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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불안 사회 25시

불안 사회 25시

신뢰 흔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증폭 … 욕망의 브레이크는 있을까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백경선 르포라이터 sudaqueen@hanmail.net

불안 사회 25시

불안(不安·anxiety)은 특정 대상이 없는 두려움의 감정이다. 공포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백과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①두려움엔 두려움을 일으키는 위험물이 목전에 있지만, 불안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불안은 상상된 위험물에 대한 반응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안의 대상은 무(無)다.

②두려울 때는 위험물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위험물을 극복하려는 충동을 느끼지만, 불안할 때는 무력감밖에 없다.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더욱 유명해지고, 더욱 중요해지고, 더욱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은 ‘상상된 위험물’을 과대평가하면서 결핍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한국 사회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청와대는 ‘국민의 불안’을 다독인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기획했다.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경제는 신뢰가 거름이다. 그래서 불안은 더욱 커진다. “지금 우리는 초불안사회, 초위험사회를 산다.”(한상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AM 4:30 김준혁(25) 씨가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차를 닦는다. 학비를 벌고자 날마다 새벽별을 본다. 일주일에 세 번씩 주민들의 차를 닦아 대당 5만원을 받는다. 어머니에게도 월수입을 말하지 않았단다.

“부모님께 손 내밀 형편이 못 돼요. 아르바이트라기보다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면서 돈을 벌고 있죠. 노력만큼 대가를 얻으리라 믿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불안하다”고 말했다.

“미래가 몹시 불안하죠. 취직 걱정도 크고요. 물론 성공하고 싶어요. 부자로도 살고 싶고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엔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 대학 졸업장을 쥐면 뭐 하나 싶기도 하고요.”

소설가이자 사유가인 알랭 드 보통은 ‘지위로 인한 불안’ ‘지위에 대한 갈망’이 지나치면 “사람을 잡는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들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자신을 존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높은 지위를 얻기가 어려우며 그것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리석거나 자기 자신을 잘 몰라 실패할 수 있고 거시경제나 다른 사람들의 적의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교육열’로도 나타나는 ‘지위욕’은 불안의 기저에서 꿈틀거린다.

불안 사회 25시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더욱 유명해지고, 더욱 중요해지고, 더욱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은 ‘상상된 위험물’을 과대평가하면서 결핍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판교의 공사현장 모습.

AM 6:30 “아주 이른 시간은 아니에요. 좋은 자리는 벌써 다 찼어요.”

대학 3학년 김유미(21) 씨는 새벽 6시면 학교에 도착한다. 고3 때도 없던 일이다. 중간고사는 한 주 뒤지만 도서관 좌석 경쟁은 벌써부터 치열하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대학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입학 전부터 취업난의 심각성을 익히 알고 있던 이들은 1, 2학년 때부터 학점 관리에 철저하다. “A학점이 아닐 바에야 F학점을 받고 재수강하겠다”고 요청하는 학생들도 많다. 졸업 전 취업이 (졸업 후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학점을 다 채워도 일부러 전공필수 과목을 과락해 9, 10학기까지 다니면서 졸업을 늦추는 이들도 있다. 김씨는 “현재 800점대 후반인 토익 점수를 되도록 빨리 900점대 중반으로 끌어올리고 기업체 인턴경험을 위해 다음 학기는 휴학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대학 밖으로 나오면 20대의 불안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노량진의 아침은 다른 곳보다 먼저 시작한다. 새벽 6시부터 패스트푸드점에 모여 스터디를 하는 이들이 눈에 띄고 오전 7, 8시에 시작하는 학원 강의시간표에 따라 거리가 북적였다가 한산해지길 반복한다. 예전에는 재수학원이 강세였다면 4~5년 전부터는 7·9급 공무원, 경찰, 소방행정직, 교원 임용 등에 대비한 학원들이 강세다.

