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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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아류는 영원한 아류

  • 이호숙 아트마켓 애널리스트

    입력2008-11-03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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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아류는 영원한 아류

    박생광(1904~1985), 시집가는 날, 종이에 수묵채색, 47×48.5cm

    특정 작가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어 높은 가격이 형성되면, 얼마 후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들도 왕성하게 거래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컬렉터들은 마음에 흡족하지 않더라도 유명하고 비싼 원작과 유사한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단순히 대리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소장 후 ‘투자성과’를 비교한다면 ‘원조’가 되는 작품과 ‘아류’의 가치 차이는 세월이 지날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먼 훗날에는 현재의 그 ‘아류’ 작가들을 찾기 힘들 가능성도 있다.

    당대에 파격적이던 작가라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지극히 클래식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대담함이 느껴져 시대를 넘나들게 된다. 예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훨씬 앞서가야 한다. 이 때문에 지금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작품보다는 당장은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심오한 철학을 개성적으로 담고 있는, 조금은 어려워 보이는 작품을 선택하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77세에 작품 스타일을 새롭게 바꾼 작가 박생광은 1981년 변화된 스타일의 작품을 처음 선보였을 때 거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미술사에 박생광이라는 이름이 오른 것은 이러한 과감한 변신 때문이다. ‘미친 사람’이라는 평가와 ‘신기(神技)에 가깝다’는 찬사를 동시에 받은 그의 작품은 당시 작가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비슷한 아류도 숱하게 나왔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현재, 그 많던 아류 작가들은 찾아볼 수 없고 ‘원조’인 박생광만 남아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박생광 작품이 달라진 데는 그 과정에서 작가가 느낀 고민과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즉 설명할 수 있는 변화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스타일을 따라한 아류작들은 왜 그렇게 그렸는지에 대한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류는 결코 원조를 능가할 수 없다.

    ‘원조’가 되는 작품은 당연히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 ‘아류’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렴하고 기술적으로는 더 좋아 보이기도 한다. 원조가 있다면 주변에 늘 아류도 존재해왔다. 미술사에서는 원조에 대한 강한 긍정 혹은 비난의 평가와 그 밖에 누구누구가 있었다고 기술하면 되지만, 마켓에서는 원조와 더불어 아류작까지 가치평가를 해야만 한다. 가치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만이 가진 고유성이 있어야 한다.



    당대에 함께 활동했더라도 자기만의 독창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남의 스타일을 따라 작품을 제작해온 작가의 작품은 세월이 지날수록 마켓에서 거래되기 어렵다. 비슷해 보이지만 가치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당장 눈앞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그 작품에서 독창성과 창조성을 찾아낼 수 없다면 혹시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작품인지, 이와 유사한 작품을 하는 다른 작가가 없는지를 찾아보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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