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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강원의 숲을 걷다③

‘며느리배꼽’…‘애기똥풀’… 야생화 사연 눈이 배부르다

수타사 산소길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며느리배꼽’…‘애기똥풀’… 야생화 사연 눈이 배부르다

‘며느리배꼽’…‘애기똥풀’… 야생화 사연 눈이 배부르다
숲 속 가득 풍기는 향긋한 송진 냄새는 비가 와서 그런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폐 속까지 숲의 향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산소길은 강원도가 야심차게 조성한 걷기 전용 길이다. 강원도 전역에 70개의 걷기 구간을 만들고 있어 2018년까지 해마다 새로운 길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중 홍천군에 자리한 ‘수타사 계곡 산소길’은 지난해 조성된 제1호 산소길이다. 묘지가 아니라 ‘숲길을 걸으면서 강원도의 맑은 산소를 마신다’는 의미에서 산소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욕망을 덜어내 완성되는 사랑나무

산소길은 숲길 입구에서 500m가량 들어간 수타사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수타사로 향하는 짧은 길의 아름다움도 결코 산소길에 뒤지지 않는다.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입구 오른쪽의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언뜻 봐도 이상하다. 소나무의 아랫배가 V자로 패어 붉은빛 살결을 드러내놓고 있다. 손으로 문지르면 금방이라도 핏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다.

“일부로 파놓은 건가요?”

차주원 숲해설사는 “아픈 시대적 생채기가 담겨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제는 부족한 전쟁물자를 채우기 위해 전시 총동원 체제에 돌입했다. 숟가락, 솥 등 자원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모두 수탈해 갔다. 나무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는 원유를 대체하기 위해 소나무 송진 채취에 열을 올렸다. 소나무에 칼을 들이대 깊은 상처를 낸 뒤 송진을 채취, 이를 정제해 목탄차와 공업용 연료로 사용했다. 70년 넘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때 입은 상처가 이처럼 뚜렷이 남아 있는 것이다. 상흔은 소나무의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광복 후 새롭게 심은 소나무들은 곧게 자란 반면, 송진을 채취한 나무들은 구불구불 자랐다.



“송진 채취로 영양이 부족하니깐 상처가 난 쪽으로 나무줄기가 기웁니다. 그러다 균형을 잡기 위해 다시 반대 방향으로 기울고, 이게 반복되다 보니 곧게 자라지 못하고 등이 굽고 구불구불한 형태가 됐습니다.”

인간에 의해 상처를 받았지만 나무는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를 마시며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내보낸다. 소나무의 아낌없는 사랑에 감사하며 소나무를 살며시 안아주자 푸르스름한 솜털이 눈에 띈다. 이끼와는 다른 지의류로 물기를 먹을수록 파란색을 띤다. 북쪽을 향해 생기기 때문에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방향을 찾는 데 유용하다.

상처 가득한 소나무 뒤편으로 100년이 훨씬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로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여느 나무와는 다르다. 분명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지만 가지가 맞닿은 채 오랜 세월 자라면서 뒤엉켜 마치 한 그루 같다. 일종의 혼인목이다.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 가지가 이어지면 연리지, 뿌리가 이어지면 연리근으로 불린다. 혼인목은 일명 ‘사랑나무’라고도 한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를 위해 각자의 욕망을 덜어냄으로써 완성된다. 같거나 다른 종의 두 나무가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가 되는 사랑이다.

고즈넉한 풍경 소리의 수타사

‘며느리배꼽’…‘애기똥풀’… 야생화 사연 눈이 배부르다

1 손톱 크기의 흰색 꽃이 장구 치는 모습을 닮은 ‘가는잎장구채’. 2 ‘며느리배꼽’은 잎자루가 잎 뒷면 배꼽 부분에 붙은 데서 이름이 유래됐다.

곧바로 수타사로 향하는 큰길이 있지만, 진정한 숲의 아름다움을 맛보려면 수변 관찰로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 계곡물을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만들어놓은 보를 건너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처음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가지가 층층이 올라가는 층층나무다. 층층나무의 꽃은 특별하다. 나무 이름 그대로 꽃이 층층(層層)마다 흐드러지게 피기 때문이다. 큰 나무에 무수하게 핀 하얀 꽃을 멀리서 보면 마치 아카시나무 꽃 같다. 꽃이 아름다운 데다, 보기 좋게 층을 이루며 무수히 피는 까닭에 관상수로 인기다.

