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9

2010.05.31

CIA 고용 킬러들 헬기 타고 기습 “타다당”

이라크 내 청부업자 19만 명, 군인보다 많아 … 군 역할 분담 ‘전쟁의 민영화’

  • 주성민 군사전문 자유기고가 bluejays@kebi.com

    입력2010-05-31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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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기사는 ‘주간동아’ 737호에 실린 스페셜 리포트 ‘살인면허 앞세워 알 카에다 인간사냥’의 후속 이야기다. 1편에서 용병과는 다른 민간 청부인들의 세계를 소개하고, 이들을 고용한 미국 보안회사들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같은 분쟁지역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현실을 알렸다. 2편에서는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살인면허’를 받은 민간군사 청부인들의 작전 수행 과정을 통해 ‘전쟁 민영화’의 현실을 고발한다. -편집자
    CIA 고용 킬러들 헬기 타고 기습 “타다당”

    이라크 전쟁 이후, 바그다드는 자살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군대 병력만으로 치안 유지가 어려워지자 민간보안회사에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총알이 계속해 핑핑 날아왔고 AK 소총을 든 적은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탄약이 떨어져간다.” 지붕에서 총을 쏘던 블랙워터의 민간 청부인(private contractor)이 아래를 향해 소리 질렀다. 이라크의 시아파 과격 무장단체가 나자프의 연합군 임시행정처인 CPA 본부를 공격해 건물은 적에게 포위됐다.

    미 해병대원 로니 영 상병은 50kg이나 나가는 무거운 탄약상자를 들고 1층에서 4층까지 뛰었다. 그는 CPA의 통신장비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반나절 계획으로 이곳을 방문했다가 2시간째 발목이 잡혔다. 로니 상병이 지붕으로 서둘러 올라서는데 청부인 한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빌어먹을, 한 방 맞았어.” 상병이 그에게 다가가 방탄 재킷을 벗기자 가슴의 총상이 드러났다. 얼른 구급상자에서 소독수가 든 병을 꺼내 상처에 쏟아부은 뒤 압박붕대로 감았다. 중무장한 적은 로켓추진 유탄발사기인 RPG로 공격해왔고 로켓탄이 지붕의 콘크리트 블록에 맞아 폭발했다.

    “자, 내려간다.” 상병은 부상자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군용 라이플인 M-4를 쏘고 있는 청부인들에게 엄호를 부탁한 것이다. 계단을 향해 몇 걸음 떼지도 못했는데 그는 옆구리에 총알을 맞았다. 무릎이 꺾이며 쓰러지는 순간 유산탄이 곁에서 터져 파편이 눈에 박혔다. 얼굴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됐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미 해군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 출신의 청부인 8명은 2시간이 넘도록 적과 교전 중인데 탄약이 거의 바닥났다.

    다행히도 헬리콥터 로터(rotor) 소리가 들리면서 공격용 무장헬기인 아파치 2대가 그들의 머리 위를 선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CPA 본부는 적의 공격을 받고 있었으나 아파치는 그냥 날아가버렸다. “저 자식들이 왜 그냥 가는 거야.” 아파치 헬기들은 미군 지휘부로부터 적을 향해 사격하지도, 민간 청부인들을 도와주지도 말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블랙워터 팀이 CPA 본부를 지키기 위해 반군과 교전하는 내내 미군은 지켜보기만 했다.

    블랙워터의 수호천사 리틀버드



    아파치가 날아간 지 30분이 지나서야 블랙워터의 수호천사인 리틀버드가 날아왔다. MD-530 헬리콥터 리틀버드는 가장 빠를 뿐 아니라 기동력 또한 뛰어난 기종이다.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날아든 3대의 수호천사는 탄약을 보충해준 뒤 부상자들을 싣고 다시 날아갔다.

    전투는 3시간이 지나서야 끝났고, 불과 8명의 전직 특수부대원이 수백 명의 적을 상대해 CPA 본부를 방어해냈다. 그들이 싸우던 건물 꼭대기, 4층 주위는 온통 탄피와 파편, 그리고 쏟아진 피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팔루자에서 블랙워터 호송팀 4명이 살해돼 불태워진 지 4일 만인 2004년 4월 4일에 벌어진 일이다.

    민간보안회사 블랙워터는 항공팀 ‘블랙워터 애비에이션’을 가지고 있다. 보잉 MD-530 헬리콥터와 쌍발 엔진의 CASA 212 수송기로 이뤄진 항공팀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병력을 수송하고 보급물자를 실어 나르며 병참지원을 했다. 리틀버드 조종사들은 비밀부대인 특수작전항공단 출신이며 헬기를 공격적으로 조종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가장 빠르게 날고 가장 저공비행을 하는 조종사들이다.

    리틀버드는 비행 중에 적의 총격과 RPG 공격을 받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 적의 공격에 대비해 조종사들은 급격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곡예비행 수준으로 거칠게 조종한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블랙워터 청부인들이 호송을 위해 방탄차량 맘바를 몰 경우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로 이라크의 도로를 질주하다 길이 밀려 속도가 떨어지는 때다. 따라서 극도로 긴장한 청부인들은 M-4 자동소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놓고 저격수와 폭탄 공격에 대비한다.

