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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은 어느 곳보다 편한 나의 공간”

故 최진실 불꽃처럼 살다 간 천생 배우 … 경기도 묘소엔 추모객 발길 이어져

  • 염희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althj@donga.com

“화장실은 어느 곳보다 편한 나의 공간”

“화장실은 어느 곳보다  편한 나의 공간”
스타는 추억되는 존재다. 흘러간 배우의 모습을 보며 대중은 배우를 좋아했던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10월2일 자택 화장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우 고(故) 최진실 씨. 그는 우리에게 어떤 추억거리를 남겼을까.

기자에게는 그와 얽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올해 3월 당시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출연 중이던 그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인터뷰였다.

홍선희 역을 맡은 그는 당시 드라마를 통해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와는 또 다른 망가짐을 보여주고 있었다. 빚만 떠넘기고 도망간 남편 때문에 ‘이쁜이 수술’도 마다 않는 억척 아줌마 역의 최진실. 한때의 국민요정이 왜 그렇게 망가지는지 궁금했다. 바쁜 촬영 일정으로 짬을 내지 못하던 그에게서 연락을 받은 건 퇴근길 지하철역에서였다.

올 3월 인터뷰 “화장실에서 누워 대본 연습하고 책도 읽어”

한걸음에 내달려 그의 서울 잠원동 빌라로 갔다. 안에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단출한 티셔츠 차림의 그가 불쑥 걸어나왔다. “좀 어둡죠? 전기세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이렇게 불 끄고 살아요.” 농반진반으로 시작된 그의 첫마디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변변한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그는 허기진 기자에게 곰국을 대접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수제비를 하도 많이 먹어 ‘최 수제비’란 별명을 가진 그는 수제비를 잘 끓여 특허를 낼 생각까지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그의 두 자녀가 내복 차림으로 낯선 손님을 빼꼼히 쳐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는 안방 옆에 딸린 접대실에서 이뤄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던 그는 “왜 자꾸 망가지는 역할을 맡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실제 인생에서 불행한 과정이 있었고 극중에서 매번 행복하지 않은 역을 했더니 남들은 그래요. 다양한 경험이 연기에 우러나오니 좋은 거 아니냐고. 하지만 이제 그런 제 자신을 보는 게 질리고 힘들어요. 이번에도 물론 망가지죠. 하지만 곧 있으면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게 돼요. 하느님은 나쁜 일은 겹으로 주시고 복 또한 두 배로 주신다더니.(웃음) 앞으로 점점 예뻐질 거예요. 팬들도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비록 외모는 망가졌지만 그는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홍선희 역에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밝고 경쾌한 홍선희 덕에 웃을 수 있어 좋다”며 “요즘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때가 있다”고 했다.

한 시간 반 가까이 되는 인터뷰가 끝난 후,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을지 주저하는 기자를 보더니 그가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찍으면 어떨까요. 여기가 의외로 조명이 좋아요.” 그는 갖춰진 장비와 조명에서만 촬영을 허락하는 여느 배우들과 달랐다.

화장실은 여느 집 안방만 했다. 놀라운 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깔린 이불이었다. “여기는 다른 어떤 곳보다 편한 저만의 공간이에요.” 그는 그곳에 누워 대본 연습도 하고 평소 못 읽던 책도 읽는다고 했다. 대중에게 노출된 그가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고작 화장실이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화장실에서 최후를 맞았던 까닭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다.

별도의 준비 없이 머리카락을 쓱 빗어넘긴 그는 진한 회색 티셔츠 차림 그대로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몇 번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했고 본능적으로 포즈를 취했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뷰파인더 속의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카메라 앞에서는 당당한, 천생 배우였다.

“화장실은 어느 곳보다  편한 나의 공간”

고 최진실 씨의 묘소를 찾은 팬들(왼쪽)과 염희진 기자가 최씨의 생전에 화장실에서 찍은 인터뷰 사진.

일반인들은 배우 최진실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10월12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갑산공원에 안치된 배우 최진실에게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하지만 산꼭대기에 차려진 그의 묘비에 도착하자마자 수북이 놓인 꽃다발에 내심 놀랐다.

공원 관리인에 따르면 토요일인 11일엔 무려 1000여 명의 팬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기자가 찾은 일요일 오전에는 이미 300여 명이 발걸음을 한 뒤였다.

다녀간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있는 최진실을 추억했다. 휴대전화로 자신의 방문을 기록하는 10대에서부터 먼발치에서 그의 사진을 응시하며 울먹이는 20대, 묘지 주위에 소주 한 병을 흩뿌리고 가는 40대 남성까지, 방문객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중 처음 만난 회사원 이현재(32) 씨는 친구와 함께 경기도 오산 반도체공장에서 새벽 근무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씨는 최진실에 대해 “학창시절엔 인생의 우상이었고 30대가 되면서는 같이 늙어가는 언니였다”고 회상했다. “힘든 가정환경을 딛고 우뚝 선 언니를 보며 나도 언니처럼 열심히 살아야지 했어요. 이혼 뒤에도 씩씩하게 아이들을 거두는 걸 보고 ‘그래, 역시 언니다워’ 했는데…. 전 이제 누구를 보며 힘을 내야 하나요.”(이현재 씨)

수북이 놓인 꽃다발 저마다 명복 빌어

30, 40대 남자들에게 최진실은 “영원한 시대의 연인이자 첫사랑”으로 기억됐다. 혼자 찾아온 고영일(36) 씨는 “학창시절의 짝사랑이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죽음으로 마감하는 것을 보며 인생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은 유난히 혼자 찾아온 남성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최진실의 중학교 시절 친구였다는 한 40대 남성은 “학원에서 라면을 끓여먹다 수위아저씨에게 걸리기도 했던 진실이는 엉뚱하지만 웃는 모습이 해맑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잠시 후 그는 방명록에 긴 편지를 남겼다.

“죽어서도 외롭지 않아 다행이다. 함께하는 이 가을과 햇볕, 그리고 무엇보다 네 삶을 추억해주는 많은 사람들. 진실아! 다시 태어나면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배우 같은 건 하지 마. 그렇게 노력해서 살았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구설로 삶을 포기하는 건 속상하잖아. 이런 거 다시는 하지 마라. 다음에 또 보자, 친구야.”

오후 3시경 끊이지 않는 방문객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관리인은 3시간 새 300명이 더 찾았다고 했다. 파묻힌 꽃다발 사이로 영정사진 속 그의 앙다문 입술이 미소 짓고 있었다.



주간동아 2008.10.28 658호 (p16~18)

염희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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