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5

2011.09.26

첨단기술=첨단무기 동아시아 군비경쟁 ‘먹구름’

정보기술 보유 한·중·일 군사기술 전용에 열 올려…역내 경제와 안보 상황 급변

  • 마이클 호로위츠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번역 | 부승찬 연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baramy1001@naver.com

    입력2011-09-2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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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단기술=첨단무기 동아시아 군비경쟁 ‘먹구름’
    중국이 군사력을 크게 강화하고 이에 대응해 일본과 러시아가 무기 구매 및 개발을 서두르면서, 동아시아 각국의 숨 가쁜 군비경쟁 흐름은 한국에도 큰 부담이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전통적인 군비경쟁뿐 아니라, 하이테크 산업을 활용해 새로운 정보무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전혀 다른 방식의 군비경쟁 흐름도 가속화한다는 점. 미래전(戰)에 대비해 벌이는 무인항공기와 컴퓨터 바이러스 공격 등의 첨단무기 개발 경쟁이 이들 나라 사이의 평화를 깨뜨리는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해부한 글을 번역, 소개한다.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 2011년 여름호에 실린 이 글의 필자는 군사혁신과 분쟁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호로위츠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다.

    동아시아의 경제와 안보 상황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것이 중국의 부상 때문만은 아니다. 가속화하는 세계화 흐름과 정보기술의 확산 또한 이 지역 주요 국가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이는 정보화시대 이후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몇몇 국가가 최첨단 무기체계 생산에 뛰어드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앞으로는 값비싼 재래식 무기가 아닌, 무인항공기(UAV)나 사이버전(戰) 능력, 첨단 로봇이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결정하는 시대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애초에는 군수용이 아니었던 상용 정보기술의 수준이 한 국가의 전력(戰力) 규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뜻이며, 미사일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라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아시아에는 중국, 일본, 한국 등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서 가장 앞선 국가가 모여 있고, 역사적으로 이러한 군사기술 혁신 경쟁은 필연적으로 주변국끼리의 군사적 긴장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특히 영토문제를 둘러싸고 이들 국가 사이에 형성된 긴장과 불신을 감안한다면, 첨단 정보기술이 동아시아의 평화에 치명적인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

    첨단 정보기술 산업에서 동아시아 국가의 우월한 지위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 세계가 이들 나라에 의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로봇 분야에서는 일본, 액정표시장치(LCD)에서는 한국과 대만, 반도체에서는 중국과 대만이 신기술 개발을 선도한다. 특히 이러한 하이테크 산업 성장의 배경에 혁신적인 민관 제휴 정책이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만 해도 정부 주도하에 연구단지를 조성해 관련 산업의 상승효과를 창출했고, 핵심 산업에 대한 산학 연계를 지원하고 있으며, 나노기술이나 생명공학 분야 연구개발에 대한 재정지원도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민간에서 만든 상업용 기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당 국가 방위산업체의 정보 활용 능력을 강화해 군사영역으로 파급된다. 무기 생산의 국제적 분업체계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차세대 무기를 제작하는 데 활용하는 민간기술을 흔히 이중용도(dual-use) 기술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정보기술과 군사기술의 통합이 이뤄지는 것이다. 지금은 민간 전용으로 분류하는 기술도 장차는 얼마든지 군사적 용도로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술을 확보한 국가는 머지않아 미국의 군사위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정밀무기를 배치해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사이버전과 로봇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관련 기술이 확산되고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어느 국가나 이러한 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보급률이 극히 낮은 국가에서도 이론적으로 막강한 사이버 공격 능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사이버전에서 국가기밀이나 네트워크를 방어해야 하는 이들은 시스템에 대한 모든 위협을 제거해야 하지만, 공격자는 바이러스를 침투시키거나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일격을 가할 수만 있다면 곧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란의 부셰르(Bushehr) 원자로를 무력화하려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스턱스넷(Stuxnet) 바이러스가 최근 전 세계 곳곳에 유포돼 위력을 떨친 사례에서 보듯, 전선에 군사력을 배치하지 않고도 원거리에서 성과를 올리는 정보공격은 이제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위협이 아니다.

