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9

2010.05.31

공식 후원 vs 매복 마케팅 지상 최고 이벤트 ‘錢의 전쟁’

월드컵 경기장 안팎서 기업들 인지도 높이기 총력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5-31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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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후원 vs 매복 마케팅 지상 최고 이벤트 ‘錢의 전쟁’

    대한축구협회 공식후원사인 KT와 2002 한일월드컵에서 매복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둔 SK텔레콤이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치열한 월드컵 마케팅 대전을 벌이고 있다.

    월드컵을 비롯해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등 세계적 메가 스포츠 이벤트가 이끌어내는 경제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02년 경제백서’에 따르면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은 26조46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가 14조7600억 원으로 가장 컸고, 국가브랜드 홍보 효과(7조7000억 원)와 투자 및 소비지출 증가로 인한 부가가치 유발(4조 원)이 뒤를 이었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개최국 독일이 100억 유로(약 17조8590억 원)의 유·무형 부가가치와 4만여 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돈이 몰리는 곳에 기업도 몰린다. 월드컵은 축구라는 콘텐츠를 활용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글로벌 기업의 인지도를 1% 높이는 데 약 5000만 달러가 든다고 할 때, 월드컵은 비용에 비해 매우 효율적으로 인지도를 높여주는 수단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글로벌 브랜드가 탄생하는 데 월드컵을 비롯한 스포츠 마케팅이 큰 구실을 했다.

    그중 월드컵 마케팅은 마케팅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월드컵의 마케팅(Marketing of World Cup)’과 ‘월드컵을 이용한 마케팅(Marketing through World Cup)’으로 분류된다. 월드컵의 마케팅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마케팅이라면, 월드컵을 이용한 마케팅은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월드컵을 후원하는 기업들의 마케팅을 말한다. 흔히 스폰서십(sponsorship)이라 부르는 월드컵을 이용한 마케팅은 FIFA의 공식 파트너로서 월드컵 전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는 경우와 해당 국가 축구협회의 공식 후원사가 돼 국가대표팀을 활용한 포로모션에 참여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유·무형 부가가치 상상 초월하는 경제적 효과

    월드컵 마케팅의 선두주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FIFA 공식 후원사로 3개 대회 연속 월드컵 마케팅에 나선 현대·기아자동차다. FIFA 공식 후원사가 되면 월드컵의 명칭과 로고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경기장 광고판도 설치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2002년부터 진행해온 굿윌볼 로드쇼를 지난 2월에 개최하면서 월드컵 로고와 해당국 국기, 현대차 로고가 새겨진 대형 축구공 애드벌룬을 본선 진출 32개국으로 보냈다.



    대한축구협회 공식 후원사들은 직접적으로 월드컵 명칭과 로고를 사용할 수 없지만 국가대표팀을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KT는 지난 3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붉은 악마와 함께 ‘2010 남아공월드컵 대한민국 응원출정식’을 열며 새로운 응원 슬로건인 ‘The Shouts of Reds, United Korea’를 발표했다. 또한 KT와 붉은 악마가 공동으로 제작한 응원 앨범도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트랜스픽션의 타이틀 송 ‘The Shouts of Reds’를 비롯해 부활, 리쌍, 이은미, 크라잉넛 등 유명 가수와 실력파 인디밴드가 참여했다.

    황선홍, 유상철 등 2002 한일월드컵 4강 주역들의 응원 메시지가 담긴 광고도 월드컵 바람몰이에 한몫하고 있다. KT 브랜드전략 CFT 남규택 전무는 “2010년에는 응원 앨범과 캠페인, TV 광고 등 다양한 활동으로 남아공월드컵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 이미지 상승은 판매로 이어져

