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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농촌 르네상스 05

일석삼조 신바람 나는 ‘로컬푸드’

지역소비 촉진, 친환경, 일자리 창출 … 판로와 유통망 확보가 관건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일석삼조 신바람 나는 ‘로컬푸드’

일석삼조 신바람 나는 ‘로컬푸드’

콩비지 패티가 들어 있는 ㈜생명살림 ‘올리’의 버거.

식품안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로컬푸드는 말 그대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를 지역 소비자가 소비하는 것. 자신이 먹는 식품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됐는지를 알 수 있고, 복잡한 유통 마진을 줄여 값이 싸며, 근거리 운송이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특정 지역의 사회적 건강, 환경, 경제 향상을 목적으로 지속가능한 생산, 가공, 분배, 소비를 촉진하고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노력’ 정도로 정의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로컬푸드 운동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농수산물이 1차산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생산하고 일정 부분을 소비하며 나머지는 가공처리해 2차, 3차산업에서도 부가가치를 높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로컬푸드의 개념과 일치한다. 식품산업 발전에 대한 이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는 대단하다. 농림수산부가 농림수산식품부로 이름을 바꿔 단 것도 그 때문이다. 농식품부 권재한 식품산업정책팀장은 “로컬푸드의 개념과 사례를 분석해 지역 농민, 지방자치단체, 지역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국내 로컬푸드 운동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2월17~19일 3개 지역의 로컬푸드 현장을 찾아 현실을 파악했다. 그들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한 걸음 앞서(?) 실행하고 있었다.

주부 15명이 만드는 ‘콩비지 버거’

일석삼조 신바람 나는 ‘로컬푸드’

식품박람회에서 팔당올가닉푸드가 유기농 재료로 만든 빵과 과자를 판매하고 있다.

“오늘 2호점 오픈한다고 하객들과 먹을 파전을 부치고 있어요. 드실래요?”



2월19일 오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청주YWCA 회관 지하 1층은 버거 패티(patty)와 파전 부치는 냄새, 그리고 사람 사는 냄새가 고소했다. 인심 후한 아주머니들이 내준 파전 한 접시를 후다닥 먹어치우고는 1층 ‘올리 버거’ 매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2007년 9월 청주YWCA에서 일하던 ‘㈜생명살림 올리’ 이혜정 대표가 직원 5명과 함께 문을 연 ‘콩비지 버거’ 가게.

“단백질과 섬유소가 풍부한 콩비지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곳(봉명동) 주민들 생활수준에 맞고 건강에도 좋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찾은 ‘작품’이죠.”

이 대표는 가게를 내면서 ‘올(All)리(利)’라는, 영어와 한자를 섞은 브랜드도 론칭했다. ‘모든 생명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깊은 뜻’이 담긴 상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신선한 식자재 사용을 이 사업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콩비지는 지역 장애인협회에서 매일 제공받고 양배추와 상추, 양파 등은 청주 인근 농장과 직접 계약해 공급받는다고. “어렵지만 원칙을 정했죠. 지역 친환경업체의 농산물을 기본으로 하고, 구하기 어려우면 저농약 농산물이라도 구매하자고요. 이것도 안 되면 생협(농협 등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구입하는 걸로요. 누가 재배한 농산물인지 알 수 있어 믿을 수 있고, 또 신선하잖아요.” 올리는 로컬푸드 운동을 지향하지만 빵은 전남 순천에서 사온다. 청주 지역에서 우리밀 버거 빵을 생산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버거 맛의 핵심은 역시 패티. 퍽퍽한 콩비지를, 씹는 맛이 나면서도 건강에 좋은 패티로 ‘변신’시키기까지는 수십 번의 실험을 거쳐야 했다. 처음엔 맛을 내기 어려워 돼지고기를 갈아 넣었지만 실험 끝에 땅콩과 서리태, 유정란 등으로 고기 맛을 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올리 버거(1900원) 외에도 스테이크 버거(2800원), 해물라이스 버거(2800원) 등 다양한 메뉴를 개발했다.

올리 버거가 알려지면서 청주지역 어린이집과 학교, 각종 행사장, 가족단위 손님이 늘었고 지난해 10월 한 달에만 1만개 넘게 팔았다. 직원도 15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4월에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아 최대 2년간 직원들의 최저임금을 지원받는 길도 열렸다. 제법 성공했지만 이 대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친환경 농산물만 쓰다 보니 원자재 가격이 매출의 65% 정도를 차지합니다. 다른 가게는 30% 정도죠. 패티 제조를 기계화하면 대량생산도 가능하지만, 사회 공익기업으로서 ‘공익적 가치(일자리 창출)와 경영’이라는 두 줄 타기를 잘해야 하거든요.”