“한번 씹어보세요.”

차 해설사가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건넨다. 망설임 없이 입에 넣었다가 이내 퉤퉤 내뱉었다. 소의 태처럼 쓰다는 소태나무다. 하도 쓰고 독해 귀신도 함부로 접근을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참이 지난 뒤에도 입 안에 쓴맛이 가득하다. 소태나무 옆으로 귀퉁나무가 살짝 고개를 들이민다. 봄철이 되면 가장 먼저 잎이 나서 유난히 빛깔이 눈부시다. 겨우내 휴식을 취한 농부들이 “놀기를 끝내고 일터로 돌아가야 할 때”를 알게 된다고 해 귀농나무로 불리던 것이 귀퉁나무로 변했다.

0.55km의 짧은 거리지만, 갖은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에 취해 걸음을 자주 멈추다 보니 한 시간이 족히 걸린다. 바람 소리로 들릴 듯 말 듯한 풍경 소리에 서둘러 발걸음을 수타사 쪽으로 돌린다. 공작산 끝자락에 자리한 수타사는 은은한 팔각지붕이 으뜸이다. 신라 성덕왕 7년(708)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수타사는 창건 당시 우적산 일월사로 알려졌지만, 조선 세조 3년(1457) 지금의 위치로 자리를 옮겨 이후 수타사로 불리게 됐다.

수타사는 이름 그대로 아미타불의 무량한 수명을 상징하는 절이다. 영서 내륙의 대표적인 고찰답게 귀중한 문화유산도 많다. 박건환 홍천군 문화유산해설사는 “문화재로는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해 조선 세조 때 편찬한 ‘월인석보’ 제17권과 18권이 수타사 사천왕상 복장유물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수타사 경내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또다시 숲길로 향한다. 본격적인 산소길은 여기서부터다. 노란 어리연꽃이 가득한 연밭을 지나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오솔길로 접어든다. 새롭게 조성된 길이지만 전혀 눈치를 못 챌 만큼 자연스러운 숲길이다. 산을 깎아 길을 평평하게, 넓힌 것이 아니라 좁은 길로 만들어놓으니 수백 년 전에 조성된 길 같다.

숲에는 화려한 꽃과 웅장한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잡초라 불리는 갖가지 야생초도 당당한 숲의 일원으로 그 역할을 담당한다. 단지 인간에게 별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잡초로 분류되고, 경우에 따라 가차 없이 제거되지만 잡초는 생태적으로 소중한 존재다. 잡초 한 종이 존재함으로써 9종의 작은 곤충이나 벌레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잡초로 분류해서 뽑아버리는 행위는 결국 10종류의 생명을 빼앗는 셈이다.

산소길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지그시 풀이 밟힌다. 발목까지 누인 풀은 이내 먼저 일어난다. 질경이다. 질경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사람과 우마의 통행이 잦은 길이나 길 한가운데 무리 지어 자란다. 언뜻 쓸모없어 보이지만 이 풀은 인삼, 녹용 못지않은 약초이자 무기질, 단백질, 비타민, 당분 등이 많이 함유된 나물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질경이

‘며느리배꼽’…‘애기똥풀’… 야생화 사연 눈이 배부르다

심한 가뭄과 뙤약볕에도 죽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질경이’.

질경이는 생명력이 대단히 강하다. 얼마나 질긴 목숨이기에 이름조차 질경이라 했을까. 심한 가뭄과 뙤약볕에도 죽지 않으며, 차바퀴와 사람의 발에 짓밟힐수록 오히려 강인하게 살아난다. 질경이는 민들레처럼 뿌리에서 바로 잎이 나는 로제트 식물로, 원줄기는 없고 많은 잎이 뿌리에서 나와 옆으로 넓게 퍼진다. 6∼8월에 이삭 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서 흑갈색의 자잘한 씨앗이 10월에 익는다. 이 씨를 수레차(車) 자를 써서 차전자(車前子)라고 한다.

