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8

2017.05.17

커버스토리| 대선 여론조사 결과에 담긴 숨은 1인치   <마지막 회>

여론조사로 되짚어본 5·9 압축대선| 꾸준함이 급등락을 이겼다

촛불로 뜬 이재명, 실언 한마디로 반 토막 안희정, 열흘 만에 지지율 급등락 안철수

  •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ankangyy@hanmail.net

    입력2017-05-15 1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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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압축 현상이 유난히 많은 나라다.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경제 급성장, 글로벌 연구 대상이 될 정도로 단기간에 이룬 절차적 민주주의 정착,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등등 모두가 ‘빨리빨리 문화’가 만들어낸 독특한 현상이다.

    5월 9일 19대 대선도 압축선거로 치러졌다. 일반적으로 대선은 대선주자들에 대한 사전 검증, 주요 정당의 당내 경선, 본격적인 선거운동까지 꼬박 1년이 걸린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한 것은 3월 10일이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대선이 시작됐으니 ‘1년 선거’가 3개월로 압축돼 진행됐다. 대선주자 2, 3위의 지지율이 열흘 만에 두세 배 급등하기도 하고 실언 한마디로 반 토막 나기도 했다. 그야말로 ‘자고 나면’ 지지율 순위가 바뀌곤 했다.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대선주자는 줄줄이 낙마했다. 다이내믹한 대선은 끝났지만 압축대선의 여운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뒤바꾼 1, 2위

    지난해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 24일 종합편성채널 JTBC는 확보한 태블릿PC를 토대로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이 최씨에게 사전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11월 3일 최씨가 구속되면서 대선주자 지지율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됐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0월까지 상당한 격차로 1위를 달렸다.

    지난해 11월 1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서 반 전 총장 지지율은 21.0%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후보(19.0%)에 근소하게 앞서 있었다(그래프 참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부분적으로 반영되면서 문 후보의 추격세가 본격화된 것이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이날 여론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이재명 성남시장의 급부상이다. 10월 29일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처음 개최됐다. 이때부터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 시장은 촛불집회에 참여해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다른 대선주자들이 박 전 대통령 거취를 놓고 우왕좌왕할 때 이 시장은 홀로 선명한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1〜2%를 오가던 이 시장 지지율은 순식간에 8.0%를 기록하며 대선주자 4위에 올랐다.

    현역 기초자치단체장이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시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급등세를 나타낸 것은 지난해부터 국내외를 강타한 반(反)기득권, 반정치 흐름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장은 특유의 ‘사이다 화법’으로 20〜40세대의 갈증을 풀어줬다. 젊은 층에서 지지율이 상승하자 전통적으로 야권 지지세가 강한 호남, 수도권에서도 덩달아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이날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 지지율은 20.0%로 반 전 총장과 동률을 이뤘다. 이 시장 지지율은 18.0%로 문 후보, 반 전 총장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 시장에 밀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1월 12일 범보수가 고대하던 반 전 총장이 귀국했다. 범보수 측은 반 전 총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정부 여당의 국정 실패를 구원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어정쩡한 행보를 보였다. 13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반 전 총장 지지율은 20.0%로 문 후보(31.0%)에 크게 밀렸다. 보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섣부른 우클릭으로 지지율 급락

    1월 13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 지지율은 12.0%로 곤두박질쳤다. 지지율 급락 원인은 대선 준비 부족과 섣부른 ‘우클릭’이었다. 이 시장은 복지와 노동 분야에는 강점이 있었지만 외교·안보, 경제 분야에서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즈음 이 시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헌법질서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보수”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이 중도와 보수를 타깃으로 삼으면서 20〜40세대와 호남,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빠지기 시작했다.

    반 전 총장은 맥없이 무너졌다. 2월 1일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의 고향인 충북 충주는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길 잃은 ‘충청대망론’은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로 옮겨붙었다. 안 지사는 출발부터 중도와 보수를 껴안았다. 그는 자유한국당(한국당)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대통합과 대연정’을 주장했다. 보수는 솔깃했다. 문 후보 대항마로 저울질이 시작됐다.

    2월 10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안 지사 지지율은 19.0%로, 문 후보 29.0%에 10%p 차이로 따라붙었다. 충청권과 보수의 지지가 확산되자 20〜40세대와 호남에서도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지지율도 11.0%로 3위로 도약했다. 황 대행은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과 60대 이상에서 인기가 높았다.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 결정했다. 일주일 동안 침묵을 지키던 황 대행은 3월 16일 대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선거일을 5월 9일로 지정했다.

    잘나가던 안 지사는 ‘선한 의지’ 발언으로 지지율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안 지사는 2월 19일 부산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도 선한 의지로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 했다”고 발언했다. ‘선의’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안 지사 지지율이 꺾이기 시작했다. 3월 17일 황 대행이 제외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안 지사 지지율은 18.0%로 문 후보 33.0%와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국민의당 안 후보 지지율은 이 틈새를 파고들며 10.0%로 올라섰다.

    4월 4일 국민의당 경선을 끝으로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됐다. 1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 지지율은 40.0%로 안 후보 37.0%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쳤다. 안 후보는 대구·경북에서 48.0%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보수층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7.0%,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각각 3.0%를 얻었다.



