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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말싸움으로 유독 명절만 되면 큰소리 나고 상처받는 이유

가족애 지키며 추석 나기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대화가 말싸움으로 유독 명절만 되면 큰소리 나고 상처받는 이유

두 형제가 있다. 형은 모범적이고 부모 말에 순종하며 자랐다. 반면 동생은 말썽만 피우는 집안의 골칫거리였다. 형은 명문대에 진학해 대기업에 취직했고, 중산층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동생은 부모 돈까지 끌어들여 장사를 하지만 신통치 않다. 큰며느리는 회사에 다니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시부모 집에 자주 오지 못한다. 둘째 며느리는 시부모 집에 자주 와서 집안일을 돕고, 가끔 용돈도 타 쓰곤 한다.

가족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대화가 말싸움으로 유독 명절만 되면 큰소리 나고 상처받는 이유
어릴 적 형제 사이는 절대적인 상하관계였다. 형의 말이 곧 법이었다. 동생은 형에게 대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형처럼 공부를 잘하지 못한 것이 열등감으로 작용했지만, 자신의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게을리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한때는 돈을 많이 벌어 형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열정마저 수그러들었다.

사는 것이 힘들며, 매사 불만이 많은 동생은 어느새 기존의 사회 질서에 비판적 태도를 갖게 됐다. 집에서 TV 뉴스를 보며 “가진 놈들은 다 그래. 배웠다는 놈들이 더 썩었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명절 때 부모님 집에서 모여 TV를 보다 결국 사단이 났다. 동생이 갑자기 “저놈 ·#52059;·#52059;대학 나왔지? 하여간 우리나라는 학연 때문에 부정부패가 심하다니까”라고 말을 하자 형이 발끈했다. 공교롭게도 동생이 지칭한 그 대학은 형이 나온 곳이었다.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형 들으라고 한 말이야?”



“형과 무슨 상관인데? 나는 저 사람 얘기한 거야. 내 말이 틀리지는 않았잖아? 우리나라는 학벌주의 때문에 망할 거야. 지역주의보다 더 나쁜 것이 학벌주의야.”

형제간 대화는 비단 이 문제뿐 아니라, 갖가지 정치적 이슈로 비화하기 일쑤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문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러 공과 및 자살 사건에 대한 평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 현안 문제, 한진중공업 사태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견해 등 실타래같이 얽히고설킨 문제가 토론거리로 등장한다.

문제는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싸움부터 벌인다는 점이다. 명절 때 가족 간 대화는 더욱 그런 경향이 크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윗사람이 말씀하면 가급적 잘 경청한 다음 마음속으로 새기라고 배웠다. 반론을 제시하거나 토를 달면 안 되기에 질문조차 삼갔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정에서 배웠던 방식이 더는 맞지 않음을 깨닫는다.

어떻게 세상 이치와 정의가 무조건 나이 든 사람의 말과 행동을 따르는 데 있으랴. 그러니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대들기도 하고 때로는 반론을 펴기도 한다. 합리적 토론문화에 익숙지 않은 터라 감정부터 앞세운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가’라는 두려움과 ‘내가 이렇게 말할 만큼 세졌구나’라는 묘한 승리감까지 느끼면서 감정이 매우 복잡해진다.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말이 빨라지며, 얼굴색이 변하면서 흥분 상태에 이른다. 교감신경계의 활성화 상태다.

교감신경계는 천적 또는 적군과의 대치 상황에서 활성화한다. 윗사람은 목에 핏대를 올리고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크게 내지르면서 되받아친다. 특히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그런 반응을 더 보이곤 한다. 동생이나 아들을 현재 성인이 된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내가 지도하고 가르쳤던 시절의 모습으로 본다.

이쯤 되면 주먹질만 없을 뿐 내용상 싸움이 벌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다른 사람과 언쟁할 때는 그렇게까지 흥분하지 않고 비교적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이상하게 명절 때 가족이랑 얘기하면 꼭 흥분하게 됩니다. 특히 아버지와 대화할 때 그래요.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다가도 끝에는 서로 기분이 상해 각자 방으로 들어갑니다.”

대화가 말싸움으로 유독 명절만 되면 큰소리 나고 상처받는 이유

여러 사회 문제를 두고 가족 사이에 토론이 아닌, 말다툼이 벌어지면서 갈등이 생긴다.

전통적 가족 역동의 변화

사람은 누구보다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아들은 역으로 아버지를 동일시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족이 똑같이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렬하다. 이런 소망은 다른 사람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경계와 의심을 품으면서 조심스레 접근한다. 슬쩍 던진 질문에 상대방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자기 속을 더 털어놓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이내 대화를 피하거나 다른 주제로 옮기곤 한다.

가족 간 갈등이 유독 명절 때 불거지는 이유는 ‘가족 역동(Family Dynamic)의 변화’에 있다. ‘가족 역동’이란 가족 내에서 구성원이 심리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전통적 가족 역동이란 아버지가 다른 가족을 지배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보좌한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인정받거나 헌신에 보답하려고 행동한다.

그러나 사회가 민주화하고, 경제 발전이 이뤄지면서 전통적 가족 역동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 역동이 존재하므로 한국 사회의 전형을 말하기 어렵다. 명절 때는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가족 역동과 추억의 가족 역동 간 충돌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공부를 못했던, 그래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던 셋째 아들이 이제는 돈을 많이 벌어 우쭐한 마음에 큰소리를 치려 한다. 하지만 나머지 형제자매가 여전히 어린 시절의 부족한 사람 취급을 한다면, 충돌은 필연적이다.

명절 때 가족 간 가장 좋은 대화 주제는 즐거웠던 추억이다. 그다음에 다소 속상했던 기억 또는 서운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얘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각자의 모습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릴 적 한 부모 밑에서 자랐을 때도 서로 생각이 달라 티격태격했을진대, 각자의 삶을 살다가 명절 때 잠깐 만나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자기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형이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다 보면 동생은 어릴 적 자신을 힘으로 밀어붙이던 형의 모습이 무의적으로 연상될 수 있다. 또 동생이 반론을 제기하다 보면 형은 어릴 적 자신에게 끝까지 대들어서 결국 몸싸움까지 해야 했던 동생의 반항적인 모습이 떠오를 수 있다. 말하는 내용과 합리성보다 때론 그 밑에 흐르는 감정적 교류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배려하고 주의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애’가 커간다. 지금은 가족끼리 365일 서로 가깝게 지내는 시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803호 (p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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