질경이 씨앗에는 신통력이 있어 저승에 있는 사람도 볼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에 어떤 효자가 아버지를 여의고는 몹시 슬퍼해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모습 보기를 소원했다. 그는 100일 동안 기도를 드렸는데, 마지막 날 밤 비몽사몽간에 백발 노인이 나타났다. “질경이 씨로 기름 짜서 불을 켜면 아버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노인의 말에 효자는 제사상을 차리고 질경이 기름으로 불을 켰다. 그러자 죽은 아버지가 퉁퉁 부어서 썩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나 제사상 머리에 앉는 게 아닌가! 아들은 기겁을 하고는 두 번 다시 죽은 아버지 보기를 원치 않았다고 한다.

“일일이 다 설명할 순 없지만 이처럼 많은 들꽃과 풀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차 해설사의 말처럼 다 같아 보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손톱 크기의 흰색 꽃이 장구 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가는잎장구채’, 족두리풀의 일종으로 잎과 꽃에 다 무늬가 있는 ‘무늬족두리풀’, 줄기를 자르면 노란색 유액이 나오는데 이것이 애기 똥과 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애기똥풀’ 등 다양한 들꽃이 길 곳곳을 채우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며느리배꼽’이다. 며느리배꼽은 잎자루가 잎 뒷면 배꼽 부분에 붙어 있는 데서 이름이 유래됐다. 마치 배꼽에 피어싱을 한 듯한 모습이다. 차 해설사는 “야생화 이름에 며느리가 들어가면 고부 갈등의 사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며느리밑씻개’가 그런 경우다. 밭일하던 며느리가 급한 김에 뒤돌아 볼일을 보고 시어머니에게 콩잎을 따달라고 하자, 시어머니가 “네가 감히 시어미에게!”라며 따준 잎이 바로 며느리밑씻개다. 며느리밑씻개는 거칠고, 줄기와 잎에 난 가시 탓에 제대로 닦기가 어렵다. 그 밖에도 며느리를 격하하는 화명은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깊은 산 계곡에 함초롬히 하얀 방울을 달고 서 있는 은방울꽃은 ‘화냥년속고쟁이가랭이’라 불렀고, 금낭화는 ‘각시볼락’이라 했다.

눈의 호사는 잠시 접어두고 아랫배에 힘을 준 채 물기 머금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신다. 어지러웠던 머리도 이내 맑아진다. 왼쪽으로 수타 계곡을 바라보고 40~50분 걷다 보면 계곡을 건너가게끔 하는 소 반환점이 나타난다. 소는 쇠여물통을 일컫는 강원도 사투리로, 수타사 계곡의 물웅덩이가 쇠여물통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비가 온 탓에 물이 불어 물살 또한 거세다. 행여 미끄러질까봐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계곡을 건너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신봉마을에 이르며, 반대로 걸어온 만큼 다시 내려가면 산소길의 출발점인 수타사로 돌아온다.

수타사 계곡 산소길은 맑은 산소를 가득 마실 수 있는 데다 각종 야생초와 나무를 볼 수 있어 숲길로 최고다. 천년사찰 수타사의 고즈넉함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도시의 매연과 사람에 지친 이라면 수타사 계곡 산소길에서 재충전해보길 권한다.

‘며느리배꼽’…‘애기똥풀’… 야생화 사연 눈이 배부르다
Tip.

☞ 교통편

승용차 서울을 기점으로 올림픽대로 강일IC·춘천 방면→서울춘천고속도로 춘천·화도·덕소삼패 방면→서울춘천고속도로 조양IC에서 홍천 방향으로 중앙고속도로 진입→중앙고속도로 홍천IC에서 속초·홍천 방면으로 좌측 방향→44번 연봉삼거리에서 수타사·속초·인제 방면으로 우측 방향→444번 홍천·동면·수타사 방면으로 우측 방향→444번 공작산로 서석·노천 방면으로 우측 방향→수타사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10여 분 들어가면 수타사 주차장 입구. 문의 수타사 종무소(033-436-6611). 강원 홍천군 동면 덕치리9.

대중교통 상봉시외버스터미널 및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홍천행 버스 이용→홍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타사행 시내버스나 택시 이용.

☞ 코스

주차장 입구→수타사→연밭→팔각정→소→용담→수타사 4~5km



주간동아 2010.07.12 745호 (p30~32)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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