32% 올랐다. 올해 내내 추락을 거듭하던 IT 업종의 주가가 오랜만에 살아날 기미를 보인 것.

하지만 IT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8년여에 걸쳐 암투병을 하면서 사실상 죽음을 준비한 만큼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클라우드 등 각 영역의 신제품을 미리 준비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국 ‘데일리 메일’ 등 외신들은 “잡스가 앞으로 최소 4년 동안 나올 예정인 아이팟, 아이패드, 아이폰, 그리고 맥북 등 주력 제품의 신모델 전략을 지휘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잡스가 목숨이 다할 줄 알면서도 지난 1년 동안 애플 미래를 위해 신모델 준비에 매달렸다”는 애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애플이 단기적으로 현재 같은 상승세를 보여준다고 해도 삼성전자는 자신 있다는 반응이다. 이미 잡스가 짜놓은 판에 금세 적응해 좋은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아이폰4S가 나오기 전까지 1년 6개월 동안 애플에 신모델이 없었던 틈을 타 갤럭시S2 등이 인기몰이를 이어 나갔다. 남태현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3분기에 당초 예상치를 넘어선 약 300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팔아 사실상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1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구글이 함께 만든 ‘갤럭시 넥서스’는 전 세계인의 관심 속에 아이폰4S를 능가할 초강력 무기로 기대를 모은다.

게다가 애플이 잘될수록 삼성전자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 사업부는 신 나게 돼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두뇌격 부품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는 현재 삼성전자가 모조리 만든다. 삼성전자의 부품 부문은 갤럭시S2가 잘나가든, 아이폰이 잘나가든 꾸준히 실적을 올릴 수 있다. 다만 애플 지배력이 약화된다면 단가협상에서 삼성전자가 다소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잡스는 하나의 ‘종교’ 창시자

잡스는 갔어도 특허전쟁은 남았다

9월 1일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1’삼성전자 부스에 마련된 ‘갤럭시탭 7.7’ 전시대. 애플과 삼성전자가 치열하게 특허전쟁을 벌이는 제품이다.

현재 애플과 삼성전자는 9개국에서 30여개에 달하는 특허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삼성과 애플이 전 세계 법원을 바쁘게 만드는 장본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애플의 특허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수석변호사는 2009년 인텔에서 애플로 자리를 옮긴 브루스 세웰이다. 그가 오기 전까지 애플은 주로 브랜드와 로고를 보호하는 등의 소극적인 법률 활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2009년부터 달라졌다. 세웰은 아이폰의 특허 리스트를 파악하고, 안드로이드 디바이스를 차례차례 공격하기 시작했다.

인텔에서 그를 데려온 사람이 바로 잡스다. 이 때문에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특허전쟁도 결국 완화되고 협상으로 마무리될 거라는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삼성전자 측은 이에 대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아이폰4S를 내놓자마자 바로 다음 날인 5일 프랑스와 이탈리아 법원에 아이폰4S를 팔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가처분 신청 대상국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미 각 나라 상황에 대한 법률적 검토가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사업자가 피해갈 수 없는 3세대(3G) 통신 표준기술에 대한 특허를 다수 보유하기 때문에 자신감을 드러낸다. 애플도 내년까지 줄을 잇는 삼성전자에 대한 각종 본안소송 심리 일정을 기다리고 있다. 팽팽하게 맞선 양측의 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결국 크로스 라이선스 합의에 다다르겠지만, 당분간은 양쪽 모두 벌려 놓은 싸움을 이어갈 전망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잡스 없는 애플은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잡스 같은 혁신적인 인물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잡스는 애플을 최상의 자리에 두고 떠났지만, 급변하는 전 세계 IT 업계에서는 안정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애플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은 맞지만, 삼성전자 같은 후발주자가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삼성전자가 IT 황제가 떠난 ‘춘추전국’ 시대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이승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사실상 패스트팔로어(빠른 추종자)로 일본 업체를 추격하며 성장했고,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며 최근 실적을 내기 시작했다”면서 “애플이 흔들리면 삼성전자가 방향성을 잃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잡스와 애플에 대해 종교에 가까운 열광적인 충성도를 보이는 팬층이 결합해 애플은 독특한 기업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장세진 싱가포르 국립대 석좌교수는 “사실상 잡스는 하나의 ‘종교’를 만들었다”면서 “종교 창시자는 죽더라도 ‘신도’들은 오래 남듯이, 잡스가 없더라도 애플이 자기의 가치와 팬을 그대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별한 게 없다며 전 세계를 실망시킨 아이폰4S가 현재 대히트를 기록 중인 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필립 실러 애플 마케팅담당 수석부사장은 10월 10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아이폰4S의 첫날 예약 주문 실적이 100만 대를 돌파했다”면서 “이는 애플이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 가운데 최고 기록”이라고 밝혔다.



주간동아 808호 (p56~57)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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