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0

2009.04.07

‘입학사정관제’가 가야 할 길은?

‘단독으로 신입생 선발’ 잘못된 시선 …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 급선무

  •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ducu@korea.ac.kr

    입력2009-04-03 18: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입학사정관제’가 가야 할 길은?
    대학자율화의 일환으로, 그리고 중등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선진화된 대학 입학시험(이하 입시)을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학생들의 선호도와 경쟁의식이 높아 많은 대학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입학사정관에 의한 선발 비중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과학고 등 고등학교 입시에도 부분적으로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될 전망이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의 역할이 확대·강화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이 입학사정관제를 입학사정관 1명이 단독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제도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시행되면 입학사정관이 주관성을 갖고 단독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부 단계에서 최종 결정에 필요한 자료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작성하게 된다. 즉 다단계의 입학 전형 과정에 2~5명의 입학사정관이 참여해 학생이 제출한 자료를 돌려가며 읽고 협의 조정한 뒤, 최종 판단을 위한 기초 자료를 마련한다.

    점수 위주 교육 폐해 극복 방법

    따라서 부정이 개입할 여지는 적으며 부풀려 제출된 정보도 이런 과정을 통해 걸러진다. 입학사정이 최소 3단계를 거친다고 할 때 입학사정관들은 초기 1~2단계에 복수로 참여하며, 최종 판단은 전문 교수들로 구성된 입학전형위원회의 몫이다.



    경쟁률이 높은 대학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적격자 선발을 해야 할지가 오래된 숙제다. 겨우 1~2점차로 당락을 결정해야 하는 관례에서 벗어나 대학과 모집단위별(계열, 학부) 특성을 반영한 바람직한 인재상을 세우고 여기에 맞는 지원자를 찾자는 것이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취지다. 즉 지원자의 각종 성적에 드러난 지적 능력뿐 아니라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도덕적 추론과 행동, 사태 적응력과 문제해결 능력, 건강과 예술활동 참여, 난관 극복,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협동 능력 및 봉사활동 실적 등 지원자 한 사람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통해 당락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및 확대는 점수와 종합적 잠재력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 발전에 기여할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정성, 객관성, 사교육비 증가 등을 들어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단 1점 차라도 객관적 점수가 당락을 갈라야 한다는 통념이 지배적인 가운데 입학사정관의 판단은 신뢰하기 어려우며, 그들의 눈에 띄는 특이한 실적을 만들어내려면 사교육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일보한 제도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일각의 우려를 씻어내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는 다음과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첫째, 점수 위주의 입시가 갖는 교육적 폐해와 오류를 극복하려는 입학사정관제를 학부모, 학생, 교원에게 적극 홍보해야 한다. 지원자의 대학 학습능력 정도를 오차범위에 불과한 점수나 입학사정관 단독 결정이 아닌, 다수에 의한 다단계 평가를 거쳐 판단하게 된다는 점을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 가끔 미국 대학에서는 SAT 만점자가 떨어지고 그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이 합격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우리도 점수가 몇 점 더 높다고 품성과 능력도 더 나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 점에서 대학은 시험성적뿐 아니라 학생 개인의 품성, 능력, 주변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도 대학은 점수 위주의 교육문화를 감안해 입학사정관이 참여하고 결정하는 질적 비중을 점진적으로 넓혀가야 할 것이다.

    ‘입학사정관제’가 가야 할 길은?

    입학사정관제는 지적 능력뿐 아니라 봉사활동,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예술활동 등 종합적 판단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등학생들이 ‘영락 애니아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둘째, 대학은 입학사정관제를 전문적으로 공정하게 운영해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평준화 및 비평준화 속의 일반고, 특목고, 전문고 등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고교등급제가 시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식할 필요가 있다. 지원자 개인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종합평가에서 야기될 수 있는 고교등급제 시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수한 교사, 학생, 교육과정을 지닌 고교들은 왜 대학이 이런 점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만큼 전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학생을 선발 모집해야 하는 대학들의 고민은 적지 않다. 입시는 지원자 개인에 대한 능력과 품성을 판단하는 것이지, 그의 출신교에 의한 ‘연좌제’ 적용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은 입학사정관들의 자율적이고 전문적이며 책무성 높은 업무수행을 위해 안정적인 정규직 지위를 확대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의 조기 정착을 위해 정부에서도 정규직화 확대를 조건으로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학은 교내외 연수, 세미나, 워크숍, 연습, 연구 참여 등을 통해 입학사정관들이 대학의 설립 이념과 목적, 그에 맞는 인재상 설정, 고교와 대학 교육과정의 이해, 학생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판단 등에 대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학습 기회를 많이 마련해야 한다.

    ‘할 만한’ 대학 입시 만들기

    셋째, 대학은 입학사정관 전형을 별도로 만드는 일을 삼가야 한다.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학생, 학부모, 고교가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입시제도에 혼란을 더해서는 안 된다. 모든 모집단위별 전형에는 적격자 선발에 필요한 질적·종합적 판단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동안은 이런 부분을 무시한 채 객관적 점수로만 처리해왔다. 입학사정관은 별도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 것이 아니라, 기존 각 전형의 질적·종합적 판단에 참여해야 점수 위주의 전형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전문적 판단이 허용돼야 입학사정관제나 대학 입시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넷째, 대학은 입학사정관들의 전문성 향상뿐 아니라, 입학사정 과정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업무지침과 윤리규정을 분명히 하고 이를 강조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의 장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교원, 학생, 학부모의 신뢰를 쌓는 데 달려 있다. 미국 입학사정관협회(NACAC)에서는 입학사정관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행동지침과 윤리규정으로 상세히 제시하고 있으니 이를 참고할 만하다. 대학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지원자의 이의 제기와 그 문제 해결 절차를 주도면밀하게 수립해둬야 할 것이다.

    끝으로, 대학은 입학사정관을 활용해 ‘할 만한 입시’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입시 준비 교육을 하지 말라’는 훈계를 들을 정도로 현재 입시는 교육적이지 못하다. 국·영·수 중심의 과잉경쟁, 교차 지원, 과잉학습과 과소학습 및 사교육 유발, 점수 의존 등이 고교와 대학 교육의 정상화를 해치고 있다. 모집단위별로 조금씩 다른 선수학습과 활동 경험을 타당한 것으로 결정해야 한다. 모집단위가 비슷한 경우, 비슷한 선수학습과 활동 경험을 요구해야 고교와 학생이 대처해나갈 수 있다. 즉 그 모집단위에 진학하려면 이 교과공부는 꼭 해야 하고, 그 일은 할 줄 알아야 하며, 적성과 진로를 확인하는 데 그 체험은 필수적이니 반드시 익혀야 한다고 권할 수 있어야 한다.

    200년 역사의 프랑스 대학 입시 바칼로레아는 계열별로 공부할 만한 선수학습을 잘 보여준다. 개별 대학의 중구난방 입시안은 혼란을 초래할 뿐이며, 모집단위별로 공통 필수적인 선수학습과 활동 경험을 정해줘야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 그 위에서 개별 대학과 모집단위의 특성이 가미된 입시를 만드는 것이 입학사정관들의 과업이어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