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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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웃음에서 묻어나는 절망감

‘잠 못드는 밤은 없다’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0-05-24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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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괴한 웃음에서 묻어나는 절망감

    말레이시아에 모여 사는 일본인의 속 깊은 심정을 다룬 ‘잠 못드는 밤은 없다’.

    작가 히라타 오리자와 작가 겸 연출가인 박근형은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관객이 정보 없이 작품을 접하더라도 그들의 작품인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때문에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를 박근형이 무대화한다는 소식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히라타 오리자는 일상의 단면을 무대에 올려놓은 채 순간순간을 현미경으로 비추는 것 같은 ‘극사실주의’ 연극을 만들어낸다. 그 어떤 과장도, 양식화도 없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극 리듬을 관찰하다 보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는 강조점을 찾을 수 있다. 박근형의 작품에서도 배우들의 연기나 무대의 비주얼, 음악 등이 일상성을 지니지만, 상황 설정은 극단적인 패륜 상태를 보여주는 등 비현실적이다. 이는 기괴하고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는 한편, 내면 깊은 곳의 절망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바로 이 ‘내면에 억압된 절망감’이 히라타 오리자와 박근형의 접점이다. ‘잠 못드는 밤은 없다’의 주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용은 말레이시아에 모여 사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다. 다양한 나이와 성별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일본이 아닌 곳을 찾아’ 말레이시아에 왔고, 머무는 기간도 다르다. 작품에서 인물들은 일상적이면서도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지만,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밑바닥에 슬픔과 상처가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화에서는 이지메(집단 따돌림), 2차 세계대전 후유증, 집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 외국에 잠적해 사는 소토코모리 등 일본의 ‘사회병리학적’ 현상이 드러난다. 그리고 과거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 나라에 대한 애증, 죄책감과 그리움 등이 은밀하게 뒤섞이면서 한층 음울한 느낌을 준다. 각자의 문제는 개인에 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일본에 대한 일종의 비가(悲歌)로 다가온다.

    조용한 절망감을 드러내는 방법에서는 히라타 오리자와 박근형의 특징이 동시에 느껴진다. 극 행동은 조용하지만 터프하고, 상황 묘사는 사실감 있지만 기괴하다고나 할까. 천연덕스럽게 금기를 깨며 ‘막 나가는’ 인물들이 박근형 표의 ‘불편한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개성이 약화된 것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절충되면서 교묘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인물들의 어둑어둑한 절망감이 수면 위로 배어 나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고, 적절한 순간에 조금씩 주제가 드러나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다만 배우들의 대사 톤이 전체적으로 섬세하게 조절되면 그 맛이 배가될 것 같다. 예수정, 서이숙, 정재진, 최용민 등의 원숙한 연기가 돋보인다. 6월 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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