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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편대 비행 미끼 ‘덥석’ 미사일 기지 초토화됐다

‘전자戰’ 중요성 갈수록 부각 … 개전 초기에 승패 사실상 결정

  • 주성민 군사전문 자유기고가 bluejays@kebi.com

편대 비행 미끼 ‘덥석’ 미사일 기지 초토화됐다

최근 국내 언론사에 80쪽 분량의 북한군 전자전(Electronic Warfare) 비밀교범이 입수됐다. 자료에는 북한군이 운용하는 전자대책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장거리포가 숨겨진 주요 시설에 레이더 전파를 흡수하는 스텔스 페인트를 칠하거나, 가짜 시설과 장비를 만들어 진짜처럼 보이게 디스플레이하는 것이다. 스파이위성과 고도정찰기를 속이기 위해서다. 이런 것은 한미연합사를 상대한 위장과 기만의 전자대책(Electronic Counter Measures·ECM) 위주로 보인다. 높은 비용과 기술이 필요한 대전자책(Electronic Counter Counter Measures·ECCM)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료에는 김정일의 말이 기록돼 있다.

“현대전은 전자전이다. 전자전에 따라 현대전의 승패가 좌우된다.”

북한도 전자전의 중요성을 파악한 것으로 보아 머지않아 이 분야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현대전에서는 전자기술이 빈약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1973년 제4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은 이것을 뼈저리게 경험했고, 이후 전쟁 초기의 실패를 통해 정보전과 전자전에 더 힘을 기울이게 됐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전문을 보냈다.

‘아랍이 당신들을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에 소련 군사고문단이 상주하던 이집트는 시리아와 연합, 비밀리에 전쟁을 준비했다. CIA는 첩보를 통해 중동전이 벌어질 가능성을 감지하고 있었다. 1973년 10월 4일, CIA는 전쟁을 경고했으나 이스라엘 군정보부 아만(AMAN)은 이렇게 회신을 보냈다. ‘우린 그들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정보기관 모사드(Mossad)도 시리아의 스파이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아만에 여러 차례 경고했다. 그러나 보안 분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아만은 무시했다. 그들의 견해는 ‘당분간 전쟁은 없다’였다.

CIA가 경고한 지 이틀 뒤, 중동전 사상 최대의 기갑전력을 앞세운 시리아군과 이집트군이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수도 텔아비브 전역에는 비상경보가 울리고 직장에서 일하던 수만 명이 각자의 부대로 동원됐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적의 맹렬한 포격으로 최전선의 이스라엘군은 전사자가 끝없이 늘어났다. 만신창이가 돼가는 그들에게 사령부의 지시가 내려왔다.

‘지원부대 도착 때까지 48시간만 바 레브 방어선(Bar Lev line)을 사수하라.’

최전선에 배치된 병사들은 경험이 부족한 10대 후반의 청소년이었다. 이들은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500명 이상이 대포 밥이 돼 전사하고, 1000여 명이 부상하면서 방어선은 아랍군에 뚫리고 말았다. 최전선의 이스라엘 기갑여단은 시리아군 기갑부대에 전멸되다시피 했다.

이스라엘 공군기는 아랍군의 소련제 지대공 미사일 SA-6에 무수히 격추됐다. 레이더 추적을 피하려고 저공으로 내려온 항공기는 대공자주포(對空自走砲)의 매복에 걸려 100여 대가 격추됐다. 피해가 감당할 수 없이 커져 국경선이 무너질 위협에 직면하자 이스라엘군 수뇌부는 핵공격을 준비했다. 20kt(킬로톤)의 핵폭탄으로 이집트 카이로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공격하기로 했다.

이집트에 핵탄두를 제공하라

이 전쟁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적을 향해 떠났던 이스라엘군 장거리정찰대가 사령부에 다급한 보고를 해왔다.

