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9

2010.03.30

5개월의 국장(國葬) 기간 정성과 기술 총결집

  •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55hansong@naver.com

    입력2010-03-23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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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월의 국장(國葬) 기간 정성과 기술 총결집

    조선 왕릉은 자연과 조화롭게 조영된 것이 특징이다. 사진은 효종 영릉의 진입 공간.

    왕이 승하하면 3일에서 5일 안에 새로운 왕이 선정된다. 새 왕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선왕을 좋은 자리에 정성껏 모시는 것이다. 유교 국가인 조선은 더욱 그랬다. 새 왕은 국장을 치를 장례위원회를 조직한다. 장례위원장을 ‘총호사’라 한다. 총호사는 일반적으로 3정승이 맡는다. 총호사 밑에는 선왕의 시신을 안치하고 예를 갖추는 빈전도감, 국장의 의식과 절차를 담당하는 국장도감, 능원의 자리 잡기와 능역을 조성하는 산릉도감의 조직을 둔다. 이 일을 잘하면 차기 정권의 실력자로 들어갈 수 있기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다. 대선이 끝나면 조직되는 인수위원회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국장은 대개 5개월 동안에 이루어진다. 능역 조성의 책임을 맡은 산릉도감은 대체로 공조판서가 총괄한다. 태조 건원릉의 산릉도감은 경복궁과 종묘 등을 건축한 박자청이 담당했다. 동원된 인력은 5000~9000명에 이른다. 당대 최고의 기술자와 자재가 동원된 조영기술의 총합이다.

    산 자를 위한 진입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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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능역의 공간 구성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인 정자각을 중심으로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외금천교, 재실, 연지 등이 있는 진입 공간은 산 자를 위한 곳이다.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과 참배도(향도 + 어도), 수복방, 수라청이 배치된 곳은 왕의 혼백과 참배자가 만나는 제향 공간이다. 언덕 위 봉분을 중심으로 곡장(ㄷ자형의 담)과 석물이 조성된 곳은 죽은 자를 위한 성역으로 능침 공간이라 한다.

    각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후손을 위한 진입 공간은 외금천교, 외홍살문, 재실, 연지, 금천교로 이어진다. 외금천교는 능역의 영역을 구분하는 돌다리를 가리킨다. 외금천교를 지나면 외홍살문이 있다. 능 행차 시 헌관은 외홍살문 앞에서 하마(下馬)한다. 원래는 하마비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말에서 내린 헌관은 가마를 타고 재실로 향한다. 재실에서 헌관 일행은 음식을 준비하고 몸을 깨끗이 한 뒤 제례 준비를 한다. 필요에 따라 숙박을 하기도 한다. 제례 준비를 마친 헌관 일행은 제례의식을 갖추고 능원으로 향한다. 명당수가 흐르는 개천을 따라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진입하면 작은 연못이 나오는데, 이는 농토에 물을 대고 제관(참배객)들이 휴식할 수 있게 하는 수경 공간이다.

    곡선의 참배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돌다리인 금천교를 만난다. 금천교는 왕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으로 속세와 구분해주는 구실을 한다. 금천교를 지나면 능원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커다란 문이 있다. 홍살문 또는 홍전문이라고 한다. 헌관은 홍전문을 통하지 않고 배위로 향한다.

    선왕과 현세의 왕이 만나는 제향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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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제향 공간. 사진은 문정왕후 태릉.

    홍살문 앞 오른쪽에는 제례의 시작을 알리는 가로세로 6자(1.8m) 정도의 네모난 배위가 있다. 이 배위에서 혼백을 부를 때 4배한다. 홍살문 앞에서부터 정면의 정자각까지 얇은 돌을 깔아 만든 긴 돌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참도라고 한다. 참도는 혼령이 이용하는 신도(향도라고도 함)와 참배자(왕 또는 제관)가 이용하는 어도(御道)로 구분돼 있다. 신도가 어도보다 3치 정도 높다. 일반적으로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직선거리는 대략 300척(약 90m)이나 능마다 차이가 있다.

    참도는 정자각 월대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월대 동쪽에서 접근하여 각각 계단을 통해 배위청에 오르게 돼 있다. 이 계단은 남향의 능원에서 동쪽에 자리해 동계라고도 한다. 동계도 신계(神階)와 어계(御階)로 나눈다. 동계를 오를 때는 오른발을 먼저 내디뎌야 한다.

    동계를 통해 오른 월대의 형태는 정전의 기단 폭과 배전의 기단 폭이 일치하는 일반배전형이 많으며, 월대의 높이는 3단 장대석을 쌓았다. 신계는 3단으로 돼 있으며 양옆에 구름무늬와 삼태극을 조각한 배석이 설치돼 있다. 어계는 배석이 없으며 단순한 장대석의 3단 계단이다. 헌관은 월대에 올라 배위석에서 4배하고 동문을 통해 정청으로 들어간다. 혼백은 가운데 신문으로 들어간다. 제례를 마친 제관은 정청 서문을 통해 나와서 배위청 서쪽으로 내려온다. 배위청 서쪽에는 동계와 같은 규모의 어계 한 조만 놓여 있다. 이는 제례를 마친 신(즉 조상)은 정청에서 신문과 신교, 신도를 거쳐 바로 능침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배위청은 앞면 1칸, 측면 2칸이며 배위청에 맞닿은 정청은 앞면 3칸, 측면 2칸으로 배위청보다 단을 3치 높게 조성한다. 이 두 건물이 결합해 정(丁)자 형태를 갖추었다 해서 정자각이라 한다. 정자각은 일반적으로 맞배지붕이다. 이러한 건축은 우리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평가받는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실사를 맡은 중국의 고건축가 왕리쥔(王力軍) 부원장도 이 정자각에 매료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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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각 뒷면 가운데 신문을 열면 능주의 혼백이 제향 후 봉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능침을 향해 놓은 돌다리인 신계(神階) 또는 신교(神橋)가 있다. 그리고 신도(神道)가 능의 사초지(岡)가 끝나는 곳까지 이어지는데 박석(얇고 넓적한 돌)으로 포장돼 있다. 가장 길고 재미있는 신도는 동구릉에 있는 선조(宣祖)와 그의 비들의 능인 목릉에서 볼 수 있다.