지난해 12월부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모(23) 씨는 올해 4월 노량진으로 상경했다. 조기졸업을 할 만큼 학점이 좋았고 이곳저곳 해외 봉사활동을 다녔을 정도로 대학시절을 알차게 보냈지만 지방대라는 점에 한계를 느껴 공무원시험으로 진로를 틀었다고 한다. 물론 공무원직의 안정성도 매력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노량진 학원가) 사람들 정말 열심히 해요. 강의실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 5시 학원 문이 열리기 전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도 많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80분 남짓한 시간에 100문제 풀고 나오면 허탈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공무원 채용 정원이 줄고 있는 근래의 상황은 박씨를 불안하게 만든다. “공무원이 돼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리 큰 욕심 같지 않은데도 쉽지가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스펙(spec)은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에서 유래한 콩글리시다. 요즘 대학생들은 토익 점수, 해외 연수,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십을 ‘스펙 5종 세트’라고 부른다. 일부 대기업이 봉사경력에 헌혈을 포함하자 ‘군인’을 제치고 ‘대학생’이 헌혈 1위로 등극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좋은 직장을 구해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겠다는 갈망은 불안을 일으킨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과도한 스펙 경쟁으로 인한 손실이 연간 2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불안은 사회가 획일화, 평준화, 균질화되면서 더욱 커진 것 같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중·고교에 다닐 때는 그래도 ‘문예반’ ‘합창반’ ‘등산반’이 있었다. 다락방, 지하실, 논두렁, 개울 등 인간의 기억을 채우는 시공간적 요소가 다채롭고 다양했다. 지금은 다들 새벽 1시까지 학원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살아간다. 초등학교 4학년이 중학교 1학년 수학문제를 푸는 세상이다. 우리처럼 경제적으로 빠르게 부유해지면서도 사회문화의 여러 요소가 저평가된 곳에서는 ‘경제력’ 외엔 사람을 평가할 어떤 기준도 없어지게 된다. 지금 학생들이 기억하는 과거는 앞선 세대보다 더 획일화될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10여 년 뒤 더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는 세대가 될 것이다.”(문화평론가 정윤수)

불안 사회 25시

“여러 요소가 저평가된 곳에는 ‘경제력’ 외엔 사람을 평가할 어떤 기준도 없어지게 된다.” 손님이 끊긴 서울 남대문시장 풍경.

AM 8:30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증권사 애널리스트 룸은 소란스럽다. 활기차다. 인터넷 메신저와 전화통에서 불이 난다. 고객과 정보를 공유하고 시황을 예측하면서 분주히 움직인다. 그런데 금융위기로 주식시장이 회오리치면서 사무실이 침묵에 빠져들었다.

“애널리스트 일을 하면서 지금처럼 불안하던 때가 없어요. 불확실성이 높아지니 죽을 맛이죠. 가장 소란스러워야 할 시간인데도 사무실이 조용해요. 사람들마다 스트레스도 대단하고요. ‘변동’ ‘예측 불가능’만큼 불안한 것이 또 있을까요? 잠을 못 잘 만큼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분위기요?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은 불안한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애널리스트 윤모(31) 씨는 ‘요즘 불안을 껴안고 사는’ 펀드매니저보다 애널리스트가 낫다며 이렇게 말했다. 10월9일에는 모 증권회사 영업점 직원 유모(32) 씨가 이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모텔 객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대 이후의 성공은 돈과 선(善)을 연결하면서 돈과 행복도 잇는다. 시대 혹은 사회마다 각기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다. 어떤 시대엔 사냥을 잘하는 사람, 어떤 시대엔 용사, 어떤 시대엔 성직자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21세기 한국에선 어떨까. 성공, 즉 행복과 관련해 경제적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재산에 손실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상대 없는 위협이다.

PM 12:30 “여름이든 가을이든 아무래도 정오 무렵이 가장 고되죠. 해가 중천에 떠서 햇살이 막 비치는데, 차라도 막히면 그 열기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거든요. 오늘도 무척 덥지만 가을에 에어컨을 켜면 손님이 뭐라 할 것 같고, 창문을 열면 또 싫어하니까….”