수익을 직원 퇴직금과 수당으로 적립하고 나면 ‘내 돈 없이 시작하는 어려움’이 팍팍 느껴진단다. 그래도 그는 이날 2호점까지 열었으니 내친김에 더 달려볼 생각이란다.

“주부들이 다국적기업의 대표 음식인 버거를 ‘재디자인’해 지역 먹을거리로 활용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맛있고 신선하니까요.”

슬로푸드로 ‘달팽이 삶’ 추구하는 팔당올가닉푸드

일석삼조 신바람 나는 ‘로컬푸드’

팔당올가닉푸드 직원들이 빵을 만들고 있다(위). 슬로푸드문화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유기농 식자재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아래).

“우리나라는 길어야 이틀이면 모든 농수산물을 집에서 받을 수 있어요. 전국 농산물이 로컬푸드인 셈이죠. 로컬푸드와 슬로푸드, 푸드마일리지 운동은 모두 같은 말이에요.”

팔당올가닉푸드㈜ 김병수(50) 대표는 우리나라처럼 좁은 지역에서의 로컬푸드 운동은 한반도 전체로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 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과 달리 자연의 속도에 의해 생산된 슬로푸드가 진정한 로컬푸드라고 말한다.

서울 도심에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팔당올가닉푸드(경기 남양주시 조안면)는 지역 농민과 소비자들이 출자해 10억원으로 시작한 유기농 음식물 전문 기업. 농민 82명과 소비자 28명이 돈을 대 자본금 10억원과 자산 43억원(정부지원금 17억원)으로 2005년 설립했다.

주요 생산품목은 우리밀 제과·제빵 40여 종과 유기농산물 반찬 20여 종. 제과·제빵은 유기농 밀에 유정란과 버터를, 반찬은 제철 농산물과 해산물로 우려낸 육수를 사용한다. 당연히 쇼트닝이나 화학첨가물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유기농산물은 남양주와 인근 하남시 등에서도 들여온다.

“슬로푸드는 달팽이가 상징이에요. 대개 달팽이를 보면 느리다고 생각하죠? 그건 사람이 자기 속도로 봤을 때 그렇죠. 달팽이는 자기 속도로 가고 있거든요. 생각해보세요. 송아지를 400kg짜리 소로 키우려면 보통 3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각종 성장제를 주면 1년 반이면 됩니다. 로컬푸드라고 해도 이런 속성재배(사육) 농축산물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슬로푸드가 진정한 로컬푸드인 거죠.”

1981년 어머니가 남양주 보건소에 일하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는 김 대표는 3년여 동안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농사를 시작했다. “열심히 일했는데 못사는 건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래서 ‘유기농’ 하자고 했죠. 이곳이 팔당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이미지’도 괜찮았고요.”

반신반의하던 지역민도 수익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자 하나둘 유기농을 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농가당 4000여 만원의 순수익이 났고, 도시에서 60여 가구가 귀농할 만큼 이곳은 ‘유기농 농촌’으로 알려졌다. 남양주시청도 부처명을 ‘농정과’에서 ‘유기농업과’로 바꿨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인식. 이는 판로와 직결된 문제였다. 인터넷과 생협 매장을 통해 판매하지만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했다. “2007년 신축 건물을 완공하면서 건물 2층을 아예 슬로푸드 체험관(문화원)으로 만들었어요. 인식이 바뀌어야 슬로푸드 판로도 뚫린다는 생각에서죠.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지역에 슬로푸드 전문음식점 ‘달팽이밥상’ 두 곳도 문을 열었어요.”

도시민에게 유기농산물 밥상을 ‘직판’한다는 전략. 비빔밥 한 그릇에 1만원으로 다소 비싸지만 슬로푸드 마니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옆에 있던 슬로푸드 문화원 박성자 사무총장이 한마디 거든다.

“포도가 칠레에서 우리나라에 오려면 4개월 반이 걸립니다. 양파는 중국에서 들어오기까지 20~40일이 걸리죠. 이 기간을 거치려면 방부제로 ‘요술’을 부려야 합니다. 슬로푸드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그는 △소비자 전문 교육기관의 활약 → △판매 증가 → △생산농가 고소득 보전 → △가공유통업체의 안정적 정착이라는 순환고리가 계속돼야 로컬푸드, 슬로푸드 운동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보너스는 못 주지만 그래도 20명 직원의 일자리가 생겼잖아요. 슬로푸드 운동을 하다 보면 생활도 슬로 라이프로 바뀌는가 봐요. 다 좋게 생각하고 천천히 가렵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로컬푸드로 주민 자활 돕는 전북 완주군

일석삼조 신바람 나는 ‘로컬푸드’

전북 완주군 로컬푸드사업단 직원이 병으로 참기름을 받고 있다.

