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2

2009.09.08

휴학기간 ‘취업 5종세트’ 챙겼나요?

40만 휴학생 시대, 한 학기 쉬는 것은 필수(?) … 목적의식·자기관리 없으면 시간 낭비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9-02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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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학기간 ‘취업 5종세트’ 챙겼나요?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22) 씨는 편입 준비를 위해 1년 휴학을 신청했다. 편입에 성공한 친구의 권유와 ‘편입에 실패해도 영어 하나는 건지겠지’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편입은 두 달 만에 중도포기. 결국 부모로부터 온갖 잔소리를 들으며 우울하게 휴학생활을 마감했다.

    하는 수 없이 조기복학을 신청했지만 김씨는 졸업 전 다시 휴학을 꿈꾼다. ‘취업용 자기계발’을 하기 위해서다. 김씨와 같은 20대 초반 휴학생은 지난 5월 기준으로 40만2000여 명.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8만4000여 명이 늘었다. 대졸 청년층 가운데 40%가 휴학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한 학기 정도의 휴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 자연스레 졸업하는 데 걸리는 기간도 길어진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데 남자는 평균 6년 5개월, 여자는 4년 4개월 걸린다. 군복무 기간을 제외해도 한 학기 정도 더 학교를 다니는 셈이다. 대학 5학년생, 6학년생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바야흐로 ‘휴학생 전성시대’다.

    과거엔 대학생들이 휴학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86학번 김민식 씨는 “남자들의 군입대 휴학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휴학할 만한 사정이 없었다”며 “시위를 하다 제적되거나 학점을 채우지 못해 졸업이 늦어지긴 했지만 일부러 휴학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고시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휴학을 하면서 공부하기보다는, 재학 중에 합격하지 않으면 졸업 후 계속해서 준비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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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사정은 급변했다. 휴학을 하는 이유도, 보내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휴학을 하는 압도적인 이유는 취업난이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반영하듯 취업 재수생, 삼수생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졸업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휴학을 하며 졸업을 미루는 사례가 늘어나는 실정이다. 취업이 코앞에 닥친 3, 4학년뿐 아니라 1, 2학년 저학번들조차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을 선택한다. 휴학은 인턴십, 관련 직종 아르바이트, 자격증 취득, 봉사활동, 공모전 등 이른바 ‘취업 5종 세트’를 획득하기 위한 기간으로 활용된다.

    대학생 한지연(21) 씨는 모 회사 커뮤니티 운영 인턴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2학년 1학기가 끝나자마자 한 학기 휴학을 신청했다. 한씨는 “재학 중 짬을 내서 하는 대외활동에 부족함을 느꼈다. 취업을 염두에 두고 좀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한 휴학이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털어놨다. 비싼 학비도 휴학생이 늘어나는 중요 원인 중 하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학자금 탓에,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휴학을 하는 경우도 많다. 2008년 모 전문대 예체능 계열에 입학한 박소현(20) 씨가 그런 경우.

    박씨는 형제가 많아 학교를 계속 다니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1학년을 마치고 신청한 휴학. 학자금에 조금이나마 보탤 생각으로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가 계속되다 보니 피로가 쌓여갔다. 다음 날 일 나가기 직전까지 잠에서 깨지 못할 때도 잦다.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도 없고 친구도 못 본 지 오래다. 1년 휴학 중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지쳐온다.

    ‘이렇게 알바만 하다 졸업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휴학을 마치고 복학을 한다 해도 다음 학기 학자금이 또 걱정이다. 학자금 대출이 있다지만 여전히 그 문턱은 높다. 2학년 1학기를 마친 강모(22) 씨는 이자 연체 기록 때문에 학자금 대출에 실패해 휴학을 하게 됐다. 언젠가는 휴학을 하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시기가 빨리 와 당황스러웠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는 시간을 활용해 영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강씨는 겉으로는 “이러다 군대 다녀온 남학생 동기랑 같이 졸업하겠다”고 웃지만, 내심 정말 걱정이다. 집안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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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학 기간은 일반적으로 6개월, 1년 단위로 신청한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이다.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경험을 쌓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 자유롭게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직접 돈을 벌 기회도 마련할 수 있다. 대학생 윤선아(23) 씨는 지난 1년간 휴학하면서 학기 중에 하기 힘든 갖가지 활동을 하며 보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다녀오기도 했다. 윤씨는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하며 알차게 휴학기간을 보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자칫하면 아무것도 못한 채 시간만 낭비할 수 있는 만큼 휴학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미 두 차례 휴학한 고시준비생 이모(26) 씨는 “휴학에 앞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휴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생각하는 것은 금물. 2년 전 행정고시 합격을 목표로 처음 휴학을 했지만, 조바심 탓에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른 걸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늘 머리에 맴돌았다. 결국 시험에 떨어지고 복학을 한 이씨는 “처음에 고시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대로 밀어붙여야 했는데 다른 것도 생각하다 보니 원래 의도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고 생활을 절제하는 의지도 중요하다. 대학생 조모(22) 씨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며 올해 초 휴학을 신청했다. 언론사 시험 대비 아카데미도 다니고, 인터넷 카페에서 스터디를 구해 영어공부를 하는 등 야심차게 시작한 휴학생활.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가짐이 해이해졌다.

    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보다 시간 여유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노는 것에 눈길이 갔고, 놀다 보니 돈이 필요해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휴학기간이 흘러가자 차라리 빨리 복학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휴학을 한다고 학생들의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유예될 뿐이다. ‘해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조바심은 휴학생들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휴학이 마냥 휴학(休學)일 수 없는 이유다. 휴학생 40만 시대. 9월 개강을 앞두고 어떤 이는 학교로 돌아오고, 또 다른 이들은 학교를 떠난다. 떠나는 학생들 뒤로 ‘휴학생 전성시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 이 기사의 취재에는 주간동아 대학생 인턴기자 신지나(경희대 언론정보학부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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