    특히 미군은 위성이나 실시간 정보, 무인항공기, 소형 GPS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정보공격에 취약하다.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의 경우에도 정보네트워크가 무력화되면 본국으로부터 군사력을 지원받을 수 없거나 일부 무기체계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간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군사력을 통합하려 시도해왔던 미국의 군사혁신 흐름과는 정반대로, 실제 전쟁의 승패는 오히려 네트워크를 이용하지 않고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력에 달렸을 수도 있는 셈이다.

    로봇 기술 또한 마찬가지다. 10년 전만 해도 일반인에게 무인항공기 같은 기술은 ‘터미네이터’ 같은 SF영화의 소품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글로벌호크와 프레데터 같은 무인항공기는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장에서 반군 기지와 수뇌부를 추적하고 공격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수행했다. 테러용 급조폭발물(IED)을 탐지해 불능화하는 로봇 역시 미국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무인 무기체계 가운데 하나다.

    첨단기술=첨단무기 동아시아 군비경쟁 ‘먹구름’

    일본 하이브리드 보조수족(HAL) 제조업체 사이버다인사 연구원이 다리 부분 로봇을 착용, 시연하고 있다. 2009년 10월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계류장에서 열린 훈련에서 원격 로봇이 폭발물을 처리하고 있다. 2007년 4월 중국항법위성 COMPASS-M1의 발사 모습. 중국은 미국이 독식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 맞서 독자적인 위치확인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왼쪽부터).

    사이버전과 로봇 분야에서 두각

    앞서 말했듯,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는 이들 사이버 분야와 로봇 기술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능력을 보유했다. 2008년 열린 국제무인항공시스템박람회에는 35개국 정부 관료와 250개 이상의 업체가 참석했다. 매년 국제로봇박람회를 개최하는 일본은 정부 지원과 민간업체의 이해가 맞물려 이미 선두주자 자리를 차지했다. 2006년 미국 재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 기업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군용 무인항공기를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고, 2003년 이후 로봇산업이 40% 이상 성장한 한국의 기업도 세계시장을 선도할 능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동아시아 국가 상당수는 이미 자주적으로 미래 군사력의 핵심 요소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둔 상태다. 이를 통해 만든 신(新)군사기술이 유인전투기 같은 산업화시대의 재래식 군사장비를 대체하면 동아시아 안보환경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저렴한 비용으로도 충분한 군사력을 창출할 수 있다면 굳이 동맹을 통해 국가안보를 보장받으려 애써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60여 년간 이 지역에서 유지돼온 미국 중심의 동맹의 구조가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처럼 각 나라가 서로 중첩해 군사조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미국을 축으로 하는 현재의 지역 안보구도보다 더 불안정하리라는 사실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결국 무기체계 생산능력의 다극화는 동아시아의 안보불안으로 이어진다. 특히 영토분쟁에 휘말려 있는 중국-일본(댜오위다오 혹은 센카쿠 열도), 러시아-일본(쿠릴 열도), 한국-일본(독도), 중국-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일부 회원국(남중국해)의 관계는 더욱 그러하다. 최악의 경우 첨단무기 생산 능력의 배가가 거꾸로 재래식 무기체계 확보 경쟁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무인항공기 관련 기술에서 지역 내특정 국가가 앞서나간다면 긴장의 파도는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는 아직 예측일 뿐이고, 지난 세기 동안 동아시아가 긴밀한 경제적 유대를 통해 안정을 확대해왔다는 역사적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보화 흐름으로 상업용 기술과 군사기술이 사실상 하나로 합쳐진 미래에도 동아시아에서 이렇듯 안정적인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특히 그 과정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공약이 어떻게 변화할지가 향후 수년간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할 키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 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참조 | 영어 원문 www.globalasia.org/V6N2_Summer_2011/Michael_Horowitz.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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