    그런데 이런 순간이 닥치면 느닷없이 하늘에서 리틀버드가 줄지어 나타나 차에 닿을 듯 저공비행을 하며 엄호를 한다. 조종사 뒤의 양쪽 문으로 몸을 드러낸 채 걸터앉은 사격수들이 분대자동화기인 M-249 경기관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다. 지상의 동료들이 공격을 당하면 기관총 사수들은 5.56mm 탄을 분당 700발씩 적의 머리 위로 쏟아부으며 화력 지원에 나선다. 그리고 무력시위를 통해 동료들의 안전이 확보되면, 올 때처럼 순식간에 줄지어 하늘로 사라진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분명한 플랜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라크군을 패배시킬 만한 충분한 병력은 있었으나, 평화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군대 병력만으로는 도저히 치안 유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점령과 치안 유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라크에 민간보안 산업의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죽음의 도로를 달리는 청부인들

    현재 이라크에는 미 국무부, 국방부와 계약한 60여 개 민간보안회사가 활동하고 있다. 보안회사에서 경호, 호송, 경비, 보급, 수송 등 다양한 분야의 임무를 수행하는 청부인은 19만 명이나 된다. 미군과 연합군을 모두 합한 18만 명보다 많은 수인데 이 중 보급과 급식, 세탁을 맡은 이가 7만여 명이다.

    미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동원이 가능한 19만 명의 민간인이 군의 역할을 분담하면서 ‘전쟁의 민영화’가 시작됐다. 민간 군사기업과 군의 관계를 15년여 추적해온 워싱턴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책임연구원 피터 싱어는 “전 대통령 부시는 세계 여러 국가에 ‘자발적인 연합’을 요구했는데, 결과는 ‘청구서 연합’이 됐다.”

    보안회사 청부인들에게 면책권이 있다는 문서에 서명을 해 그들에게 ‘살인면허’를 준 건 연합군 임시행정처의 최고행정관 폴 브리머였다.

    그는 2003년 5월 이라크에 도착해 포고령 1호와 2호를 발령해 이라크인 50만 명을 실직자로 만들었다. 부시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일했던 조지 테닛은 이 사건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CPA 포고 1호, 더 심한 CPA 포고 2호로 이라크 육군이 해체됐다. 이 명령은 이라크 인구의 20%를 차지하며, 사실상 육군의 거의 모든 직위에 있던 수니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브리머의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자세와 권력 남용은 문제가 많았다. 그의 명령으로 이라크 육군이 해체돼 수많은 이가 실업자가 됐고, 결국 이라크 사람들의 분노를 사 적대적인 반군의 수만 늘려놓았다. 이어서 브리머는 포고령 17호를 발령해 보안회사 청부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면책특권을 주었다.

    ‘청부인은 어떤 계약과, 하도급 계약의 조건에 따라 행한 행위와 관련해 이라크의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이 내용은 거의 살인면허라고 불릴 만한 면책특권이었다.

    이라크에서 가장 위험한 길은 미군들에게 ‘급조 폭발물(IED)의 도로’로 통하는, 바그다드 공항을 오가는 6.5km의 도로다. 반군의 공격이 잦을 때는 하루에도 10번이나 폭탄이 터지는 이 도로를 청부인들의 경호 차량은 전속력으로 달린다. 반군들이 도로에 폭발물을 설치한 뒤, 경호 차량이 속도를 줄일 때 원격조종으로 폭발시키기 때문이다. 때론 저격수들이 매복해 있거나 수류탄을 차량에 던져넣기도 한다.

    청부인들은 이런 공격에 대비해 방탄 섬유인 케블러로 만든 헬멧과 방탄복을 착용하고 M-4 자동소총과 9mm 권총으로 무장한다. 거대한 방탄차량 맘바는 강철장갑으로 만들어졌으며 앞뒤로 PKM 중기관총 2대를 설치해 선두사격수와 후방사격수가 7.62mm 탄을 1600발이나 쏠 수 있다.

    죽음의 도로를 달리는 청부인들의 방탄차량은 난폭하게 질주하다 다른 차가 가까이 오면 경고사격을 한다. 그래도 접근할 경우 바퀴를 쏘거나 엔진을 쏘아 날려버린다. 더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기관총으로 운전석을 벌집으로 만든다. 이것이 그들의 교전규칙이다. 그러나 가끔 이들의 차량과 거리를 두고 달려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차들이 총격을 당하기도 한다. 청부인들은 이때도 상대 차의 운전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들의 차를 멈추는 법도 없다. 심지어 호송대의 거대한 수송트럭이 실수로 마주오던 소형차를 납작하게 깔아뭉개고 그냥 간 일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는지 통계조차 없다.

