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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쓴다, ‘한국판 쿨 러닝’

봅슬레이 강광배 ‘밴쿠버 기적’ 남다른 각오 … 열악한 환경 딛고 메달 향한 부푼 꿈

  • 이재철 스포츠 자유기고가 kevinjlee7@nate.com

신화를 쓴다, ‘한국판 쿨 러닝’

신화를 쓴다, ‘한국판 쿨 러닝’

일본 나가노에서 훈련 중인 봅슬레이 선수팀. 맨 오른쪽이 강광배 선수다. 이들의 훈련 모습은 MBC ‘무한도전’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영화 ‘쿨 러닝’은 더운 나라인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동계올림픽에 출전, 좋은 경기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봅슬레이 상황도 ‘쿨 러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봅슬레이 인프라와 선수가 거의 없기 때문. 하지만 대한민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당당히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그 영광의 얼굴들 사이에 국내 썰매 종목과 봅슬레이 개척자 강광배(강원도청·37) 선수가 있다. 1월25일 서울 송파구 오륜동에 자리한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에서 만난 그는 취재진의 많은 관심에 고무된 듯 보였다.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것만으로도 이렇게 관심을 받는 건 봅슬레이가 처음일 겁니다.(웃음)”

한국 봅슬레이는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4인승 종목에만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랭킹 17위까지 주어지는 2인승에서 상위권 세 나라가 불참해 극적으로 2인승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봅슬레이 종목에서 한국이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는 이번이 처음.

세계 최초 썰매 전 종목 출전

강 선수는 개인적으로 네 번째 동계올림픽 출전이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는 루지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는 스켈레톤으로 출전했다. 이로써 그는 세계 최초로 올림픽 썰매 3개 종목에 모두 출전한 선수가 됐다. 동계올림픽 4회 출전은 스피드 스케이팅 이규혁 선수의 5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출전 기록. 하지만 그의 화려한 동계올림픽 출전 경력 뒤에는 영화 같은 스토리가 숨어 있다.



대학 시절 스키 선수로 전국대회 우승까지 했던 강 선수는 1995년 학생들을 가르치다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그대로 운동을 접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무릎 부상은 그를 썰매 종목으로 이끌었다. 1996년 대한체육회의 루지 선수 선발 공고를 보고 무릎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종목이라 판단, 바로 지원했고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여름에도 바퀴를 단 썰매를 타고 아스팔트에서 달리는 맹훈련을 거듭한 끝에 나가노올림픽에 출전했다.

강 선수는 1999년 본격적인 루지 훈련을 위해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이국에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올림픽 준비를 하던 그는 대한루지연맹으로부터 ‘세대교체 등의 이유로 선수 자격을 박탈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현지에서 무릎까지 다쳐 수술해야 했던 그는 수술대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실의에 잠겨 있던 강 선수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오스트리아에서 배운 스켈레톤의 재미에 빠졌던 그가 온갖 노력 끝에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스켈레톤 종목 출전권을 따낸 것. 대한체육회도 그의 출전권 획득 소식을 추후에 알았을 정도로 아무런 외부 지원 없이 홀로 도전해 이룬 쾌거였다.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이후 강원도는 올림픽 유치 붐을 타고 스켈레톤팀을 만들었고, 이 팀에서 그는 토리노올림픽 출전권도 따냈다. 강 선수는 대한올림픽위원회의 추천으로 토리노올림픽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후보위원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2006년 말 강 선수는 새로운 종목에서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봅슬레이. 선수 모집이 가장 급했다. 봅슬레이는 1인 경기인 루지와 스켈레톤과 달리 2인승, 4인승 등으로 나뉜 단체종목이기 때문. 대학에서 수차례 강습회를 열어 겨우 선수를 모았지만, 상당수 지원자는 막상 훈련장에 와서 겁을 먹고 돌아갔다.

신화를 쓴다, ‘한국판 쿨 러닝’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선전을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치는 강광배 선수.

“개척자 정신을 가진 선수가 필요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학생들을 붙잡기 위한 동기 부여가 필요했죠. 바로 ‘올림픽 출전’이라는 카드였어요. 그래서 강원도청 봅슬레이 실업팀에 들어갔고, 이 팀을 중심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단체팀의 윤곽을 잡았죠. 그리고 선수들을 모을 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라고 독려했어요.”

하지만 주변 상황은 열악했다. 국제대회에 출전해 봅슬레이를 빌려 타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국내에는 봅슬레이 코스가 없어 선수들은 강릉, 춘천을 오가며 주로 기초체력 훈련만 해야 했다. 태릉선수촌 입촌 후 체력훈련만 했더니 다른 종목 선수들이 ‘도대체 뭐 하는 선수들이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2009년에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등 봅슬레이 훈련 코스가 있는 곳으로 가 수개월간 훈련을 했다. 다행히 오는 3월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에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장이 오픈한다고 한다.

이번 올림픽에는 강광배 외 김정수(강원도청), 이진희(강릉대), 김동현(연세대) 선수가 출전한다. 모두 3년 이하의 경력으로 강 선수가 대학에서 봅슬레이를 강의할 때 선발했다. 이들은 100kg이 넘는 강 선수와 달리 몸무게가 90kg이 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속을 내는 데 어려움이 있어 좋은 성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미국, 캐나다 등 봅슬레이 강국은 대부분 100kg이 넘는 선수로 구성돼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유치위원인 그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평창올림픽 유치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 동계올림픽을 연 국가는 모두 선진국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는 선진국으로 가는 관문”이라며 개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올림픽이 열려야 많은 돈이 들어가는 봅슬레이 코스도 만들어진다.

도전과 좌절, 재기를 거듭하며 ‘세계 최초 썰매 전 종목 올림픽 출전’ 이력을 쓴 강광배. 그는 “재미있어서 도전했다. 후배들에게 좋은 여건을 마련해주겠다는 사명감과 올림픽 출전, 메달 획득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조만간 영화로도 만날 수 있을 듯

영화 ‘쿨 러닝’의 배경이 된 자메이카 선수들과는 유니폼도 교환해 입고 장비 날도 빌려주는 등 친하게 지낸다고. 더운 나라인 자메이카나 인프라가 전혀 없던 한국이나 봅슬레이에 대해선 ‘동병상련’을 느끼기 때문이다. ‘쿨 러닝’을 감명 깊게 봤다는 강 선수는 “시작 배경도 그렇고 힘든 여건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것도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며 허허 웃었다.

강 선수는 2년 전 한 영화감독에게서 봅슬레이를 소재로 한 영화 제의를 받았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대표’에 이어 또 하나의 비인기 스포츠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24일 MBC ‘무한도전’에서 봅슬레이 특집을 했는데 당시 시청률 17.2%로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올리기도 했다.

“봅슬레이 대표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아마 ‘국가대표’보다 더 감동적일 겁니다.(웃음) 저희가 이번 올림픽에서 선전하면 많이 달라지겠죠. 또 봅슬레이 영화도 만들어지고, 2018년 동계올림픽까지 유치되면 봅슬레이 인지도가 높아지지 않을까요.”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은 2월13일(한국시간) 개막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대비, 1월27일 출국했다. 그가 써온 ‘무한도전’ 스토리가 밴쿠버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10.02.09 723호 (p64~65)

이재철 스포츠 자유기고가 kevinjlee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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