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1

2010.06.14

카드 도둑 결제, 물 쓰듯 호화생활

신용카드 가맹점 직원들 기가 막힌 절도 행각 … 수억 원 해먹고 자릿세 권리금도 챙겨

  • 김승훈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hunnam@seoul.co.kr

    입력2010-06-14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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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 도둑 결제, 물 쓰듯 호화생활
    경기 구리시 P모텔 종업원 신모(31) 씨는 배보다 배꼽이 큰 호화생활을 했다. 명품 옷 등 고가 물품을 구매하고, 친구나 업계 사람들 모임 때는 회식비를 전담하는 등 박봉(월 150만여 원)에도 부유층 못지않은 삶을 누렸다. 취업 후 2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억대의 아파트를 구입했고 중형 승용차도 몰고 다녔다. 신씨의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지인들은 그가 근무하는 P모텔의 급여가 많고, 복지혜택도 좋은 줄로만 알았다. 신씨는 지인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신씨의 화려한 생활은 불법의 산물이었다. 신용카드 결제의 허점을 이용해 모텔 매출액 중 매일 10만~20만 원씩, 매달 400만~500만 원을 주인 몰래 절취한 것. 2008년 10월 18일부터 올 5월 3일까지 1년 7개월간 무려 1016회에 걸쳐 1억500만여 원을 빼돌렸다.

    대구시 북구 S미용실 이모(40) 씨도 마찬가지. 이씨는 미용실 현금 수입 중 5만~10만 원을 카드결제의 맹점을 활용해 매일 편취했다. 빼돌린 돈으로 명품 가방이나 고가 의류 등을 구입하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이씨는 2008년 1월 3일부터 올 4월 27일까지 461회에 걸쳐 2455만여 원을 빼돌렸다.

    식당, 주유소, 모텔, 미용실, 당구장 등 신용카드 가맹점의 점원들이 카드결제를 악용해 당일 매출 금액 중 일부를 상습적으로 빼돌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용카드 결제가 일상화된 이후 복제카드 사용 등 카드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리지만 가맹점 점원들이 카드결제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주인 몰래 돈을 빼돌린 사건이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점원들은 빼돌린 돈으로 아파트를 구입하거나 자가용, 명품 가방 등을 장만하며 호화생활을 누렸다. 경찰은 종업원들의 음성적인 절도 행각으로 인한 피해 가맹점이 전국에 만연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교묘한 현금 절취 수법



    서울 성북경찰서는 “서울, 경기, 대구, 충북, 전남 등지의 신용카드 가맹점 11곳에서 카드결제의 허점을 악용해 수년간 매출액을 절취해온 종업원 10명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달아난 1명을 쫓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카드사마다 전표 금액 입금 주기가 달라 업주들이 그날그날 전표와 입금 내역을 대조하지 않는 한 월별 실매출액을 정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종업원들은 이 점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업주들은 피해가 몇 년간 지속돼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절도를 일삼은 종업원들의 연령층은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했다.

    종업원들이 돈을 빼돌린 수법은 교묘했다. 현금을 지불하는 경우와 카드로 결제하는 경우에 따라 방법이 달랐다(그래픽 참조). 고객이 현금을 내면 자신들의 신용카드로 5만~10만 원을 결제한 뒤 카드 단말기에서 승인 매출전표가 나오면 곧바로 승인취소를 했다. 그리고 승인취소 전표는 버리고 승인 전표를 다른 매출 전표 사이에 밀어넣은 뒤 해당 금액만큼 현금을 편취했다. 고객이 카드로 결제할 때에는 카드 단말기의 재출력 버튼을 눌러 똑같은 승인 전표를 하나 더 뽑은 뒤 그 전표를 매출 전표 사이에 몰래 집어넣었다.

    현금영수증도 조작했다. 현금영수증은 전표 중간에 ‘소득공제’라고 찍힌 것과 상단에 ‘현금영수증’이라 찍힌 것,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전자는 신용카드 매출 전표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출력 전표를 그대로 다른 전표 사이에 밀어넣었다. 후자의 경우 고객의 신용카드나 휴대전화 번호로 본인 확인을 거친 뒤 현금영수증 롤지를 조금 위로 당기거나 밑으로 내려 ‘현금영수증’ 문구가 안 찍히도록 출력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신용카드 전표인 것처럼 조작해 다른 매출 전표 사이에 끼워넣고 그 액수만큼의 현금을 집어갔다.

    카드 도둑 결제, 물 쓰듯 호화생활
    피해 가맹점 종업원들은 이 같은 수법을 번갈아 사용하며 2007년 10월 6일부터 올해 5월 8일까지 적게는 186만여 원에서 많게는 1억541만여 원을 절취했다. 그 금액이 모두 2억5435만9100원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특정 카드사들의 피해 금액만 집계한 것이다. 모든 카드사의 피해 금액을 종합한다면 그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가맹점 종업원들은 절도 비법을 전수해주면서 프리미엄(2000만~3000만 원)을 얹어 자리를 파는 등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줬다. 대전 K주유소 종업원들은 돈 빼돌리는 방법을 알려준 뒤, 그 자리를 물려주는 조건으로 수천만 원의 권리금을 받았다. 이 주유소 임모(40) 씨는 2007년 10월 초 출산 때문에 퇴직하는 여직원에게 3000만 원을 주고 자리를 물려받았다. 절취 방법도 전수받았다. 임씨는 그해 10월 6일부터 올 4월 27일까지 232회에 걸쳐 1540만여 원을 꿀꺽했다. 이 주유소 종업원들은 7년 동안이나 번갈아가며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직원들이 회사 돈을 더 많이 빼돌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할 뿐 아무런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보다 더한 도덕적 해이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구의 S주유소 종업원 6명도 2007년부터 프리미엄을 얹어 자리를 팔아가며 5~6년 동안 수억 원을 빼돌렸다는 첩보가 입수되는 등 주유소 종업원들의 절도 행태가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덧붙였다.

    국세도 손해, 카드사도 피해

    가맹점 수익을 빼돌리기 때문에 세금도 그만큼 적게 책정되는 등 또 다른 피해마저 초래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금 거래를 주로 하는 자영업자들이 소득을 축소해 세금을 덜 내는 일은 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업종과 세율 등에 따라 부과 세금이 달라 정확한 세액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업소마다 연 4800만 원에서 6000만 원의 매출에 대한 세금을 덜 거둔 셈”이라고 밝혔다.

    카드사들도 피해가 컸다. 카드사와 가맹점 간 카드결제를 중개하는 밴(VAN)사에 이중으로 중개수수료를 부담해야 했기 때문. 카드사 관계자들은 “거래 승인·취소 때는 밴사에 중개수수료를 줘야 한다. 승인 때는 건당 100원 정도, 취소 때는 건당 50~60원을 지불한다. 이런 범죄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피해 금액은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씨카드 채널운영부 채병철 부장은 “매출 전표 중 동일한 카드번호로 지속적으로 카드승인을 받은 게 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카드사로부터 가맹점 승인·취소 내역을 받아보는 게 피해를 예방하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파악된 피해 가맹점만 7~8군데 더 있다. 종업원들의 매출 절도 행각이 전국에 퍼져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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