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1

2010.06.14

이러다 수쿠크(이슬람 채권) 발행 없던 일 될라

국회에 발목 잡혀 관련법 1년째 지지부진 … 각국 이슬람 머니 유치 올인과 크게 대조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06-14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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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다 수쿠크(이슬람 채권) 발행 없던 일 될라

    고객들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이슬람 은행에서 현금기기를 이용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초, 정부의 이슬람 금융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해 3월 기획재정부(이하 재정부)는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이슬람 자금 유치를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 재정부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조기 처리에 자신감을 보이며 올 3월 중동지역 투자설명회을 진행하고 이슬람채권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소규모로 발행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금방 처리될 것만 같던 개정안은 해를 넘긴 채 국회에 표류 중이다. 지난 2월에 이어 4월 임시국회에서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는 개정안 처리를 일절 논의하지 않았다. 6월이 됐지만 국회가 18대 하반기 원구성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개정안 논의는 7월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오일 머니는 세계 경제 견인차

    이슬람 금융은 이슬람교의 규범에 따른 금융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샤리아(Shariah)라고 불리는 이슬람 율법에 적합한 금융을 가리킨다. 코란에 따라 리바(riba·이자)가 금지돼 있으며 원칙적으로 현시점에 존재하는 재산의 교환만을 인정한다. 도박과 투기는 물론 알코올, 담배, 돼지고기, 무기, 포르노 등의 제조 및 제공에 관여하는 기업과 거래가 금지돼 있다.

    독특한 성격의 이슬람 금융은 지난 10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왔다. 2000년대 들어 연간 15% 이상 성장했으며 2010년에는 운용자산 규모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슬람 금융의 성장세는 오일머니로 대표되는 이슬람 경제권의 급속한 성장에서 비롯됐다. 1971년 만들어진 이슬람회의기구(이하 OIC)에 가입한 57개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6%로 동아시아, 미국, 유럽연합(EU)을 웃돈다. 2006년 지역내총생산(GRDP)은 5조8000억 달러에 달하며, 무역흑자액은 4000억 달러로 중국의 3배에 이른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샤리푸딘 칼리드 이슬람금융국장은 ‘이슬람 금융 국제 콘퍼런스’에서 “오일머니 영향력이 증대되는 가운데 이슬람 금융이 앞으로 세계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할 것”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미 적지 않은 나라에서 오일머니 유치를 위해 이슬람 금융제도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중동의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선두주자이며 비이슬람권에서는 영국이 앞서나가는 모양새다. 특히 말레이시아의 행보가 돋보인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금융의 허브를 자처하며 정책적으로 세제와 규제상 불이익을 제거하는 등 이슬람 금융 관련 제도를 체계화했다.



    한국 정부도 2009년을 전후로 이슬람 금융에 관심을 가지며 이슬람 자금 유치에 나섰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과 정부 투자기관의 자금조달처는 미국과 EU가 절대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경제는 미국과 EU가 기침만 해도 감기에 걸릴 정도로 금융위기, 외환위기의 이중 위기에 취약했다. 호황기에 국제 자금시장에서 달러나 유로화로 외화자금을 빌려오지만 위기 땐 썰물처럼 자금이 빠져나가 유동성 고갈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이종구 상임위원은 “외부요인에 의한 경기변동의 폭을 줄이고, 자금의 원천을 다양화한다는 측면에서 이슬람 자금이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이슬람권도 마찬가지다. 중동의 오일머니가 투자되는 곳은 주로 미국과 EU였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 자금 흐름에 대한 감시와 압박이 강해지면서 이슬람 자금이라는 이유로 돈줄이 묶이지는 않을까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때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서 눈을 돌린 곳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이다. 특히 한국의 녹색산업과 금융업은 샤리아에 부합하는 청정산업으로, 이슬람 자금의 중요한 유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소기업에겐 매력적인 자금

    이러다 수쿠크(이슬람 채권) 발행 없던 일 될라
    이슬람 자금을 유치하는 대표적인 방법에는 이슬람 채권 ‘수쿠크(Sukuk)’가 있다. 수쿠크가 증가하면서 이슬람 금융이 바야흐로 세계적인 확대를 맞이했다. 수쿠크는 채권 발행을 뒷받침하는 자산의 성격을 제외하면 일반 채권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슬람 채권이라는 특성 때문에 직접적인 이자가 없다. 따라서 이슬람 자금은 실물투자의 형식으로 대출이나 투자를 해 수익배분, 임대료 지불로 이자에 해당하는 수익을 챙긴다. 실물거래는 세금을 매겨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특례 인정 여부가 이슬람 금융 도입의 관건이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수쿠크를 채권으로 인정해 양도세, 부가가치세, 취득세, 등록세 등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자는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 논란이 제기돼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더욱이 채권 발행 때마다 면제하는 이자(2.5%)가 테러단체에 유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오면서 수쿠크 도입 논의는 무기한 연기됐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을 후원하는 기독교 단체가 극렬히 반대해 법안 통과가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이슬람 금융전문가들은 ‘기우’라며 일축했다. 이종구 상임위원은 “이슬람 자금의 대부분이 테러와는 상관없다. 테러자금 유입 가능성은 공중협박자금조달금지법 같은 다른 법률을 통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법안 통과가 미뤄지면서 수쿠크 발행을 준비하던 증권사들은 헛물만 켜게 됐다. 증권사들이 앞다퉈 이슬람 금융전문가를 영입해 준비했지만, 개정안 통과가 물 건너갈 위기에 처하자 초기의 뜨거웠던 관심도 많이 식었다. 증권사마다 설치했던 이슬람 금융전담팀도 이제 한국투자증권 한 곳만 남았다. 한국투자증권 이슬람금융팀 김세영 과장은 “지난해 12월부터 투자자를 만났는데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양치기 소년이 됐다. 투자자들 볼 면목이 없다”고 전했다.

    수쿠크 발행이 어려워지자 채권이 아닌 펀드의 형태로 이슬람 자금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유리자산운용은 샤리아에 어긋나지 않는 국내 주요 기업을 간추려 지수화하고, 이를 추종하는 국내 1호 이슬람 자금 직접 투자펀드인 ‘유리샤리아 컴플라이언트 코리아인덱스펀드’를 만들어 5월 4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상품 승인을 받았다. 3000억 원 이상의 자금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유리자산운용 최병로 상무는 “남유럽발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사람들이 리스크에 신경을 많이 쓴다. 말레이시아 쪽으로 접촉을 하고 있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수쿠크를 도입하기 위해 개정안 통과에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재정부 국제금융과 심규진 사무관은 “논란이 되는 부분을 보완해서 올해 안에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혜와 테러자금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지난해 11월 두바이 사태가 터지고, 경기가 눈에 띄게 회복되면서 이슬람 자금을 끌어올 필요가 있냐는 회의론이 비등해진 것. 한국외대 법학과 안수현 교수는 “대기업은 이슬람 금융이 아니더라도 자금 조달이 용이하겠지만 중소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고려하면 여전히 이슬람 금융 도입의 실익은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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