    제례를 마친 제관들은 정청 서쪽 문을 통해 나와 월대 서쪽 어계를 거쳐 내려온 뒤 정자각 북서쪽에서 제례의식을 마치는 의미로 지방을 불사르고 제물을 예감(隸坎 또는 望燎位)에 묻는다. 예감은 가로세로 2자, 깊이 30cm 정도의 정(井)자 형태로 나무뚜껑이 있다. 초기 능인 건원릉과 헌릉에는 잔대 형식의 소전대라는 석물이 있었으나 이후 능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시기에 따른 제례 행위의 변화로 보인다.

    정자각 앞쪽 양옆에는 재실에서 준비한 제례음식을 데우고 진설하는 수라청과, 능원을 지키는 사람의 공간인 수복방(수직방)이 있다. 수라청과 수복방은 참도를 향해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수라청 근처에는 제례 준비를 위한 어정이 있다. 이 어정의 위치에 따라 수라청은 아래위로 자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정자각 후면 동북쪽에는 선왕의 업적과 이력이 기록된 비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산신에게 제사 지내는 산신석이 능침의 강(사초지 경사면)이 끝나는 정자각 뒤 동북쪽에 세워져 있는데 규모는 혼유석의 4분의 1 정도다. 이 비각의 위치는 능원의 왼쪽 상단부로 학생 시절 달던 명찰의 위치와 비슷하다.

    5개월의 국장(國葬) 기간 정성과 기술 총결집

    곡장을 친 순조와 순원왕후를 합장한 인릉의 능침 공간.

    제향 공간과 능침 공간은 단의 높이에 상당히 차이를 두는데, 이는 능침 공간의 신성함과 위계감를 나타내기 위해서다. 이곳은 사초를 심어 유실을 방지하며, 배가 불룩한 철형의 경사면을 이룬다. 이 경사면은 참배객이 능침에 오를 때 허리를 굽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소 참배객은 신성한 공간인 능침에 오르지 못하며 왕이나 제관, 참봉도 참배할 때만 오를 수 있다.

    선왕을 위한 성역 능침 공간

    능침 공간은 왕릉의 핵심으로, 능침 뒤의 높은 주산에서 내려온 주맥이 뭉치는 볼록한 지형인 잉(孕) 양옆으로 미사(眉砂)를 이루어 조금 아래 평지에 혈처를 찾아 곡장을 쳐서 조성한다. 봉분의 좌우 뒷면 북·동·서 3면에 곡장을 두르고, 주변에는 소나무를 심어 위엄성을 강조한다.

    둥근 봉분은 초기에는 석실과 병풍석으로 돼 있었으나, 세조 이후 능제의 간소화 정책에 따라 석실은 회격실로 하고 병풍석은 방위를 나타내는 12방의 난간석만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석양, 석호, 장명등, 망주석 등의 석물이 배치돼 있다. 봉분 주변에는 좌우로 석양과 석호를 서로 엇바꾸어 두 쌍씩 여덟 마리가 배치돼 능을 수호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봉분의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이 놓여 있다. 혼유석이란 혼이 노닌다는 의미다. 우리만의 독특한 이름이며 그동안 현세 정치의 고단함을 잊고 편히 쉬시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왕조가 사후에도 계속 통치한다는 의미와는 사뭇 다른 해석이다.

    봉분을 중심으로 석물이 놓인 곳을 능침의 상계라 하는데 사자(능주)의 중심 공간이다. 상계 앞의 한 단 낮은 곳은 문석인의 공간으로 중계(中階)라 불리며, 이 공간의 중심에 팔각 또는 사각의 장명등이 있고, 양옆으로 안쪽을 향해 문석인이 한 쌍 서 있다. 여기서 한 발 뒤, 한 발 옆으로 말상이 있다. 그 다음 한 단 아래 공간인 하계(下階)에는 무석인이 석마와 공간을 같이해 중계와 나란히 구성돼 있다. 하계 앞은 평지에서 급경사로 이어지며 사초지로 조성돼 있다.

    조선 왕릉은 2009년 6월 연속유산(serial nomination)으로 인정받아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890여 만m2(약 570만 평) 넓은 면적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조선 왕릉 42기를 모두 봐야 그 시대의 정치, 철학, 사상, 조영기술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능주의 탄생과 업적, 승하, 당시의 정치·사상·기술·풍수학을 알아야 비로소 왕릉에 담긴 뜻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아울러 왕릉이 살아 숨 쉬는 생태 공간임을 고려해 광릉숲, 청량리 홍릉숲 등 나무와 꽃 이야기도 다루고자 한다. 능제 시설의 문화적 특성을 살펴보고 제례음식의 산물인 각 능의 먹을거리 문화도 음미해보려 한다. 다음 호부터는 태조 건원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왕릉 탐방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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