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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슬근슬근 자급자족, 슬렁슬렁 보물찾기

자신감아, 어디 숨었니? 빗방울 맞으며 ‘사람여행’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자신감아, 어디 숨었니? 빗방울 맞으며 ‘사람여행’

자신감아, 어디 숨었니? 빗방울 맞으며 ‘사람여행’

1 장맛비를 뚫고 다시 길을 나선다. 자신을 찾기 위해.2 더덕 덩굴손. 생명은 다 자기 소중한 곳으로 몸을 돌린다.

자급자족의 삶은 돈이나 물질에서는 가난하다. 그러나 정신적인 가치만은 나름대로 풍요롭다. 그런 정신 가운데 하나가 자신감이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라면 그게 일이든 배움이든 사람 관계든 자신 있다. 하여 남과 견줄 필요 없이 스스로 당당하고 자유롭다.

얼마 전 부산에 사는 열일곱 살 정호라는 학생이 우리 집에 왔다. 정호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휴학한 상태. 지금은 도보여행 중인데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어 갈 수 없냐고 했다. 식구들과 상의하니, 정호가 와도 좋다 했다. 해거름에 정호가 집으로 왔다. 아담한 키에 안경을 꼈고, 말은 조근조근 했다. 정호에 대한 우리 식구들의 궁금증이 쏟아졌다.

“왜 휴학했니?”

“저를 찾고 싶어서요. 제가 꾸던 꿈이 가짜인 거 같고 심지어 저 자신에 대해서도 회의가 들어요. 그리고 학교를 잠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왜 도보여행이냐?”



“한비야 책을 많이 봤는데 그러더라고요. ‘걷다 보면 자신을 찾는다’고. 그런데 걸어보니 힘만 들고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웃음)”

“앞으로 계획은?”

자신감아, 어디 숨었니? 빗방울 맞으며 ‘사람여행’

3 정호(가운데)가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 식구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 4 자신을 찾는 데는 혼자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5 정호가 부친 수수부꾸미. 모양은 제멋대로지만 맛은 좋다. 아이의 자존감도 살아 있다.

“글쎄요. 처음 계획은 강원도 고성까지 가는 거였는데, 사람을 좀더 만나고 싶어졌어요. 땀 흘리며 일도 해보고 싶고요. 그냥 걷는 건 힘들고 별 뜻이 없는 것 같아요.”

이날은 우리 식구가 주로 정호 이야기를 들었다. 정호는 나와 띠동갑인 데다 성격까지 비슷하다. 내가 보기엔, 혼자 무전여행 떠난 걸 보면 대범한 편인데 자신은 무척 소심하단다.

‘나’는 있는데 ‘자신’은 없는 모순

다음 날 아침 아이가 일찍 일어났다. 나와 함께 밭에서 김매면서 이야기를 더 나눴다.

“왜 자신을 잃어버린 거 같아?”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정호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모님이 아이 생각을 존중해준단다. 친구 관계도 무난한 것 같다. 그런데도 자신을 잃어버렸다니…. 게다가 그 원인을 모른단다. 그 순간 나의 지난 과거가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정호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 한동안 자신을 잃고 절망했던 적이 있으니까.

“좋아하는 과목은 있니?”

“예전에는 과학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가짜인 거 같아요. 제가 정말 좋아했다기보다 그쪽으로 나가면 왠지 근사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정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참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릇 배움과 성장이란 즐겁고 기쁜 것이거늘, 배울수록 자신을 잃어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남 따라 가고 남에게 맞추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나’는 있는데 ‘자신’은 없는 모순이 일상이 됐다고 할까. 자신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 꼬이고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게 얼마나 어렵나.

자신감은 우리 마음속의 ‘보물’

사람에 따라 자신을 찾는 길은 많으리라. 책 한 권이 길잡이가 될 수 있고, 세상 사람을 두루 만나 자기만의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몸 움직여 땀 흘리는 일이나 운동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실타래가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럴 때 땀을 흘리면 피가 온몸 구석구석을 돌면서 몸의 독소는 빠져나가고 머리는 맑아진다.

혼자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느낌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지금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의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는 걸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배고프고 졸린, 이런 작은 느낌부터 시작하면 된다.

밭에서 돌아오며 정호한테 물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있느냐고. 정호는 라면은 끓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정호에게 음식 만들기를 적극 권했고, 아이는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요리를 했으며, 아주 맛나게 먹었다. 그 과정에서 정호는 내면에 잠자던 기쁨과 자존감을 맛보았다.

글쓰기도 강조했다.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데 글쓰기가 아주 큰 힘을 발휘한다. 정호에게 일기 쓰기를 기본으로 해서 우선 몇 가지 글쓰기를 시켰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그 이유는?’ ‘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가?’ ‘지금 내가 불안해하는 것들은?’ 이런 주제로 틈틈이 기록해두면 자기가 어떻게 나아지는지를 또렷이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기록은 자신을 찾고자 하는 또 다른 청소년에게 힘이 되기도 하리라. 요즘은 정호처럼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으려는 청소년이 얼마나 많나.

사람 만나는 것도 아무나 만나서는 치유가 어렵다. 내가 정호에게 권유한 건 누군가를 만나서 좋았다면 그 사람이 추천하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라는 것이다. 정호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는 세 사람을 추천했다. 그러자 이제부터 도보여행 대신 ‘사람여행’을 하겠다 했다.

생명은 다 자기 소중한 곳으로 몸을 돌린다. 자기 단점에 괴로워할 시간에 장점을 더 살리면 어떨까. 자신감은 늘 자신과 함께 있는 것. 이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자신에게 소중한 걸 손수 할수록 자신감은 커진다. 자신감이야말로 우리네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할 보물이 아닌가.



주간동아 2009.07.28 696호 (p78~79)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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