택시운전기사 방모(38) 씨는 올해 4월부터 택시를 몰고 있다. 4년간 해오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접은 뒤 “접근성이 좋아 시작한 게” 택시운전이다. 새벽 4시~오후 4시, 오후 4시~새벽 4시까지 격주로 근무하다 보니 체력에 부담이 가지만 섣불리 새로운 일을 찾기가 망설여진다고 한다.

“기본급에 매일 버는 수익을 더하면 한 달에 160만~170만원 돼요. 예전에 비하면 노동시간 대비 수익이 많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하죠. 사업할 때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고 그로 인한 불안이 컸는데…. 이제는 그런 불안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불안은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이다. 루소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했다.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 ‘부(富)’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갈망하는 것이 바뀌면 부도 바뀐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을 이렇게 제시한다.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가족에게서도 인정받을 수 있고 철학자에게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는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불안 사회 25시

서울 남대문시장의 오후.

PM 3:00 오후 햇살이 나른하다. 경기 과천시에 사는 주부 구모(32) 씨는 다섯 살짜리 아들을 낮잠 재우고 나서야 숨을 돌린다. 구씨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게 불안해” 2005년 7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다.

“아이가 생후 8개월이 될 때까지 직장에 다녔어요. 아이를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맡기고요. 친정이나 시댁은 아이를 돌봐줄 형편이 못 됐거든요. 그런데 애를 남에게 맡기는 게 보통 강심장으로는 안 되는 일 같더라고요.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겠어요? 아이에게 어떤 짓을 할 줄 알고…. 아주머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못 미더워 직장에서 늘 불안했죠. 그러니 일에 집중하기도 힘들었어요. 안 해도 되는 걱정을 달고 사는 제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불안해서 직장을 못 다니겠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아이를 키우려고 일을 그만뒀어요.”

구씨는 자신이 직접 아이를 키우면 더 이상 불안할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온 신경을 육아에만 쏟다 보니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불안해지더라는 것. 특히 광우병 파문이다 멜라민 파동이다 여러 가지로 시끄러운 요즘 같은 상황에선 먹는 것이 가장 불안하다.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싶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인다고 한다.

“먹는 것도 먹는 거지만, 요즘 저의 최대 불안거리는 따로 있어요. 내년에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는데 과연 잘 적응할까 하는 문제죠. 아이가 엄마와 안 떨어지려고 하면 어쩌나, 친구들과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꼬리를 물어요. 마치 제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처럼 떨리고 불안하네요.”

구씨는 자기 자신도 걱정된다고 한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다가 막상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됐을 때, 그 시간에 뭘 해야 할지 싶단다. 3년 넘게 전업주부로만 살아왔던 그는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다시 사회로 나가는 것이 많이 불안하다”며 한숨짓는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위험이 과거보다 현저히 증가한 것이 아니라 위험이 정체성에 끼치는 영향이 심대해진 것”으로 본다. 위험은 개인을 불확실성으로 내몬다. 그러면서 불확실한 삶을 살도록 강요한다. 멜라민 파동에서도 볼 수 있듯 위험은 계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위험사회는 휘황한 풍요 사회의 어두운, 그러나 좀처럼 지우기 어려운 이면”이라고 말한다.

PM 6:00 미혼인 이모(33) 씨가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다. 그는 미혼일수록 정기검진이 필수라며, 적어도 1년에 한두 번은 산부인과에 들른다고 한다. 산부인과 외에도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그를 주변 사람들은 ‘건강염려증 환자’라고 부른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다 보니 건강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 당장 사고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요. 하지만 아파서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것, 그것은 정말 두렵죠. 그래서 어디가 조금만 불편하다, 아프다 싶으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요.”