    월드컵은 축구라는 단일 종목만으로 한 달 정도 대회가 열려 집중도가 높다는 점이 기업들의 구미를 당긴다. 경희대 체육대학원 한진욱 교수는 “월드컵과 올림픽을 비교하면 올림픽은 2주 정도로 기간이 짧고, 월드컵은 한 달가량 이벤트가 계속돼 기업으로서도 이익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축구라는 집중도 높은 종목을 통해 인종, 언어, 문화의 벽을 초월하는 기회이기 때문에 기업은 단시간에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알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것이야말로 월드컵 마케팅의 최우선 과제다. 즉, 기업들은 월드컵 공식 후원사임을 강조해 월드컵 대회의 권위와 후원기업의 권위가 동일시되기를 원한다. 아시아나항공 마케팅팀 관계자는 “대한축구협회 공식 후원사로서 경기장 A보드 광고를 할 예정인데, 이를 통해 기업 이미지가 향상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월드컵 마케팅을 하면 인쇄매체, 방송, 인터넷 등 각종 매체에 노출돼 인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코카콜라가 대표적인 경우다. 코카콜라는 1920년대부터 각종 스포츠 경기를 후원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왔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월드컵에서 음료를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무려 60년을 월드컵과 함께하며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세계인에게 확고하게 심었다.

    기업들은 단순히 인지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선호도를 높이는 쪽에 더 무게를 둔다. KT 코퍼레이트센터 임언석 연구원은 “인지도 상승은 일반적인 광고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월드컵이라는 이벤트 성격이 큰 행사에선 월드컵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가 기업에 긍정적으로 전이돼 기업의 선호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단기간 직접적인 매출 증대에 대한 기대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일부 기업이 경기장이나 특별 전시장에서 판매활동을 벌여 판매촉진 효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업 이미지 제고를 통한 장기간의 판매증진 효과를 기대한다. 그러다 보니 월드컵 마케팅도 1~2년 반짝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추세다. 아디다스는 피버노바라는 공인구를 개발해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선보였다. 이후에도 계속 FIFA 공식 후원사를 맡으며 스포츠 의류용품에서 ‘아디다스=축구’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노력했다. 그 결과 축구공은 물론 축구 이외의 스포츠용품까지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이 상승하는 반사이익을 가져왔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FIFA의 공식 후원사가 되거나 대한축구협회의 공식 후원업체가 될 수는 없다. 2010 남아공월드컵 때 FIFA의 공식 후원사는 국내에선 현대·기아자동차 하나뿐이고 대한축구협회 공식 후원업체도 삼성, KT, 하나은행, 아시아나 등 10개 안팎이다. 그러다 보니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지 못한 기업들은 마치 자신이 공식 후원사인 것처럼 대중을 현혹하는 매복 마케팅(Ambusher Marketing)도 불사한다.

    공식후원의 적 매복 마케팅

    공식 후원 vs 매복 마케팅 지상 최고 이벤트 ‘錢의 전쟁’

    SK텔레콤은 박지성·비 등 스타마케팅을 앞세워 거리응원의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방침이다.

    매복 마케팅을 펼치는 기업들은 월드컵을 직접적으로 내세우기보다 축구, 16강, 골 등 간접적인 메시지를 강조한다. 이를 위해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선수, 전임 국가대표 감독 등을 앞세워 공식 후원사 못지않은 월드컵 마케팅을 전개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 기업들이 하는 월드컵 마케팅의 대다수가 매복 마케팅인 셈이다.

    2002년 월드컵 때 나이키는 매복 마케팅으로 FIFA 공식 후원사인 아디다스보다 큰 성공을 거뒀다. 나이키는 FIFA 공식 후원사가 되는 대신 본선에 진출한 각국 대표팀을 지원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나이키 유니폼을 입은 한국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고 브라질이 우승함으로써 ‘나이키의, 나이키에 의한, 나이키를 위한’ 월드컵으로 막을 내렸다. 2002년 당시 판매한 한국 나이키 유니폼은 15만 장에 이른다.