‘이집트 2군과 3군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사령부는 긴급작전을 전개했다. 정보를 토대로 반격을 시작한 이스라엘군은 수에즈 운하 도강작전에 성공했다. 교두보가 확보되자 아리엘 샤론 육군소장이 지휘하는 기갑부대가 이집트 내륙으로 진격했다.

전쟁 초기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이스라엘 공군은 대항 수단을 찾아냈다. 공군정보부는 전자정보(ELINT)를 수집했다. 그들은 전자정보를 통해 전자지원책(Electronic Support Measures)을 시작했다. 정보처리 프로세스가 완성되자 적 레이더의 위치가 파악되고 병기 식별이 가능해졌다.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미사일 기지를 파괴할 것인지, 우회할 것인지를 결정하며 제공권을 장악해나갔다. 그들은 300대 이상의 아랍기를 격추했다. 공중 지원이 이뤄지자 이스라엘 육군은 이집트 3군을 사막에 고립시켰고 아랍의 방위선은 무너졌다. 전세가 역전돼 이집트가 위험해지자 소련이 위협했다.

‘더 진격하면 우리가 직접 개입하겠다.’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이스라엘의 총리 골다 메이어에게 전쟁을 중지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이스라엘 병사 2500여 명이 전사한 제4차 중동전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스라엘은 국경이 무너지는 사태를 두려워했다. 이들은 최후의 순간을 대비해 ‘예리코(Jericho)’ 지대공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했고, 미국은 이 사실을 고공정찰기 SR-71 블랙버드가 수집한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당시 600만 인구가 1억5000명이 넘는 적대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어 모든 문제는 최종적으로 생존과 직결됐다. 이미 정치적 결정이 내려져 있던 이스라엘은 국경을 침범당했다면 핵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미 육군과 공군의 고급 정보장교였던 리처드 프리드먼 예비역 대령과 윌리엄 케네디 예비역 대령은 공동저술인 ‘정보전쟁(The Intelligence War)’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닉슨 대통령은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에게 사태를 설명한 후, 소련이 이집트에 판매한 스커드 미사일에 핵탄두를 제공하더라도 묵인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서로 반격(counterpunch)하는 규모로 수습하는 선에서 끝낼 것을 합의했다.”

닉슨이 브레즈네프와 위성을 통한 핫라인으로 협상한 내용이다. 소련이 탄두만 주면 이집트는 핵무기를 갖게 되는데, 만일 두 나라가 핵공격을 해도 세계적인 핵전쟁의 확대는 피하자는 것이다. 전쟁은 더 확전되지 않아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핵전쟁이 벌어지는 최악의 사태는 막았다.

소련 오데사의 니콜라예프 해군기지를 떠났던 고속수송선은 회항 명령을 수신하고 뱃머리를 돌렸다. 이 배에는 ‘밀가루’를 싣고 있다는 선적명세서가 있었으나 실린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79년 3월, 이스라엘 베긴 총리와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조우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 이들은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이스라엘의 1948년 독립전쟁 이후 31년간 4차례나 전쟁하며 피 흘려온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중동의 평화를 위해을 노력하자는 약속이었다. 제4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했으나 심리적으로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편대 비행 미끼 ‘덥석’ 미사일 기지 초토화됐다

2008년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에서 승리해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지 41주년이 되는 날을 맞아 예루살렘 시내로 쏟아져 나온 군중 위로 한 어린이가 이스라엘 기를 흔들고 있다.

포클랜드전쟁이 가열되던 1982년 5월, 영국의 최신형 구축함 셰필드호(號)는 아르헨티나 공군기가 발사한 미사일 한 방에 맥없이 격파돼 가라앉았다. 미사일은 프랑스 군수업체 에어로스파샬의 엑조세(Exocet)였다. 엑조세 미사일은 자동항법장치로 해수면과 거의 같은 고도로 날아가기 때문에 레이더로 탐지하거나 방어하기가 쉽지 않다.