그는 사실 “불안해서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지 않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편하고 아플 때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자신의 증상이 대장암과 같다는 둥, 위암과 같다는 둥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는 불안해할 시간에 병원 가서 확인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의심이 많은 성격 탓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은 절대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유별난 것은 보통 두 곳 이상의 병원을 찾아가 진단받는다는 점이다.

“한 곳에서 괜찮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확인해요. 적어도 두 곳 이상에서 괜찮다고 하면 그때서야 신뢰할 수 있죠. 얼마 전 친한 언니가 위암으로 죽었어요. 언니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위염이라고 그러더래요. 그런데 약을 먹어도 계속 아파 큰 병원에 갔더니 위암 말기라는 거예요. 충격이 무척 컸죠. 그때부터 두 곳 이상의 병원을 찾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어요.”

주위에서 “너 그렇게 신경 쓰다 제일 먼저 죽는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 죽더라도 건강하게 살다 죽고 싶다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MRI를 찍어보는 게 바람”이라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불안의 상징적인 반응이다. 죽음을 상상하면 심박 수가 빨라지고 자율신경계가 항진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통제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강하다. 사회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고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불안은 커진다고 사회학자들이 분석하는 까닭이다.

불안 사회 25시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위험이 과거보다 현저히 증가한 것이 아니라 위험이 정체성에 끼치는 영향이 심대해진 것’으로 본다.” 정오의 직장인들과 퇴근길 취객(오른쪽).

PM 9:00 회사원 김모(27) 씨는 오늘도 야근을 한다. 비정규직인 그에겐 야근수당이 나오지 않기에 다소 억울한 면도 없지 않다. 정규직 전환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최근 비정규직 사용기한이 4년으로 연장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 가슴이 덜컹했다”고 말했다.

“늦게까지 홀로 사무실에 남아 야근하다 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와요.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하나 싶다가도 섣불리 그만두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될까봐 함부로 저지르지도 못하죠. 제 또래 중에는 저와 같은 처지가 많은 것 같아요. 이미 한두 번 직장을 옮긴 뒤 공무원을 준비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들도 많아요.”

노동계의 탈·불법 시위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숙제다. 다수가 일자리에 불안을 느낀다면 사회의 불안도 가중되게 마련이다.

올해 1월23~2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08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www.weforum.org)의 주제는 ‘협력적 혁신의 힘(The Power of Collaborative Innovation)’. 갈수록 커지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공존의 강조’로 풀자는 뜻이다.

“지금은 시장과 국가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저울추가 방향을 바꾸고 있는 시기다. 2008년은 앞으로의 시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끝낼 중요한 해인데, 우리는 보호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자유무역의 이념적 변형을 찾아내야 한다.”(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그룹 아시아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지금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국제통화기금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패러다임이 태동하는 실마리를 보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의 승자가 누가 되든 당선자는 이전보다 더 평등에 신경 써야 할 것이고,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협약이 어떻게 결론 나든 그 실천을 위한 국제적 협력은 일찍이 볼 수 없던 규모가 돼야 할 것이다.”

PM 11:45 중앙시장의 곱창 지린내는 맡아본 사람만 안다. 김순옥(57) 씨는 30년 넘게 비좁은 포장마차에서 곱창을 구워왔다. 리어카에 나무판자를 덧댄 낡은 곱창집이 그의 삶터. 포장마차는 가로등 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빛났다. 종종걸음을 치는 행인들과 공사장에서 피어오르는 모닥불이 겨울이 머지않았음을 알린다. 그래서일까, 안주와 소주잔이 오가는 복닥복닥한 포장마차의 풍경은 따사롭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철호(50) 씨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데 우리만 힘든가? 우리만 불안 많나?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기라. 힘들다꼬, 걱정 많다꼬 콱 죽어뿌린 사람만 바본 기지.”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길이 다채로울수록 덜 불안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특정 대상이 없는 두려움의 감정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아프거나 괴롭게도 만든다.



주간동아 2008.10.28 658호 (p38~4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백경선 르포라이터 suda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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