    2002년 월드컵 당시 KT가 공식 후원사임에도 많은 사람은 SK텔레콤을 공식 후원사로 생각했다. ‘대한민국 박수 다섯 번 짝짝짝짝짝’이라는 광고가 공전의 히트를 하며 사람들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됐던 탓이다. SK텔레콤은 KT가 대한축구협회와 공식 후원 계약을 맺자 재빠르게 국가대표 축구팀 공식 응원단인 붉은 악마와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붉은 악마의 구호를 가져와 매복 마케팅을 벌이며 공식 후원사가 아님에도 명실상부 월드컵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서대웅 브랜드마케터는 “축구 하면 붉은 악마인데 KT가 이를 간과한 것이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2002년의 성공을 재현하기 위해 SK텔레콤은 지난 3월 첫선을 보인 ‘당신의 Reds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CF를 시작으로, 지난 월드컵의 감동과 추억을 되살리는 ‘대한민국 축구 응원, 추억의 사진 공모전’ 이벤트를 전개했다. 또한 가요계 대표주자 김장훈, 싸이와 손잡고 ‘울려줘 다시 한 번’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발표해 거리응원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SK텔레콤은 국가대표의 선전을 기원하고, 국민들의 순수하고 자발적인 응원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후원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월드컵 응원의 필수 아이템이 될 ‘다시 한 번 大~한민국’ 응원티셔츠를 아디다스와 특별 제작,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 장동건, 비(정지훈), 신민아 그리고 스포츠 스타 박지성, 박태환, 최경주 등을 앞세운 스타마케팅을 통해 월드컵의 거리응원 열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매복 마케팅은 공식 후원사의 마케팅 효과를 반감시키기 때문에 FIFA는 매복 마케팅을 감시하는 기구까지 두면서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매복 마케팅의 수법이 워낙 교묘하기 때문에 법적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김용만 교수는 “매복 마케팅을 두고 소송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판결은 대회가 끝난 뒤에 나온다. 확실한 증거가 없고, 판결에서 지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남아공월드컵은 역대 월드컵이 가져온 경제유발 효과를 넘어설 전망이므로 기업들은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벌일 것이다. 16강을 향한 대표팀의 축구전쟁 한편으로 수백억의 소비자를 잡기 위한 기업들의 마케팅 대전이 이제 시작이다.

    마케팅 성공의 열쇠는

    16강 넘어야 한국 축구도, 기업도 산다


    한국팀의 16강 진출은 기업들의 마케팅 성공 여부를 쥐는 열쇠다. 16강 진출에 실패하면 달아올랐던 월드컵 열기가 한순간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2006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의 예선 3경기 중 2경기가 새벽 4시에 편성됐음에도 높은 시청률을 거뒀다. 한국­토고전은 역대 월드컵 시청률 3위에 올랐다. 하지만 16강 탈락 이후 시청률은 급락했다. 조별예선 경기 방송사 합계 시청률이 28.9%인 데 비해 16강전은 11%, 4강전은 8.3%에 그쳤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하면서 조별예선전을 상회하는 시청률이 결승까지 이어진 것과 대조된다.

    시청률이 낮아지면 기업들의 마케팅 효과도 반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광고단가 책정에도 직격탄을 날린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2006 월드컵 때 한국 16강 진출 시 15초 단가(KBS, MBC 기준)는 3351만 원으로 한국 예선전의 2배가로 책정했지만, 실패 시 단가는 304만5000원으로 책정,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었다. 16강전 방영 시간이 평일 새벽 시간대임을 고려해도 큰 차이다.

    16강의 의미를 잘 아는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16강 마케팅을 쏟아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면 6월 30일까지 삼성 파브 3D TV를 구매한 고객 중 333명을 추첨해 현금 100만 원을 주는 행사를 벌인다. 하나은행도 ‘오! 필승 코리아 적금 2010’을 판매하며 6월 11일까지 가입한 고객은 한국팀이 16강에 진출하면 금리를 연 0.2%포인트 더 받을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아자동차도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월드컵 16강 기원 시승단’을 운영한다.

    이들 기업은 16강 진출을 간절히 기원한다.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16강 진출로 국민의 열기가 이어져야 마케팅이 성공한다. 2002년과 2006년의 경험으로 보면 한국이 16강전에 올라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마케팅, 프로모션 효과가 크게 달랐다”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16강에 진출하면 기업들이 약속한 경품, 현금 등을 받을 수 있어 이득이다. 경희대 체육대학원 한진욱 교수는 “16강 진출이 손익분기점이라는 이론적 연구결과는 없지만 16강 진출 여부에 따라 미디어 노출량, 국민의 집중도가 차이 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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