셰필드는 영국 함대를 방어하는 몇 겹이나 되는 방공체계의 일부로 설계된 주력함이었다. 이 때문에 영국군 수뇌부는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셰필드가 격침된 건 전자전의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함대에 반드시 필요한 광역 전자정찰을 위한 조기경계 레이더가 없었고, 전자전을 수행하는 항공기도 없었다. 따라서 적절한 정보 수집이 안 돼 대응은 불가능했다. 셰필드에 배치된 ‘시 다트’ 미사일은 원거리 공중목표를 요격하는 체계였다. 엑조세 미사일의 접근을 발견했을 때도, 시 다트의 원거리 체계로는 시간이 걸려 목표를 조준할 틈도 없었다. 전자전에 소홀했던 영국 해군은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제4차 중동전 이후 이스라엘군은 항공 정찰을 위해 원격조종 무인항공기(RPV) 개발에 들어갔다. 그들은 여러 기종의 개발 끝에 ‘스카우트’ RPV를 완성했다. 스카우트는 고도 3000m에서 시속 140km로 4시간 반 이상을 비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스카우트를 시리아로 날려 보냈다.

원격조종 무인항공기 스카우트

스카우트의 기체는 소형이어서 레이더 화면에 비치는 영상은 아주 작은 크기였다. 그만큼 포착하기 힘들어 보이지 않는 정찰기에 가까웠다. 스카우트부대 조작병들은 지상 컨트롤 스테이션에서 125분의 1 정밀지도를 가지고 원격조종했다.

TV 줌 카메라와 적외선 영상장치를 탑재하고 날아간 스카우트는 시리아 육군과 공군을 감시하며 부대 위치와 이동정보를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실시간 정찰이 가능해지자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목표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스카우트는 적의 상공에서 이스라엘군 사령부까지 전자광학으로 디지털 데이터 링크를 했다. 스카우트부대는 수집된 정보를 분석해 시리아로 무인항공기 드론을 날렸다. 시리아군 미사일기지에서 레이더로 드론을 포착하자 스카우트부대는 기지의 위치를 탐지했다. 스카우트 프로젝트는 완료됐고 전쟁방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준비도 끝났다.

이스라엘은 1982년 6월 레바논전쟁을 시작했다. 각료회의에서 전쟁 허가가 떨어지자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은 500대의 전차와 6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레바논 침공을 명령했다. 이스라엘 육군은 위치가 확인된 시리아군 미사일기지를 향해 지대지 미사일 울프를 발사해 공격했다. 공군의 A-4 스카이호크 공격기들은 대레이더 미사일 시라이크를 달고 날아가 베카고원의 미사일기지를 공격했다. 시라이크는 적의 레이더 전파를 역추적해 들어간다. 공격기들은 베카고원의 SA-6 미사일기지를 파괴했다.

베카고원 상공에 떠 있던 스카우트는 미사일의 탄착지점을 확인해 후방지휘소로 실시간 중계했고, 샤론 국방장관은 스크린을 보며 전황을 확인했다. 시리아군은 대레이더 미사일의 공격을 피하려고 레이더를 꺼버렸다. 레이더 전파를 발사해 유도하지 않으면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다.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86대의 시리아군 항공기를 격추했다. 이스라엘군의 압도적 승리는 전자전 덕분이었다.

현대전에서 전자전은 중심 구실을 한다. 지상전에서는 정보 수집과 정찰을 통해 적의 전자적 발신원을 포착한다. 포착되면 전자정보를 수집해 위치를 파악하고 식별해 전자전이 시작된다. 초기단계는 식별된 적의 통신을 도청해 정보를 얻는다. 다음 단계는 전자대책(ECM)이다. 적에게 기만신호를 보내거나 전파방해(jamming)를 걸어 교신을 방해하고 혼란시킨다. 전파방해를 걸 때 실수하면 아군의 통신까지 방해할 수 있다. 더 높은 단계는 강력한 전파를 발사해 적의 통신을 무력화하는 것이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위치가 드러난 적의 기지를 폭격한다.

