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6

2009.03.10

울지 마, 내가 손잡아줄게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03-06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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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 마, 내가 손잡아줄게
    공지영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52쪽/ 1만2000원

    가슴에 상처를 안겨주는 것은 절친한 이웃이나 가족처럼 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출간되는 책들에 등장하는 가족은 더 이상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족일 뿐이다.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고독에 빠져 있는 가족인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러온 불황, 실업, 폐업, 부도, 파산, 자살 등이 대중의 가슴을 짓누른다. 울다 지친 대중은 힘겨운 자들의 내면을 담은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거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출판시장의 ‘자기 치유’ 열풍이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는 까닭이다.

    ‘묵언마을의 차 한 잔’(지개야 지음, 텐에이엠)은 한때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묵언마을이라는 절에 들러 주지인 지개야 스님에게 자신이 살아온 생을 털어놓은 뒤,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은 사례를 모았다. 지개야 스님이 알려주는 지혜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차 한 잔 내놓으며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수준에 불과하다. 아무리 힘겨워도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집행관 일기’(기원섭 지음, 오푸스)는 우리가 집달리라 부르는 사람의 체험담이다. 무너져가는 경제의 밑바닥에서 재산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이 서로를 원수처럼 생각하게 되는 시발점은 늘 한마디 말이거나 많지 않은 돈이다. 책은 현실이 어려울수록 주위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공지영의 새 에세이집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큰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구나 가족을 대하면서 일상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저자는 ‘아주 가벼운 깃털’ 같은 이야기만 하자고 의기양양 시작했는데, 촛불시위나 대운하 등 무거운 문제가 신문을 도배하는 바람에 무거운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참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이 책은 한 일간신문에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이다. 나는 연재 처음 몇 꼭지는 읽었지만 곧 읽기를 그만두었다. 이렇게 힘겨운 시기에 사소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이 너무 한가하지 않은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는 ‘아,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도 묶어놓으니 따뜻한 이야기가 되는구나’ 하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대체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한 것인가.

    작가는 지쳐서 울고 싶을 때 지리산에 사는 시인만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말한다. 책에 나오는 또 다른 지리산 시인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자신의 관값을 미리 마련해뒀다.

    울지 마, 내가 손잡아줄게
    한데 그 돈을 사기당해 이를 안타까워한 지인들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거부한다. 절대 요양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명령(?)을 어기고, 말썽만 부리다 학교를 그만둔 옛 제자가 태어나 처음 하는 선행을 보러 길을 나선 시인과 산골을 오르내리며 눈에 띄는 약초, 때로는 산삼으로 추정되는 것까지 캐서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건네는 우체부의 일상사는 세속의 셈법을 한참 넘어섰다.

    괴괴한 외딴집에서 늦가을 풀벌레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도둑이 톱으로 문을 써는 소리로 착각한 신부님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작가는 전문가의 의견을 빌려 우리가 하는 걱정의 80%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나머지 20% 중에서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2%도 안 된다고 한다. 결국 세상사는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사소한 이야기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문명이라고는 몰랐던 인디언 할아버지가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지혜와 같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혜,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던 시대에 누구나 알고 있었던 상식 같은 것이다.

    이처럼 힘겨운 시대를 이겨낼 용기를 안겨주는 것은 한 사람의 격려, 한마디 말, 깃털 같은 사소한 이야기가 주는 소중한 지혜다. 지개야 스님, 기원섭, 공지영 세 사람은 그런 지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던져준다. 어느 시대고 권력자들은 그들만의 ‘이론’을 내세우며 대중을 지배하려 든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고통 분담’을 강조하던 독재권력 시대보다 오히려 퇴보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 이렇게 간단한 상식이 쉽게 무시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세 권의 책은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맞춤한 읽을거리다. 경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한마디 말이나 사소한 일을 중시한다면 방방곡곡에 온기가 넘칠 것이다. 세 권의 책을 연이어 읽으며 무엇보다 내 마음에도 근육이 하나 생긴 것 같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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