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9

2010.05.31

전공의 울린 ‘대복회’를 아시나요?

2005년 설립, 공제회비 수익사업 … 잇단 투자 실패 의사들 집단소송 제기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5-31 11: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연체된 차량 리스료를 대신 반납하세요.”

    한 소아과 개원의인 A씨는 지난해 차량 렌트 회사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다짜고짜 연체된 리스료 5개월치를 내거나 차량을 반납하라고 했다. A씨는 5년 전 ‘대한의사복지공제회’(이하 대복회)를 통해 차량 리스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신탁금 3000만 원을 내면 일정 기간 리스료 없이 차를 타다가 8년 뒤 원금과 차량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곧장 대복회로 연락했다. 하지만 누구도 시원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의사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비슷한 사연을 발견했다. 사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차량 리스료를 대신 낸 사람도 있고, 차량을 반납한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에서 연대한 이들은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복회 측은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피해자 37명은 결국 2010년 1월 서울중앙지검에 대복회를 고소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대복회 사건’이 조용히 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대복회의 정체는 무엇이고, 차량 리스 건은 어찌 된 영문일까.

    “의사협회가 모든 회원, 특히 전공의들의 실익을 대변하지는 못하잖아. 전공의를 위한 복지·수익사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

    2005년 봄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소속 의사 몇몇이 머리를 맞댔다. 당시 집행부인 김대성, 김주경 씨와 임동권 현 대복회 대표 등이었다. 이들은 복지가 취약한 전공의를 위한 수익사업을 하는 데 뜻을 같이했다. 대복회의 전신인 ‘젊은의사복지공제회’는 그해 9월 창립총회를 열고 출발을 알렸다. 의사 출신 박용남 씨가 대표로 있는 ㈜배드뱅크와 사업 파트너십도 맺었다.



    전공의에 의한, 전공의를 위한 투자사업

    대복회는 주식회사형 운영 모델을 도입했다. 공제회비를 모아 수익사업에 투자한 뒤 회원들과 수익금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3계좌(계좌당 만 원)가 기본이었다. 결혼정보사업을 비롯한 각종 금융사업을 통한 수익사업, 의료법률 상담 서비스, 연구비 지원사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정했다.

    사업 방향을 정한 뒤 이들은 본격적으로 회원을 모집했다. 홈페이지에 배너를 띄우고 병원별 설명회도 열었다. 대복회에 3만 원씩 납부한 한 전공의는 “연 7% 복리 보장의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빠른 입소문으로 전공의가 다수 가입했다”고 말했다.

    차량 리스는 초기 홍보를 위한 이벤트성 프로그램이었다. 협력사 대표인 박용남 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프로그램은 대복회와 차량회사, 회원 3자 간에 진행됐다. 회원이 대복회에 신탁금을 맡기면 대복회가 리스료를 부담하고, 8년이 지나면 차량과 원금을 돌려준다고 했다. 매력적인 조건에 전공의 50~60명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대복회는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다음은 3000만 원을 신탁하고 중형차를 리스 받은 한 의사의 말이다.

    “2008년 3개월치 리스료가 연체됐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대복회가 나서서 상황을 해결했죠. 하지만 그때도 수익이 없는 상황에서 회원들 원금으로 리스료를 냈던 거였어요. 2009년 12월에는 대복회가 자금 여유가 없어 연대보증인인 회원들이 비용을 내거나 차량을 반납한 거고요.”

    고소인들이 측정한 총 피해액은 13억8000만 원. 차량 리스를 받지 않고 공제회비만 납입한 이들까지 더하면 피해규모는 더 커진다. 회비만 낸 회원들의 경우 1인당 피해액은 150만 원 남짓.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소송을 하기에도 모호해 손을 놓은 상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사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피고소인 4명 중 한 명인 임 대표의 말이다.

    “당시 궁극적으로 지향한 사업모델은 신용협동조합이었어요. 신용이 좋고 대출을 필요로 하는 전공의를 대상으로 하면 수익이 괜찮을 것으로 내다봤죠. 하지만 처음부터 신협사업을 할 수 없어 일단 출자금을 모금해 사업을 벌였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겁니다.”

    동종업계라 믿고 맡겼는데…

    임 대표는 2008년 대복회 대표로 취임했다. 그는 “초기 설립에 참여했지만 대복회가 중심을 잡지 못하자 대책 마련을 위해 대표를 맡았다”고 했다. 임 대표에 따르면 당시 사업을 주도한 사람은 현재 ㈜HNIP 공동대표인 박용남 씨다. 신탁금, 예탁금 등 자금을 투자하는 일은 전적으로 박씨가 관리했다는 것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박씨는 모금한 자금을 배드뱅크, HNIP 등 개인 관련 사업에 투자했다. 안정적인 수익원보다 특정 부동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피해를 입은 한 의사는 “자금이 박씨 회사의 초기 자본으로 들어갈 줄은 몰랐다. 위험성이 있는 줄 알았으면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박씨는 결국 지난해 말 이사회에서 자격을 박탈당했다.

    박씨가 투자 주체였더라도 남는 의문이 있다. 나머지 이사진은 투자 내용을 전혀 몰랐는지, 왜 감시·감독을 하지 않았는지다. 임 대표는 “사업 경험이 있는 박씨가 전권을 갖고 있었다. 상황을 물어보면 ‘잘되고 있다’고 답했고,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대복회는 임시 휴업 상태다. 고소인 중 한 명이 통장에 가압류를 걸었다. 1000명 가까이 되던 회원은 400명으로 줄었다. 전공의 옷을 벗으며 예탁금을 상환받은 이들도 있고, 자금 경색으로 돈을 돌려받지 못한 이들도 있다. 알음알음 가입했기에 피해규모 파악도 쉽지 않다.

    임 대표는 사건 책임자로 박씨를 지목했다. 사건 변호를 맡은 서기원 변호사에 따르면 박씨는 약정기간이 8년이니 기다려달라는 입장이다. 피해자들은 답답하다. 피해금액을 돌려받는 게 목적이지만, 합의는 불가능하고 소송은 긴 인내가 필요하다. 서 변호사는 “연 8% 수익에 차량 리스 조건을 보면 의심해볼 만하다. 그럼에도 전공의 다수가 가입한 것은 동종업계 사람들이 하는 사업인 데다 공익 냄새를 풍기는 ‘공제회’란 명칭 탓이 커 보인다. 법률적 판단이 남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관계자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권익을 위해 야심차게 출발한 대복회는 결국 법률분쟁에 휘말리게 됐다. 의도는 좋았으나 준비와 내공이 부족했다. 외부인 손에 자금을 맡기고 수수방관하는 사이 전공의들의 돈은 공중에서 사라졌다. 현재 임 대표는 박씨 소유의 HNIP 주식을 저당 잡았다. 피고소인 간에도 분열이 생긴 셈이다. 전공의들 손으로 세운 대복회의 재기는 이번 사건의 해결에 달렸다.

    전공의 울린 ‘대복회’를 아시나요?

    새내기 의사들이 윤리 선서식을 하는 모습.(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