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9

2009.11.03

약자 보듬는 법률복지국가 실현

대한법률구조공단, 22년간 무료법률상담 4900만명, 민·가사 법률구조 79만6600건 수행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9-10-28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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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자 보듬는 법률복지국가 실현

    서울 서초구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민원상담실에서 민원인들이 법률구조 상담을 받고 있다.

    정부의 잘못으로 무려 54년 동안 억울한 ‘전과자’ 인생을 살아온 고모 씨가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 정홍원·이하 법률공단)을 찾은 것은 지난해 5월이다. 그동안 당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그냥 넘기기엔 너무 참담했기 때문이다.

    고씨가 담당공무원의 실수로 자신의 범죄경력 자료에 ‘1949.2.23 육군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 선고’라고 잘못 기재된 사실을 안 것은 1954년. 이후 이를 정정해달라고 정부 담당기관에 수십 차례 요청했지만 무슨 까닭인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비로소 정정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54년 동안 고씨를 괴롭혀온 범죄경력이 한순간에 ‘없었던 일’이 된 것이다. 고씨는 법률공단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지난해 7월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올해 1월 1000만원을 배상받았다.

    법무부 산하기관인 법률공단이 설립된 지 올해로 22년째. 설립 목적은 고씨처럼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을 몰라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법률상담과 소송 대리 등 법률구조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지난 8월 현재까지 법률공단은 4900만 건에 이르는 무료법률상담을 비롯해 민·가사사건 79만6600건, 형사사건 17만7800건 등 97만4400건의 법률구조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구조해준 금액은 12조5500억여 원에 달한다. 대리소송의 경우 법률공단의 승소율은 90%를 넘는다. 그만큼 법률공단의 법률구조 서비스를 필요로 한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매년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 2004년 민사와 형사 등 모두 7만 건 정도이던 것이 해마다 10% 이상씩 증가해 올해는 13만3000건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5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증가한 셈.



    대리소송 승소율 90% 넘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률공단 소속 변호사 1인당 사건 배당건수도 급증했다. 2004년 소속 변호사 29명의 1인당 월 배당건수는 40건, 월 부담건수(진행하는 건수)는 139건이었다. 그런데 소속 변호사 수가 2005년 33명, 2006년 41명, 올해 50명으로 늘었음에도 올해 1인당 월 배당건수는 92건, 월 부담건수는 320건으로 일거리는 더 늘었다. 그나마 131명의 공익법무관이 일정 부분 역할분담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유지가 가능한 상황이다.

    법률공단은 본부, 18개 지부, 39개 출장소와 지난 7월1일 전국 시·군 법원 소재지에 개소한 15개 지소를 두고 있다. 15개 지소는 지난해 6월 정홍원(65) 이사장이 부임하면서 ‘찾아가는 법률구조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앞으로 5년간 연차적으로 67개 지소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만큼 법률공단에 접수될 사건도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는 2012년부터 법률공단에 배정될 공익법무관 수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법률공단엔 비상이 걸렸다. 법률공단 김용진 구조정책부장의 말이다.

    “올해 첫 로스쿨 입학생은 모두 2000명인데, 이 가운데 군 미필자는 149명입니다. 5월 현재까지 그중에서도 40명이 입대해 남은 군 미필자는 109명에 불과하죠. 변호사시험 예상 합격률을 80%로 잡으면 87명 정도가 공익법무관을 자원할 텐데, 군에서 필요한 군 법무장교 101명과 검찰청 송무담당 법무관 30명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입니다. 아마 2017년이면 공익법무관은 사라질 겁니다. 그러니 걱정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젊은 변호사들이 법률공단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현재 사법연수원 졸업생들은 판·검사 임용 다음으로 법률공단 변호사를 희망하고 있다”는 게 법률공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런데도 법률공단은 그동안 101명으로 늘린 변호사 정원을 절반도 채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올해는 정원을 75명으로 줄였다. 경제위기일수록 법률공단의 법률구조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국민은 늘어날 것이 분명한데도, 경제위기 상황이니 부처의 규모를 줄이라는 정부의 방침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월 소득 260만원 이하면 누구나 이용

    11월5일 법률공단이 개최하는 ‘2009 법률구조 국제심포지엄’에서 제1세션 발제자로 나서는 서울대 법대 성낙인 교수(헌법학)는 ‘법률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공단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 발표문을 통해 “법률공단이 서민의 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국가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법률공단에 대한 재정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하는데, 오히려 감축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이에 앞서 “국민의 ‘법률구조를 받을 권리’를 현실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해 법률구조법을 비롯한 관계법령의 개정이 시급하다. 또한 법률공단의 독립성을 높여가려면 법무부, 검찰, 기획재정부 등과의 유기적 협조체제 구축 못지않게 법률공단의 위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률공단의 법률구조 서비스는 월 평균소득 260만원 이하의 국민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전 국민의 절반이 서비스 대상인 셈이다. 여기에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장애인,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보호대상자, 북한이탈주민, 소년·소녀가장, 개인회생 및 파산·면책신청 대상자, 임금 등 체불피해 근로자, 가정폭력·성폭력피해 여성 및 13세 미만 아동, 국내 거주 외국인도 포함된다.

    인터뷰·정홍원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다문화가정·탈북자 위한 법문화 교육 강화할 터”


    약자 보듬는 법률복지국가 실현
    법률공단이 개최하는 첫 국제행사인 ‘2009 법률구조 국제심포지엄’이 11월5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다. 법률공단 정홍원 이사장(사진)을 만나 이번 행사가 갖는 의의와 법률공단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의 의미는.
    “법률구조제도의 세계적 흐름을 논의하고 발전 방향을 잡는 중요한 자리다.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명실 공히 세계를 선도하는 법률 복지국가로 나아갈 것이다.”
    외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법률구조체계의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제도 운영 실적이나 효율 면에선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법률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일본도 2004년 우리 법률공단의 운영을 본떠 법률구조제도를 정비했을 정도다.”
    이사장 취임 이후 어떤 일에 주력했나.
    “우리나라에 호적이 없는 사람이 약 3만명이다. 이들은 의료나 기초생활 등 국민으로서의 기본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연간 2000명을 목표로 호적을 만들어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주민등록과 호적의 생년월일이 불일치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수정작업도 도왔다. 경제위기 때문에 파산에 몰린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개인회생·파산 종합지원센터를 만들어 올 1월부터 가동 중이다. 노동부, 국민연금관리공단, 신용회복위원회와 함께 원스톱 서비스를 하고 있다.”
    법률공단이 앞으로 역점을 두고 진행할 주요 사업은.
    “다문화가정, 탈북자를 대상으로 법률제도와 질서, 민주주의 등 법문화를 교육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법문화교육센터 개소를 경북 김천시와 함께 추진 중이다.”
    법률공단의 발전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서비스 범위를 넓히는 것, 두 번째는 서비스 질을 높이는 것이다. 변호사들의 전문성을 확대해 일반 로펌에서는 하기 어려운 사건까지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세 번째는 친절도 향상.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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