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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여제의 ‘감격 귀환’

박세리, LPGA 벨 마이크로 클래식서 우승 자신감 회복 제2 전성기 대내외 선언

  • 김종석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js0123@donga.com

골프 여제의 ‘감격 귀환’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갔다. 뒷전으로 물러나는 듯했다. 그 대신 까마득히 어리게만 보이던 후배들이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박세리(33)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다시 돌아왔다. 당당하던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박세리가 5월 17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3차 연장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짜릿한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얼마 만에 누리는 영광의 순간인가. 박세리는 울먹거리며 감격스러워했다. 박세리의 영향을 받아 골프에 매달려 성공한 신지애, 양희영 등 ‘세리 키즈’는 그런 언니에게 샴페인과 맥주 축하세례를 보내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2007년 7월 제이미 파 오언스 코닝 클래식 이후 무려 2년 10개월 만에 승수를 추가했다. 통산 25승째. 박세리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내와 훈련뿐이었다. 우승을 많이 했지만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항공편까지 취소하며 응원을 한 신지애는 “세리 언니가 우승하는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내가 우승한 듯 굉장히 뿌듯하다”고 말했다. 박세리의 우승 소식을 접한 최경주 역시 “실력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기회가 오면 잡게 마련이다. 마음고생도 해갈했을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98년 LPGA투어에 뛰어든 박세리는 당시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가운데 ‘맨발 투혼’으로 US여자오픈 정상에 올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 골프의 선구자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2004년 미켈럽울트라오픈 우승으로 명예의 전당 가입 포인트를 채운 뒤 극심한 슬럼프에 허덕였다. 2005년 우승 없이 평균 타수가 74.21타까지 치솟으며 상금 랭킹은 102위로 처졌다. “이젠 끝났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정신력을 키우려고 태권도와 킥복싱까지 한 끝에 2006년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그는 그린에서 펄쩍 뛰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세리 키즈’가 자극제



그러나 2007년 우승을 끝으로 좀처럼 정상과 인연을 맺지 못한 채 후배들을 격려하는 역할에 치중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땀을 흘렸다. 지난 연말부터 찾아온 퍼트 난조를 해결하려고 전담코치까지 뒀다. 예전과 달리 성적을 의식한 조바심도 찾을 수 없었다. 한결 성숙한 모습으로 마음 편하게 때를 기다렸다. 그런 박세리에게 후배들은 자극제였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처음에는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이젠 자랑스럽고 내 존재를 느끼게 해줘요. 동생들의 응원이 큰 힘이 돼요.”

박세리는 연장전에서 6전승을 올려 LPGA투어에서 최고 승률(100%)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강한 비결에 대해 그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집중력이 평소보다 강해진다. 진다는 생각은 없다. 스윙이 부드러워진다. 최선을 다해 연장 불패의 기록을 지키고 싶다”고 전했다.

2008년부터 메인 스폰서 못 구해

그는 이 대회에서 사흘 연속 60타대를 쳤지만 불과 2주 전만 해도 우승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멕시코에서 열린 트레스 마리아스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전반에 39타, 후반에 45타를 쳐 84타로 무너진 뒤 기권했다. 주말 골퍼 수준의 형편없는 스코어였다.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심장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원래 알레르기가 심해 호흡기 질환에 자주 걸리는데 산소량이 줄어드는 고산지대에서 경기하다 보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

박세리는 이번 대회와 같은 골프장에서 열린 2001년, 2002년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우승해봤기에 코스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간결해진 스윙으로 올 시즌 254.9야드였던 드라이버 비거리가 268.4야드까지 늘어난 것도 정상을 향한 그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삼성, CJ 등 국내 굵직한 대기업과 10년간 총액 규모 수백억 원에 이르는 스폰서 계약을 할 만큼 상종가였던 박세리는 2008년부터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한물갔다는 평가 속에 주요 기업에서 계약을 꺼린 탓이다. 국산 골프용품업체인 E2 등으로부터 서브 스폰서로 후원받고 있을 뿐이다.

한때 아무 표시도 없는 모자를 쓰고 다닌 그는 올해부터 ‘온다 도로(ONDA D’ORO)’라는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1년 동안 쓰기로 했다. 온다 도로는 미국 진출 초창기부터 후원해준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내파밸리에서 만드는 고급 와인이다. 누리꾼 사이에선 이것이 ‘도로 온다’라는 뜻이며 박세리의 재기를 상징한다는 나름대로의 해석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와인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좋은 맛과 향을 내고 싶어요. 새롭게 태어나는 전환점을 맞은 기분이에요. 멋있게 후회 없이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오랜만에 정상에 복귀한 박세리는 박수를 받으며 떠나고 싶다는 자신의 향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도 있다. 4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만 우승을 못한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하게 된다.

한국 여자골프는 최근 선수 수명의 단축이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20대 중반만 넘어서면 기량이 감퇴해 황혼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미국 무대에 진출한 선수 가운데도 쓰라린 실패를 겪은 뒤 국내로 돌아오거나 운동을 포기하는 사례가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투어의 우승자 평균연령은 20.9세다. 어린 후배들에게 치여 쉽게 의욕을 잃거나 힘든 운동을 포기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시련을 극복한 박세리는 이런 면에서도 좋은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경기를 즐기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예요. 나이는 큰 문제가 아니에요.”

척박하던 골프 환경에서 클럽을 잡았던 박세리이기에 후배들에게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포부만큼은 여전히 크다. “후배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한 보험이 되겠다”는 그의 말에서는 후배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듬뿍 묻어난다. 그의 아버지 박준철 씨에 따르면 충북 청주에 골프 아카데미와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며 중국 골프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박세리는 “수많은 세리 키즈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골프에 매진하겠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골프에 대한 내 믿음과 열정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며 향후 우승 도전에도 의욕을 보였다. 자신감을 되찾은 박세리. 그의 제2 전성기는 이제부터다.



주간동아 2010.05.24 738호 (p74~75)

김종석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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