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2

2009.09.08

“민주당 깃발로 뭉쳐야” vs “무슨 소리, 내 갈 길 간다”

양대 ‘서거 정국’ 이후 야당-친노세력 ‘대통합’ 대신 ‘다분화’ 움직임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9-09-02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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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깃발로 뭉쳐야” vs “무슨 소리, 내 갈 길 간다”
    8월27일 오전 11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민주통합시민행동’(가칭)의 준비위원 10여 명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위 사진). 이날 오후 4시30분에 예정된 발기인대회를 앞두고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준비위원들이 밝힌 모임의 근본 취지는 ‘민주세력의 대연합’.

    “대연합 운동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시민운동권을 포함해 2008년 촛불정국 이후 민주주의 살리기의 당위성을 절감한 시민과 네티즌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운동에 찬성하는 각 부문의 대표들이 여건이 허락하는 한 빠른 시일 안에 논의체를 구성하기를 촉구합니다.”

    공동준비위원장은 이창복 전 의원과 이해동 목사 등 각계 인사 8명. 130명의 발기인에는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김근태 이창복 이호웅 장영달 설훈 전 의원, 조성우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등 전직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됐지만, 이들이 주축은 아니다. 또 명망 있는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그리 많이 참여하지 않아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정세균 중심 통합 추진에 당내 반발

    다만 최근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민주화 및 진보세력의 구심점이 사라진 마당에 민주대연합이 필요하다는 진보진영 전반의 흐름과 같은 맥락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형남 홍보위원장은 “민주당을 포함해 야4당과 친노세력, 재야단체, 그리고 깨어 있는 네티즌들과 민주, 민생, 평화에 위기를 느낀 국민이 함께할 수 있는 대연합 논의체를 촉구하는 순수한 시민행동”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이들이 촉구한 민주화운동 및 진보세력 대연합의 주축은 민주당과 친노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과 친노세력의 움직임은 대통합보다 ‘다분화’로 흘러가는 양상이 역력하다.현재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와 386 출신들이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정 대표 등은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민주당을 중심으로 민주대연합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당내에 ‘통합·혁신위원회’를 꾸렸다. 8월26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정 대표의 발언에서도 그런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를 방문해 새롭게 결의를 다졌다. 민주개혁 진영의 대표 정당으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민주당이 이 시점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것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새겨야 할 대목이다.”

    정 대표에게는 민주당 중심의 대통합을 추진하면서 당내 주도권을 내년 지방선거까지 놓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당내 복귀를 호시탐탐 노리는 정동영 의원은 물론, 10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 일선 복귀가 점쳐지는 김근태 손학규 전 의원을 견제하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당내에서는 이 같은 정 대표 중심의 통합 추진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민주당 깃발로 뭉쳐야” vs “무슨 소리, 내 갈 길 간다”

    8월27일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열린 ‘민주통합시민행동’(가칭) 발기인대회. 김근태 전 의원, 정세균 대표,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등이 눈에 띈다.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이 진정으로 통합하려면 당 대표부터 기득권을 버리고 문호를 활짝 열어 차별 없이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도 될까 말까인데, 당 대표가 자신을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한다면 그게 가능하겠는가”라며 의문을 드러냈다. 추미애 의원도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옹졸하고 폐쇄적으로 당을 꾸려왔다”며 정 대표와 당 지도부를 공격했다.

    친노진영에서는 민주대통합 논의의 구심점으로 민주당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친노진영의 좌장격인 이해찬 전 총리는 8월25일 ‘노무현 시민학교’ 강의에서 “민주당은 신당추진파나 시민사회 쪽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자기 개혁을 할 의지가 없고, 지역주의적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親盧도 ‘시민모임’ ‘신당’으로 갈라져

    이 전 총리는 또한 “민주당의 자기혁신을 기대하지만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그런 민주당을 붙잡고 늘어져서 뭘 하겠느냐”며 “문호개방도 안 되고, 민주적 절차도 못 갖춘 지역주의 정당은 안 된다. 민주당 없이는 안 되지만, 민주당 중심으로도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 전 총리는 현재 한 전 총리와 함께 범친노세력을 규합한 시민정치활동 조직인 ‘시민주권모임’을 준비 중이다.

    8월26일 여의도 한 호텔에서 운영위원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운영위원회가 열려 향후 조직운영의 방향과 방법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와 한 전 총리가 공동대표를 맡게 될 이 모임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백원우 이용섭 의원, 김태년 전 의원,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등 친노 핵심인사들이 대부분 참여한다.

    이날 운영위원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출신의 정치권 인사들이 앞으로 다양한 정치적 진로를 뛰어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하기 위한 교육, 연구, 강연 등을 벌이기 위해 만든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신당을 창당하든, 민주당에 협력하든 상관없이 각자의 정치적 진로를 서로 인정하면서 활동하는, 과거의 ‘정치구락부’ 같은 느슨한 정치적 연대”라는 것. 친노신당파도 이 모임에 합류해 있지만 다른 친노 인사들과는 달리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친노신당파는 이 전 총리와 한 전 총리가 발기인으로 참여한 민주통합시민행동과도 거리를 뒀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책임지고 해야 하는 것인데, 민주통합시민행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치를 직접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거들면서 매개를 하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게 친노신당파 한 관계자의 얘기다. 민주당에 대한 평가도 이 전 총리에 비해 훨씬 부정적이다. 다음은 친노신당파의 주축인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이 8월2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한 내용 중 일부.

    “민주당은 수십 년의 역사 이래 최악의 상태다. 민주개혁세력 연대의 중심이 지금은 민주당이지만, 그 중심은 변할 수 있는 것이고 민주당이 늘 중심이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12월이나 1월쯤 친노신당파가 추진 중인 ‘국민참여정당’이 창당되면 이후 상황에 따라 친노신당파가 민주대연합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묻어 있다. 민주당과 친노세력의 대립, 그리고 그 내부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진로에 따라 다분화하고 있는 이들이 과연 대통합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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