전북 완주군은 지방자치단체로는 드물게 지난해 11월 완주지역자활센터 내에 로컬푸드사업단을 출범시켰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주민을 자활사업에 참여시키고 지역 농산물도 판매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발상이다. 인건비와 사업비 등 8000여 만원의 예산은 국비(80%), 도비(10%), 군비(10%)로 마련했다.

“완주군의 콩과 깨 재배면적이 800ha가 넘어요. 대개 노인들이 조금씩 농사를 짓죠. 그래서 연중 판매가 가능한 참기름과 들기름, 메주, 표고버섯 등을 1차 로컬푸드 사업 품목으로 정했죠.”

자활센터 최종식 팀장의 말이다. 민간 업자보다 1000원 정도 웃돈을 얹어 수매하는데, 수매할 때 마을 이장이 참석하기 때문에 중국산이 섞일 가능성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 이장이 어느 집에서 깨 농사를 짓는지 알기 때문이다. “6명이 생산, 판촉, 마케팅을 담당합니다. 지난해에는 150가구에서 들깨 2000kg과 참깨 600kg을 수매했죠.”

가격은 참기름 1병(350ml)에 2만원, 2병에 3만7000원, 들기름 1병에 7000원, 2병에 1만3000원. 시중의 수입산 참기름(1만~1만5000원)보다는 비싸지만 슈퍼마켓에서 파는 국산 참기름보다 싸다. 문제는 판로였다.

“완주 모악산 등산로에서 주말마다 팔았어요. 자활센터 관계자들이 입소문을 냈고, 지역 언론에 소개도 되면서 서서히 판매량이 늘더라고요. 지금은 쇼핑몰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어요.”

군으로서는 일종의 ‘아웃소싱’ 개념이지만,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직거래 장터를 여는 등 홍보와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 팀장은 “걸음마 단계지만 앞으론 된장, 고추장 등으로 품목을 늘려갈 생각”이라면서 “생산자 이력제로 주민이 믿고 찾는 먹을거리를 만들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세계의 로컬푸드 운동

텃밭서 생산‘100마일 다이어트 운동’활성화


로컬푸드 운동가들은 식료품이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동거리를 ‘푸드마일(Food Mileage)’이라고 표현한다. 푸드마일이 긴 식료품은 수송 과정에서 다량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마련. 그들은 식료품의 수송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를 부채질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도 나쁜 영향을 준다고 지적한다. 로컬푸드 운동이 푸드마일을 줄이는 대안으로 인식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일석삼조 신바람 나는 ‘로컬푸드’
비영리 생협 ‘한살림’ 자료에 따르면, 미국산 수입밀 1kg을 소비하면 우리밀 소비보다 15배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미국산 수입밀을 소비하는 사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해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수입산 농수축산물의 경우 장거리, 장시간 운송에 따라 신선도도 떨어진다. 또한 지역 농수산물을 구입하면 이를 생산하는 농어업인뿐만 아니라, 생산에 관계된 기자재 산업, 그리고 이를 가공·유통하는 산업 종사자들의 고용 안정에도 크게 기여한다. 시쳇말로 ‘꿩 먹고 알 먹고’라고 할 수 있다.

로컬푸드 운동 중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100마일(약 161km)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물만 사용한다는 뜻이다. 캐나다 밴쿠버의 한 부부가 시작했는데, 미국 뉴욕에서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면서 활성화됐다. 참가자들은 9월(뉴욕 주에서 가장 농산물 수확량이 많은 달) 한 달간 뉴욕 주에서 생산된 농산물만 먹는 운동에 참여한다.

영국 런던에는 시장 직속으로 ‘런던 푸드’라는 먹을거리 위원회가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을 돕고 있다. 이 위원회는 주말마다 직거래 농민장터를 열거나 병원 급식에 유기농 식재료를 공급한다.

하버드대 등 미국 유명 대학들은 대부분 인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급식재료로 사용한다. ‘농장에서 대학으로(Farm to Colleg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이 운동에 동참한 대학만 400여 개. 이 프로그램으로 학교당 평균 16만 달러어치의 지역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는 밴쿠버(950여 곳), 몬트리올(8000여 곳), 토론토(3000여 곳) 등에서 공터를 활용한 텃밭 조성을 장려하고 있으며, 저렴한 수수료(연 20달러)를 받고 텃밭을 빌려주기도 한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비정부기구(NGO)를 중심으로 ‘지역생산-지역소비’라는 뜻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펼쳐졌다. 2005년부터는 정부가 자연산 먹을거리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내 일부 지자체도 지산지소 운동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9.03.10 676호 (p30~33)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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