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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독에 빠진 엽기 신입생 환영회

‘BBC 비디오 보도’ 새 학기 영국 대학가 발칵 … 나치 행각 연상 상황과 집단 괴롭힘 충격

  • 코벤트리 = 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술독에 빠진 엽기 신입생 환영회

술독에 빠진 엽기 신입생 환영회

맥주 파티를 즐기고 있는 런던의 젊은이들.

‘얼굴에 비닐쇼핑백을 뒤집어쓴 10여 명의 대학생이 줄지어 교내를 행진한다. 앞사람 허리춤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모습이 영락없는 전쟁포로의 그것이다. 이들을 옆에서 호송하는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복장. 이윽고 담벼락 밑에 일렬로 선 학생들이 나치 병사가 보는 앞에서 뭔가를 연신 토해낸다.’

최근 영국 공영방송 BBC가 입수해 보도한 몰래카메라의 한 대목이다. 영국 남서부의 글로스터셔 대학에서 벌어진 신입생 환영회 장면이 담긴 이 필름이 공개되자 영국 대학가는 발칵 뒤집혔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행각을 연상시키는 상황 설정은 물론이거니와,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고 이를 견디다 못해 구토하는 후배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장면이 충격을 몰고 온 것이다.

대학 당국은 즉각 문제의 신입생 환영회를 연 동아리 조사와 주동 학생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영국 대학생자치조직연합체인 전국학생연합(NUS)도 과도한 음주와 폭력으로 얼룩진 일부 스포츠 동아리의 신입생 환영회를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 비디오가 공개되자 대학들, 그중에서도 일부 스포츠 동아리들의 입회행사에서 벌어졌던 비슷비슷한 증언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모두 신입회원 환영을 빙자해 벌어졌던 후배들에 대한 집단 괴롭힘 사례들이다.

글로스터셔 대학 여자하키팀에 가입했던 한 학생이 BBC에 증언한 환영회 장면은 충격적이다. 이 학생은 ‘선배들이 브래지어 속에 생선을 집어넣었다가 꺼내게 한 뒤 이를 먹도록 강요했다’고 밝혔다. 또 이 학생은 ‘소변으로 가득 찬 양동이가 그득한 지하 화장실로 끌려간 여학생들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선배들이 신입 회원들에게 먹도록 강요한 이른바 ‘양동이 주스’나 고양이 사료도 엽기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양동이에 맥주, 와인은 물론 독한 증류주와 각종 알코올 음료를 섞어놓고 마시게 하는가 하면, 아침식사용 시리얼에 고양이 사료를 섞고 먹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신입생들은 수프 제조용 조미료 덩어리인 ‘옥소(OXO)’를 입에 넣은 채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대학가 주변을 행진해야 했다.

가을에 새 학기를 시작하는 영국 대학가는 10월 한 달 내내 떠들썩하고 활기찬 신입생 환영회로 뒤덮인다. 입시에서 해방된 신입생들이 화려한 파티 복장이나 엽기적인 코스튬으로 교내를 활보하는가 하면, 시내 유흥가에서는 가슴을 반쯤 드러낸 여학생들이 술에 취해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여기까지는 어느 나라 대학생들이나 마찬가지인 20대의 치기 정도로 봐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환영회에서 빠질 수 없는 술자리가 영국 젊은이들의 술문화와 어우러져 결국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06년에는 엑스터 대학에서 18세 신입생이 골프 동아리의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지 몇 시간 만에 시내 슬럼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또 이에 앞서 2003년에는 스탯포드셔 대학에서 신입생 환영회 도중 한 학생이 술을 마신 뒤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기도 했다.

선후배 유대 강화 통과의례 고정관념

술독에 빠진 엽기 신입생 환영회

엽기적인 신입생 환영회 몰래카메라를 게재한 BBC 홈페이지.

영국 대학생들의 과도한 음주 행각은 사실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퍼브(pub)로 상징되듯 동네 곳곳에 퍼져 있는 음주문화 탓에 영국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음주 환경에 노출되고 있다.

일부 청소년들의 무절제한 음주와 음주 관련 사고는 영국 사회에 ‘욥 컬처 (Yob Culture)’라는 풍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청소년을 뜻하는 ‘보이(boy)’라는 단어의 철자를 뒤집어 비뚤어진 청소년 문화를 가리키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과도한 음주문화는 이제 국가적 문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BC가 문제의 비디오를 공개하자 일부 대학 당국은 학생들의 비뚤어진 신입생 환영회를 강하게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대학가에서 오랜 전통이 돼버린 엽기 신입생 환영회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출 것 같지는 않다. 당장 NUS의 반대 방침에도 일부 대학은 행사 자체를 금지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존치론’에 찬성하는 대학들은 기존의 신입생 환영회를 ‘결연 행사’ 등으로 이름을 바꿔 계속 살려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미 전통이 된 신입생 환영회를 하루아침에 금지할 경우 이들 행사가 은밀하게 치러지면서 더 큰 사고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대신 이들 학생회는 모든 스포츠 동아리가 학생회에 행사 계획을 사전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탈법행위를 감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적지 않은 대학들이 존치론을 지지하는 것은 아직도 많은 대학생들이 신입생 환영회가 선후배 간 팀워크와 유대 강화에 없어서는 안 될 통과의례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 동아리들이 신입생 환영회를 열기 전 참가자들에게서 비밀 서약을 받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행사를 통해 유대감을 공고히 한다는 명분으로 신입생들은 환영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을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다 보니 실제 신입생 환영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번 BBC 보도처럼 몰래카메라에 의해 폭로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로 알려지는 일이 매우 드물다. 영국 대학가가 BBC 비디오 파문으로 술렁이면서도 엽기적 신입생 환영회의 관행이 사라질 것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간동아 2008.10.28 658호 (p70~71)

코벤트리 = 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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