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1

2010.06.14

인도가 ‘카스트 조사’ 하는 까닭은?

70년 만에 센서스에 포함 논란 가열 … “소외계층 혜택 vs 분열만 더 늘어”

  • 델리=이지은 통신원 jieunlee333@hotmail.com

    입력2010-06-14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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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가 ‘카스트 조사’ 하는 까닭은?

    인도는 카스트 없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껏 차별받아온 천민 카스트에게 우대혜택을 주는 일종의 ‘역차별’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진은 세탁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불가촉천민의 모습.

    인도에서 10년에 한 번씩 시행되는 인구총조사(이하 센서스)는 14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적 행사다. 1871년 영국 식민정부 아래서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중단되지 않고 실시됐다. 인도는 이 센서스 결과에 따라 선거, 경제, 복지, 교육 정책 등을 결정하고 시행한다. 센서스는 단순히 지역별, 성별, 연령별 인구수만 세는 게 아니라 문자해독 여부, 사용 언어, 종교, 직업, 생활용품 및 농업용구 보유 정도, 주택의 형태 등 다양한 항목에 걸쳐 조사를 하기 때문에 각종 정책의 기초 자료로 이용 가치가 높다.

    2010년 4월 시작된 ‘2011년 센서스’에는 은행계좌 보유 현황, 가구별 PC 보유 및 인터넷 사용 여부 등이 새로운 항목으로 추가됐다. 특히 이번 센서스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생체 정보와 개인 정보를 조사, 전산화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이를 통해 국민 전체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해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예정.

    제1 여당 ‘콩그레스’의 정치적 계산

    그런데 이번 센서스가 정치·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센서스 조사항목에 ‘카스트’가 포함됐기 때문. 초기 영국 식민정부의 센서스에는 카스트가 주요 조사항목 중 하나였다. 영국 식민지배자들이 카스트를 인도의 가장 중요한 사회 단위이자 인도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로 봤다. 따라서 인도인을 카스트 단위로 나누고 각 카스트의 인구 및 지역 분포, 사회·경제적 상황, 카스트 간의 상하관계 등을 파악했다.

    하지만 인구조사를 통해 각 카스트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인도인들 사이에서 불필요하게 카스트 의식을 고양시킨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게다가 내분을 조장해 통치의 편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도 민족주의 진영의 비판까지 거세지자, 1931년 센서스를 마지막으로 카스트 항목은 인구조사에서 제외됐다. 1941년 센서스에 나타난 이 같은 변화는 ‘카스트 없는 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인도공화국 건국자들의 이념이 반영된 것이다.



    1950년 발효된 인도 헌법은 카스트에 의한 차별을 불법으로 명문화했다. 천민제도를 폐지하면서 ‘카스트 사회’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수천 년간 억눌려 살았던 천민과 부족민을 보호 대상인 ‘지정 카스트’ ‘지정 부족’으로 정해 각종 혜택을 줬을 뿐 아니라 연방하원과 주하원 의석 중 22.5%는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 중에서만 선출하도록 법제화했다. 그리고 주택 보급이나 농촌지역 고용 보장 등 사업에 배정된 예산을 집행할 때도 이들에게 일정 비율 이상을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카스트 없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껏 차별받아온 천민 카스트에게 우대혜택을 주는 일종의 ‘역차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여기에 더해 인도 헌법은 천민은 아니지만 전통 카스트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갖지 못했던 ‘기타 후진계층’에게도 고용과 교육에서 일정 비율을 할당하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헌법이나 기타 법률로 보장한 각종 혜택은 카스트에 따라 주면서 정작 센서스에서는 카스트별 조사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카스트에 따른 정책의 입안과 시행은 어떻게 하나? 카스트 항목이 포함됐던 마지막 센서스인 1931년의 결과를 아직도 사용한다. 물론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의 경우 행정적 필요 때문에 전수조사는 시행됐지만, 지정 카스트에 속하는 개별 카스트 인구는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

    지난 70년간 조사항목에서 빠졌던 카스트가 많은 논란 끝에 2011년 센서스에서 부활한 것은 정책 결정과 행정상의 필요 때문이다. 법률이 정하는 소외 계층에 대한 정책을 추진하려면 제대로 된 조사와 통계가 필요하다. 이번 카스트 조사를 통해 기타 후진계층에 대한 정보를 추가하면 향후 이들을 대상으로 한 혜택이나 정책을 실시할 때 기초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에 제1 여당인 콩그레스당의 정치적 계산이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카스트별 인구조사를 강력히 주장해온 지역정당들은 모두 기타 후진계층을 지지기반으로 한다. 이 정당들은 콩그레스당이 상대적 열세를 면치 못하는 북인도의 각 주에서 큰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그러므로 콩그레스당이 향후 안정적으로 집권하고, 북인도 각 주 정부에서 정권에 복귀하기 위해 이들 정당과의 연합이 필수적이다. 이번 센서스에 카스트 조사를 포함시키고 콩그레스당이 기타 후진계층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들 간의 은밀한 화해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것이 각 주 선거에서 연합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카스트별 인구조사를 환영한 또 다른 그룹은 지정 카스트나 지정 부족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소수거나 발전이 더뎌 혜택에서 소외된 카스트의 성원들이다. 이들은 카스트별 인구조사를 적극 찬성한다. 나아가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 내에서 다시 ‘가장 후진적인 카스트’를 정해 할당의 일부가 반드시 ‘가장 후진 계층’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 중에서 기존 할당제의 혜택을 많이 받는 카스트들은 지정 카스트 전체의 정체성을 중시하며 카스트별 인구조사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스트별 인구조사가 향후 기존 할당제 내의 특정 집단을 위한 할당제로 확대된다면 지금까지 혜택에서 소외됐던 카스트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북인도에서 콩그레스의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한 대중당(BSP)에 타격을 줄 것이다. BSP는 지정 카스트 중에서도 할당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카스트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카스트의 굴레’ 여전 자성 목소리

    이런 정치적 계산에 관계없이 카스트별 인구조사 자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결국 영국 식민지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국민은 자신이 속한 카스트의 지위, 인구비율, 상대적 발전 정도 등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 이는 카스트 의식을 고취해 화합보다는 분열, 협력보다는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혹자들은 ‘카스트의 저주’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인도인들은 왜 카스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라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행정적 필요와 정치적 고려에 의해 2011 센서스에서 카스트 조사는 결국 실시될 것이다. 그러나 인도 국민 개개인이 카스트라는 덫에 걸리지 않게 할 묘책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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