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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소수 학문 해봤어?”

연구 시설과 자료 태부족에 서러움 … 진리의 영역 개척엔 자부심

  • 이설 기자 snow@donga.com journalog.net/tianmimi

“소수 학문 해봤어?”

‘우주기상’ ‘해양시스템공학’ ‘웹사이언스공학’ ‘중성자별 블랙홀’…. 소수 학문, 신생 학문, 비인기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는 괴롭다. 석·박사 시절에는 관심사가 같은 은사를 찾느라 고군분투, 박사 이후에는 취업 걱정에 노심초사, 연구하는 동안에는 학문적으로 의견을 나눌 동지가 없어 발 동동. 기자재가 없어 불타는 연구열을 달랠 때도 많다. 대한민국 이색 학문 종사자들의 애환을 들여다봤다.

이공계 분야 소수 학문 연구자들이 꼽는 가장 큰 걸림돌은 부족한 연구 시설이다. 충남대 자연과학연구소 오수연 연구교수는 ‘우주기상’을 연구한다. 대략적으로 말하면, 태양 활동이나 지자기(지구가 가지는 자기) 변화를 토대로 우주기상을 살피는 분야다. 기압, 바람, 구름의 움직임으로 일기를 예측하는 일기예보와 비슷한 원리다.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연구자

“소수 학문 해봤어?”

2008년 EU가 건설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 내부. 입자물리 분야의 큰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가 우주기상을 만난 것은 박사 과정 시절. 태양풍을 연구하던 중 알게 된 우주선(宇宙線·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높은 에너지의 미립자와 방사선)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지자기와 똑같은 우주선 무늬가 마냥 신기했다. 하지만 본격 연구를 앞두고 그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불과 10여 년 전에 한국에 소개된 학문인 탓에 연구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것.

“우주선을 연구하려면 우주선 중성자 관측기(Neutron Monitor)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국내에는 아직 이 기기가 한 대도 없어요. 연구가 어려운 것은 물론, 해외 저널에 논문을 투고해도 신뢰를 받기 힘들었죠. 크기와 무게가 상당하고 고가라 기기를 갖춘 나라도 많지 않고요. 그래서 여러 나라가 기기를 돌려쓰거나, 중고로 매입하기도 합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주환 박사도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 박사의 주요 연구 분야는 전자소자. 최근에는 차세대 전자소자로 각광받는 태양전지 디스플레이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매년 서너 번 경북 포항에서 3~7일씩 머문다. 포항에 있는 방사광가속기로 실험을 하기 위해서다. 방사광가속기는 둘레 500~700m에 가격은 5000억 원대로 미국, 일본, 대만 정도가 구비했다. 그는 “전자소자 관련 응용 분야는 발달했지만, 기초 분야는 미흡하다. 기초연구 없이는 삼성과 LG가 아무리 디스플레이를 많이 만들어도 로열티로 30%를 지급해야 한다”며 설명을 이었다.

“포항에 있는 방사광가속기는 생산된 지 15년이나 돼 낡은 데다 수준도 떨어져요. 게다가 지금은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잠시 사용을 중단한 상태고요. 지난해 3500여 명이 그 가속기를 사용했는데, 일본과 대만은 한 해 가속기 사용자가 각각 1만5000명, 1만 명가량이에요.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 일반적인 결과가 아닌, 양질의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실험이 필요해요.”

카이스트 해양시스템공학과 한순흥 교수는 방학마다 학생들과 조선소로 떠난다.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안전시스템연구소에도 수시로 드나든다. 해양시스템공학과는 카이스트가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World Class University·WCU) 대상자로 뽑히면서 2009년 개설된 신설학과로, 해양과 관련한 대형 시스템과 장비 연구를 목표로 한다. 한 교수는 “연구소는 설비를 더러 갖추고 있지만, 대학은 수억, 수십억 원씩 하는 장비를 사들이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우리 학과는 WCU로 정부 지원을 받긴 하지만, 신생 학문이라서 기자재 측면의 어려움이 더 크다”고 토로했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학문적 동료가 적다는 점도 고민이다. 소수 학문을 전공한 한 박사 과정 연구원은 “연구 커뮤니티가 크면 다양한 의견이 활발하게 오갈 텐데, 나는 교수님과 의견을 나눌 뿐이다.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부산대 물리학과 이창환 교수는 “국내에서 중성자별 블랙홀을 연구하는 학자는 손에 꼽힌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공동연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사립대의 한 물리학과 교수는 후학 양성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학교는 유행하는 학문을 선호하고, 자연히 소수 및 신생 학문 전공자는 취업이 힘들 수밖에 없어 대학원생마저 해당 전공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어지는 그의 설명.

“입자물리는 20세기 초부터 물리학의 주류였지만, 실험장치인 입자가속기를 만드는 데 따른 재정적 부담으로 열기가 식기 시작해 지금은 연구 인원이 많지 않다. 국내에서 활발하게 연구하는 학자는 10~15명이다. 분위기가 하강 곡선을 그리다 보니 후학 양성에 어려움이 있다. 가뜩이나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인재가 없는데, 그로 인해 학생 수준이 더 떨어져 걱정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에서 보람

이런저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학자들은 해외 그룹과 공동연구를 도모한다. 오수연 교수는 국외 선진 연구그룹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국내 학계에서 우주기상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해외 학계에 한국의 우주선 연구 현황을 알렸다. 이창환 교수는 2년 전부터 컨소시엄을 만들어 중력파를 탐지하는 해외 실험실과 공조하는 데 성공했다. 중력파 탐지가 가능한 거대 실험실은 미국에 2개, 그리고 유럽연합, 일본, 독일에 각 1개씩 있다. 하지만 해외 공동연구도 쉽지 않다. 고려대 물리학과 최준곤 교수는 “강의와 해외 공동연구를 동시에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며 말을 이었다.

“입자물리 가속기는 유럽연합에 하나밖에 없고, 이마저도 해외 학자에게는 배타적이다. 공동연구가 가능하지만 주변국 학자는 한계가 있다. 다만 대학원생 시절 그곳 연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국내 교수는 공동연구가 쉬운 편이다. 하지만 교수는 국내에서 강의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방학을 이용해 연구를 하다 보니 찬밥 신세가 됐다. 다들 당번을 서면서 실험하는데, 단기간으로 드나들면 누가 좋아하겠나.”

하지만 학문을 선도한다는 뿌듯함도 있다. 카이스트는 올해 웹사이언스공학 석·박사 과정을 개설했다. 이것 역시 WCU 사업의 일환으로, 웹을 하나의 인공 브레인으로 보는 학문이다. 카이스트는 2월 말 웹사이언스를 창시한 해외 학자 3명을 초청해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국내에서 웹사이언스공학 붐을 일으키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웹사이언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다른 대학에도 학과 개설을 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꾸준히 노력한 결과, 유관기관의 지원을 받아 올 연말 우주선 중성자 관측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우주기상은 지구 기후와 관련해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연구 분야다. 이 학문이 정착하는 데 일조할 수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1.04.04 781호 (p52~53)

이설 기자 snow@donga.com journalog.net/tianmi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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