    안철수, TV토론 이후 내리막 치달아

    안 후보의 선전은 의미가 남달랐다. 안 후보는 중도성향의 제3 후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 출신으로 호남의 지지를 받는, 그리고 보수층과도 어느 정도 코드가 맞닿아 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캠프는 지난해 4월 총선과 같은 기적을 자신했다.

    우리나라의 선거 여론조사 보도·공표 시한은 선거일 전 6일이다. 5월 2일까지 실시된 여론조사가 보도·공표할 수 있는 마지막 결과다. 5월 3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 지지율은 20.0%로 급락했다. 2주일 만에 지지율이 거의 절반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안 후보 지지율 급락은 TV토론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4월 13일부터 5월 2일까지 모두 7번에 걸쳐 TV토론이 진행됐다. 5월 2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TV토론에 대한 긍정평가는 전국 기준으로 홍 후보 10.0%, 안 후보 4.5%이다. 안 후보에 대한 긍정평가는 대구·경북에서 특히 야박했다. 홍 후보가 21.6%인 데 비해 안 후보는 3.3%에 그쳤다.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고전을 면치 못하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대구·경북 TV토론 긍정평가는 22.2%로 1위였다.

    TV토론이 방송된 4월 말 이후 여론조사에서 대구·경북의 대표주자는 안 후보에서 홍 후보로 바뀌었다. 보름 만에 일어난 다이내믹한 변화였다.

    범진보 진영의 대선후보는 20〜40세대가 결정했다. 이번 대선이 과거와 다른 특징이다. 문 후보는 지난해 11월 이후 20〜40세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문 후보의 대세론이 흔들리지 않은 이유다. 과거에는 호남이 범진보 진영의 대선후보를 결정하면 젊은 세대와 진보 진영이 뒤따르는 방식이었다. 이재명 시장, 안희정 지사, 국민의당 안 후보가 차례로 문 후보를 넘지 못한 것은 20〜40세대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보수 후보는 대구·경북과 60대 이상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대구·경북과 60대 이상은 보수의 심장이다. 보수층에게 이번 대선은 ‘문재인만 아니라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었다. 보수층이 관심을 가졌던 반 전 총장, 황 대행, 안 지사, 국민의당 안 후보가 잇따라 문 후보 대항마로 부침을 겪었다. 결국 보수층은 한국당 홍 후보를 최종 지지후보로 선택했다.
    대선 직후 공개된 5월 9일 한국갤럽의 최종 여론조사는 문 후보 38.0%, 홍 후보와 안 후보가 똑같이 17.0%로 나타났다. 유 후보와 심 후보는 각각 7.0%를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실제 득표율에서는 홍 후보가 24.0%를 획득해 21.4%인 안 후보를 앞질렀다.

    보도·공표가 제한되기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홍 후보와 안 후보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비슷한 지지율을 얻는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5월 3일 CBS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42.4%를 획득해 1위를 지켰다. 이어서 홍 후보와 안 후보가 각각 18.6%로 나타났다. 심 후보는 7.3%, 유 후보는 4.9%를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깜깜이 선거 기간에 이뤄진 실버크로스

    여론조사는 조사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앞선 한국갤럽과 CBS 여론조사는 유·무선 전화면접조사로 진행됐다. 유·무선 자동응답시스템(ARS)조사 방식에서는 보도·공표가 제한되기 전에도 홍 후보가 안 후보를 앞서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5월 2일 인터넷매체 데일리안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 지지율은 21.2%로 안 후보의 19.4%를 앞섰다. 같은 날 한국당 산하 여의도연구원은 홍 후보 지지율이 24.9%로 나타나 안 후보의 20.1%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렸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없는 깜깜이 선거 기간에 홍 후보가 안 후보를 역전하는 ‘실버크로스’가 일어난 것이다. 다만 일부 ARS 여론조사는 보도·공표가 제한되기 전에도 실버크로스를 정확히 예측했다. 이는 전화면접조사에서 포착되지 않은 숨은 보수층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 숨은 보수층은 홍 후보와 안 후보의 실제 득표율 차이(약 3%p)와 유사한 규모로 추정된다.

    깜깜이 선거 기간에는 가짜 여론조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무차별 유포됐다. ‘민주당 선대위 마지막 여론조사’ 명의로 문 후보와 홍 후보의 격차가 20%p라는 결과가 카카오톡으로 전파됐다. 안 후보는 10%대 중·후반으로 표기돼 있었다.

    ‘한국당 여의도연구원’ 명의의 여론조사 결과는 놀라울 정도다. 홍 후보가 문 후보와 박빙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선 전날인 5월 8일에는 홍 후보가 문 후보에 앞서는 조사 결과가 SNS를 통해 퍼져나가기도 했다.

    ‘국민의당 명의’의 수상한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5월 8일 이데일리는 국민의당 김철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의 발언을 인용해 안 후보가 문 후보에 5%p 이상 앞선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대선일인 5월 9일에도 가짜 출구조사 결과가 SNS를 통해 무차별 확산됐다. 문 후보의 승리를 예측하는 조사 결과가 많았지만, 홍 후보가 문 후보와 오차범위 내 혼전 중이라거나 안 후보가 1위라는 내용도 있었다. 현행 선거법은 보도·공표 여론조사에는 엄격하다. 어떤 경우에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조사 결과는 보도·공표할 수 없다. 깜깜이 선거기간과 대선 당일 SNS에 유포됐던 여론조사 및 출구조사는 대부분 불법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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