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5

2011.09.26

마음의 병은 그저 병 불이익 꼬리표 붙고 ‘사이코’가 웬말

정신건강 ‘정정당당’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1-09-26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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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초중고교생 10명 가운데 1명은 정신건강에 대한 정밀검진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근 3년 동안 정신건강 1차 검사에 참여한 학생 가운데 평균 13.5%가 정밀검진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런 진단을 받은 학생은 학부모 동의가 있으면 전문기관에서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구속력이 없다 보니 지난해의 경우 이 가운데 31.7%만이 외부 전문기관에 치료를 의뢰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 개선 시급

    마음의 병은 그저 병 불이익 꼬리표 붙고 ‘사이코’가 웬말
    한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에 알코올성 정신질환 환자는 6만715명에서 7만4678명으로 약 23% 증가했다.

    최근에 보도된 이 두 결과를 음미해보자. 하나는 정신질환 의심 청소년이 무척 많은데도 실제로 치료받는 학생은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알코올성 정신질환 환자 가운데 치료받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환자가 더 많다는 것이다. 아직도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정신이 건강한 것은 신체가 건강한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신건강을 챙기고 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을 고찰해보자.



    먼저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일반인이 가진 정신과 또는 신경정신과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현재 정신과에서 치료받는 환자는 대부분 스트레스, 불안, 우울, 불면, 대인관계 갈등 등의 문제 때문에 찾는다. 하지만 일반인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환자를 대할 때마다 환청이나 망상 같은 증상을 보이는 정신분열병 또는 심한 대인기피증이나 무기력증을 보이는 만성 우울증을 떠올린다. 이는 일반 병·의원을 찾은 환자를 감기, 배탈, 설사,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세분화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심각한 암이나 희귀 면역 질환자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학병원에 주로 중증 환자가 입원하는 것처럼, 큰 정신병원이나 대학병원 정신과 입원실은 정신분열병, 조울증 등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정신과 치료를 담당하는 전문의 대부분은 외래 통원 위주의 개인 병·의원을 운영한다.

    학회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기에 최근 부정적 인식이 강한 정신분열병을 ‘조현병(調絃病)’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조현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이다. 정신이 갈라지고 분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경계 혹은 정신적으로 튜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마음 기능에 문제가 생긴 질환이라는 과학적 해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신과나 신경정신과라는 진료 과목명도 일반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다 보니 ‘정신건강 의학과’로 명칭을 바꿨다. 하지만 명칭 변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정신질환을 인정해야 한다. 정신질환은 크게 정신병(Psychosis), 신경증(Neurosis), 인격 장애(또는 성격장애, Personality Disorder) 등 세 분야로 나뉜다. 실제 치료받는 집단은 정신병과 신경증 두 부류라 할 수 있다. 정신병은 현실 검증 능력에 일시적으로 장애가 발생한 상태로 정신분열병(조현병), 망상장애(의부증 또는 의처증 포함), 심한 조울증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질병에 걸린 환자도 치료를 잘 받으면 현실 검증 능력을 곧바로 회복할 뿐 아니라 일상적인 사회생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신질환 당당하게 인정하기

    마음의 병은 그저 병 불이익 꼬리표 붙고 ‘사이코’가 웬말

    한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환자를 대상으로 로샤 테스트(카드에 담긴 잉크반점에 대해 떠오르는 느낌을 이야기하도록 함으로써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검사)를 하고 있다.

    여하튼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정신질환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당신 아내는 지금 우울증에 걸렸습니다”라고 전문의가 진단하면 보호자인 남편은 대부분 “아니, 이 사람이 왜 우울증입니까? 제가 특별히 못해준 것도 없고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남부럽지 않습니다”라고 반문한다. “우울증은 3~6개월의 약물치료와 전문의 상담을 병행해야 합니다”라는 부연 설명에는 “이 사람이 의지가 나약하고 배가 불러서 그럽니다. 꼭 약을 먹어야 하나요? 운동 열심히 하고 앞으로 종교 활동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정신질환 병력에 대한 사회적 불이익을 철폐하는 일도 필요하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그 기록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녀 결혼이나 취업을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이 꽤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은 함부로 다른 사람이나 기관이 열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필자가 진료했던 청소년 환자 중에는 성인이 돼 결혼하고 출산하고, 사회적으로 대접을 톡톡히 받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무척 많다.

    이런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민간 보험회사의 행태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의료실비보장 보험이 인기리에 판매된다. 그런데 보험회사에서 정신과 치료 병력이 있는 사람의 가입을 거절하는 일이 종종 있다. 사전 고지 의무 사항에 과거 병력을 밝히게 돼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만일 사전 고지를 하지 않고 보험에 가입하면, 추후 보험금 지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 소견서나 확인서를 통해 현재는 완치 상태임을 밝히거나 일상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야 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니 참으로 번거로운 절차다. 보험회사도 결국 사람이 운영한다. 그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을 자기 기준대로 모두 ‘심신박약자’로 보는 셈이니, 무식해도 여간 무식한 것이 아니다.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밝힌 가수 김장훈 씨가 심신박약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사회에 내놓고 있는가. 얼마 전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필자에게 진료를 받은 한 고위공직자가 심신박약자이기 때문에 한국 정책을 좌지우지하는가. 학회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보험회사에 수차례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보험회사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한다.

    마지막으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부끄러움을 없애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을 가급적 밝히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자신을 ‘사이코’나 ‘정신이상자’로 취급해 멀리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걱정을 불식하려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긴 사람을 나약하고 사회생활에 실패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먼저 사라져야 한다.

    마음의 병은 그저 병일 뿐이다. 병이 생기면 의사에게 진단과 치료를 받으면 된다. 숨긴다고 병이 사라지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어지지 않으며,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진실이 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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