전자전의 주요 목표는 적의 지휘통제 통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야전부대 지휘관은 최전선의 부대와 연속적인 교신으로 전투를 지휘해야 한다. 그러나 통제체계가 파괴되면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없게 된다. 적의 지휘통제 통신을 전자전으로 공격하는 일은 적의 두뇌에 대한 공격이다.

벙커 기기도 파괴하는 전자기 펄스탄

이라크군 통신 지휘통제소가 있던 알쿠트 지역은 SA-6 미사일기지가 밀집해 있었다. 전자파 교란작전을 수행하는 미 해군의 EA-6B 프라울러 편대가 이 지역에서 작전을 시작했다. 전자전 항공기들이 강력한 전자파를 발사하며 이라크군 레이더를 교란해 길을 열자 뒤따라온 공격기들이 미사일기지를 모조리 파괴했다. 이라크군이 치밀한 방공망을 구축했으나 전자전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프라울러는 4명의 해군장교가 탑승한다. 1명은 조종사고, 3명은 전자전을 담당하는데 적의 레이더와 통신을 방해해 기능을 마비시킨다.

미군은 적의 방공망을 제압하는 작전을 ‘시드(SEAD)’라고 한다. 1993년 걸프전이 시작되자 시드 작전에 나선 미 공군 F-4G ‘와일드위즐’ 편대는 레이더에 잡히도록 비행하며 미끼를 던졌다.

이라크군은 미사일로 공격하려고 레이더로 추적했다. 그 순간 전자전 장교는 전파를 역추적해 미사일기지의 위치를 찾아냈다. 사냥에 들어간 와일드위즐은 전파를 포착하는 초고속 대레이더 미사일 AGM-88을 발사해 기지를 불태웠다. 미 해군 F-18 호네트 전투기의 호위 속에서 와일드위즐 편대는 미사일기지와 방공포기지를 수십 곳 파괴했다.

F-4G 와일드위즐은 F-4 팬텀을 전자전 항공기로 개조한 것이다. 이라크군이 레이더를 작동시키는 일은 자살과도 같았다. 그들은 미군 공격기를 겁내 레이더를 켜지 못했고, 미사일도 발사할 수 없었으며, 전투기도 제대로 이륙시키지 못했다.

그나마 소수의 전투기는 이륙했지만 지상관제소가 레이더를 작동하지 않자 적절한 요격 지시를 받을 수 없어 쉽게 격추당했다. 걸프전에서 연합군이 공중 전역을 시작한 지 3일이 지나자 이라크 공군기가 더는 뜨지 못했다. 이라크는 전자기술도 빈약했지만 전자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의 통신체계는 ‘전자기 펄스탄’으로도 파괴한다. 자동차가 강력한 송신장치 근처를 지나가면 라디오에서 잡음이 들린다. 만일 라디오 주파수가 전파 발신원과 같으면 수신은 불가능해지고, 발신원의 출력이 아주 강력하면 라디오는 타버린다.

이처럼 전자기 펄스탄이 폭발하면 매우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적의 전자장비와 통신장비에 순간적 과전압을 일으켜 파괴한다. 전자기 펄스는 방화벽으로 엄호된 지하 벙커도 케이블을 타고 들어가 장비를 무력화한다.

모든 군대의 지휘관이 적의 취약지점에 병력을 집중시키듯, 전자전은 적의 취약점을 찾아 기능을 정지시킨다. 전장에서 전자전으로 공격받은 쪽은 대전자책(ECCM)으로 대항해야 맞설 수 있다. 현대전은 첨단의 전자기술과 통신기술이 결합된 전자전이 승패를 결정하게 됐다.



주간동아 2010.09.06 753호 (p54~57)

주성민 군사전문 자유기고가 bluejays@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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