    2007년 9월, 바그다드의 도심에서 미 국무부 직원들의 탑승차량을 경호하다 폭탄이 터지자 블랙워터 팀이 총기로 대응해 17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청부인들이 면책특권을 믿고 과잉폭력을 행사한 전형적인 경우였다. 이 때문에 이라크에서 총기사고를 포함한 수백 건의 인명사고로 상당수 민간인이 사망했으나 그들을 고소할 권한이 없었다. 연합군 임시행정처가 갖고 있던 주권이 이라크로 넘어가 포고령 17호가 무효가 되기까지 청부인들은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면책특권 믿고 과잉폭력 행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에는 어떤 표지판도 없다. 어디서부터가 어느 쪽 국경인지 알 수 없는 이곳에서 미국은 보이지 않는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반년 전 2009년 12월,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곳 국경 산악지대에 국제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와 탈레반의 핵심 수뇌부가 은신해 있다고 발표했다. 얼마 후 오바마는 CIA의 ‘파키스탄 전략’을 비밀리에 승인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작전의 성격상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비밀전략의 핵심은 이렇다. 파키스탄 서부에 무인폭격기 공격을 확대하고, CIA 요원을 늘려 알 카에다 수뇌부를 궤멸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는 경호와 호송 등의 일을 하는 민간 청부인(private contractor)과 달리 군사작전에 직접 개입하는 청부인들이 있다. 미국 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려는 일을 아웃소싱으로 수행하는 이들은 대체로 정부가 국민에게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은밀한 작전’에 투입돼 왔다. 미 국방부가 극비에 부치는 작전 중 하나가 알 카에다를 추적해 죽이는 일이다. 이 극비작전에 동원된 미군 특수부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민간군사 청부인(private military contractor)이다.

    제럴드 포드는 1976년 ‘미국에 고용된 사람과 미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암살이나 암살 음모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령 11905번에 서명했다. 그 후 20년이 지나 암살 금지 법령은 풀렸다.

    빌 클린턴은 1998년, 빈 라덴을 포함한 테러리스트들에게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명령서에 서명함으로써 체포를 위한 작전 중 죽이더라도 용납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은 누구든 죽이기로 결정했다. CIA는 빈 라덴의 체포를 위해 권한을 확대해달라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요구했다. 조지 부시는 빈 라덴과 그의 부하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CIA에 주는 ‘비밀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CIA와 그들의 파트너에게 체포가 아니라 죽이기 위한 작전을 실시하도록 명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권한 부여는 유례가 없는 일이며, 부시는 CIA와 군의 비밀부대와 청부인들에게 살인면허를 준 셈이다.

    ‘파키스탄에서는 보안회사의 청부인들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민간군사 청부인들이 파키스탄에서 비밀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2010년 5월 5일, 블랙워터의 소유주 에릭 프린스는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파키스탄에서도 군사 청부인들이 작전에 개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자신들의 안전에 위협적인 알 카에다를 뿌리 뽑기 위해 파키스탄의 도움이 필요했다. 파키스탄의 협조 없이는 탈레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알 카에다를 소탕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파키스탄의 지원이 없으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주변의 작전기지에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지만 실상은 CIA 기지다. 이곳의 모든 작전은 CIA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주둔하는 기동부대(Task Force)는 델타포스와 레인저, 네이비실 그리고 민간 청부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이 기지 대장은 CIA 고급요원인 작전관(Case Officer)이다.

    기동부대의 청부인들은 육군특수부대인 델타포스와 해군 네이비실 출신이다. 특수작전항공단의 지원을 받는 청부인들은 알 카에다 요원들과 탈레반을 추적해 죽이는 것이 임무다.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로 유명한 로버트 펠턴이 민간군사 청부인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 있다. “일하기는 아주 쉬워요. 계약하고 훈련받고 날아오면 되니까.”

    석 달 일하면 1억 원 보수

    청부인들은 하루 1000달러(110만 원) 내외를 받으며 90일 일하고 30일을 쉬며, 다시 90일을 일하는 것이 계약조건이다. 석 달 일하고 살아 있으면 1억여 원을 가지고 30일짜리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기동부대는 이곳에서 ‘달빛(moonbeam)’으로 통하는 투라야(Thuraya) 위성전화를 찾아내 도청한다. 빈 라덴이나 알 카에다의 하부 ‘말단조직원’을 파악한 뒤, 위의 조직과 접선하려고 전화하면 통화하는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CIA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알 카에다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파악하고 있다. 하부 조직원이 밤이 돼 투라야 전화기를 들고 신호가 잘 잡히는 들판으로 걸어나가면, 고공에 뜬 스파이 위성이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투라야 통신위성을 도청해 누구와 전화하는지 알아낸다. 신원과 좌표가 확인되면 CIA가 고용한 킬러들은 특수작전항공단이 지원하는 헬기를 타고 날아가 기습해 사냥한다.

    알 카에다를 추적하는 CIA의 킬러들은 군인도 아니고 정보국 요원도 아닌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국 정부도, 군도, CIA도 이들의 존재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전 중 이들이 붙잡혀도 미국 정부는 모른다고 부인한다. 파키스탄 국경지대는 미국의 직접적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지금 이곳에선 돈을 받고 싸울 의지가 있는 ‘그림자 군인들’만이 미국의 은밀한 ‘그림자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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