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9

2010.05.31

가슴에 꽃비를 뿌리는 유년의 노래

‘백창우 아저씨네 노래창고’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05-31 13: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가슴에 꽃비를 뿌리는 유년의 노래

    백창우 지음/ 보리출판사 펴냄/ CD 6장, 가사집 3권/ 8만4000원

    ‘주간동아’의 58년 개띠 좌담에 참석했을 때다.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임백천 씨가 잠깐 나가더니 기타를 가져와 우리가 대학생이던 시절 유행했던 대학가요제 당선작 2곡을 불렀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했다. 그 시절 이후 30년 넘게 부르지 않은 노래였지만 모두 따라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노래란 이런 것일까? 황금연휴의 중간 토요일에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 그리고 주연이와 제제가 함께 꾸미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콘서트’를 참관했다.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1000곡쯤 만든 백창우 씨가 이번에는 임길택, 이오덕, 권정생 세 분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책과 CD를 합한 노래상자를 펴내고 그 기념으로 벌인 콘서트였다.

    임길택 선생은 탄광마을 등에서, 이오덕 선생은 가난한 농촌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지도했다. 임 선생의 ‘나무 꼭대기 까치네 집’과 이 선생의 ‘노래처럼 살고 싶어’에는 선생들의 시와 선생들이 가르친 아이들의 시가 악보와 함께 반반씩 실려 있다. 권정생 선생의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우리 집’에도 그분의 시 36편과 악보가 실려 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윤구병 선생은 임길택, 이오덕, 권정생 세 어린이가 이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각 1997년, 2003년, 2007년 작고한 세 분의 육신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분들의 시는 노래가 돼 다시 우리 가슴에 젖어든 것이다. 콘서트에 참석한 사람 모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정신없이 노래에 젖어들었다. 세 분의 글을 좋아했던 나도 울고 웃으면서 장단을 맞추며 즐기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3권의 책에는 108편의 시와 악보가 실려 있다. 이날 콘서트에서는 “바보라도 좋아/ 바보라도 좋아/ 죽을 때까지 하늘 위에서/ 노래처럼 나는 살고 싶어/ 바보처럼”이란 가사로 된 이 선생의 ‘노래처럼 살고 싶어’를 여는 노래로 해서 모두 40여 곡을 선보였다. 콘서트가 끝난 뒤 책을 구해 읽어보니 그중에서도 권 선생의 시와 노래가 가슴에 가장 많이 와닿았다. 아마도 개인적 취향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이번 장에도 돈이 모자라 검정고무신 사오셨다/ 학교 길엔 달수 고무신 혼자서 외롭고/ 3학년 재달이도 5학년 장식이도 띄엄띄엄 검정고무신 외롭고/ 은하철도 999 나이키 타잔 ET 백설공주 캔디 007/ 끼리끼리 운동화 끼리끼리 걸어가면 달수는 말없이 걷는다 음 말없이”(‘달수 고무신’)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검정고무신을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매를 맞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온달같이 고운 엄마// 고생 고생 살던 엄마/ 불쌍 불쌍 우리 엄마// 좋은 반찬 나를 주고/ 나쁜 반찬 엄마 먹고//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좋은 옷도 못 입고서// 고생 고생 살던 엄마/ 불쌍 불쌍 죽음 엄마// 엄마 엄마 무덤가에/ 꽃 한 송이 피어 있네// 엄마같이 야윈 얼굴/ 꽃 한 송이 피어 있네”(‘엄마 엄마 우리 엄마’) 속의 엄마는 바로 내 엄마였다.

    권 선생의 이번 책에는 유난히 소 이야기가 많다. “벙어리야, 벙어리야./ 소는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소는 가슴속에 하늘을 담고 다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어디서나 고달프지만/ 소는 온몸으로 그림을 그린다./ 소는 온몸으로 시를 쓴다”(‘소는 가슴속에 하늘을 담고 다닌다’) 속의 소에게서는 5평짜리 흙집에 살며 평생 글만 써오신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들도 침을 뱉고 가고 흙덩이조차 외면하는 강아지똥도 고운 민들레꽃을 피우는 것처럼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던 권 선생은 평생 가난하게 살다 가셨다. 하지만 ‘몽실 언니’를 비롯해 광복 이후 최고의 작가라 할 만큼 주옥같은 작품을 무수히 남겼다. 그리고 이 책들의 인세 수입 전부를 굶주리는 북녘 어린이들과 다른 나라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했다.

    지난봄 저명한 스님 저자가 자신의 글을 모두 절판시키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한 번 발표된 글은 이미 저자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다. 그러니 절판해서 없애는 결정이 최선일 수 없다. 좋은 글, 좋은 시는 이렇게 노래가 돼 우리 가슴속에 살아남아 오래도록 불리는 법이다. 선생이 노래했듯, 이 노래들을 부르는 아이들이 가는 곳은 언제나 꽃 피는 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