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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Art & the City

뉴욕을 예술의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

천재 예술사가 앨프리드 바

  •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뉴욕을 예술의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

뉴욕을 예술의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

뉴욕 모마 ‘반 고흐와 밤의 색채’전에서 특히 관심을 끈 반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over Rhone)’, 1888년 작, 캔버스 유화, 72.5×92cm.

주말이라 붐빌 걸 알면서도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반 고흐와 밤의 색채’(Van Gogh and the Colors of the Night, 2009년 1월15일까지)를 놓칠 수 없기에 전시 첫날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아침 일찍이었지만 이미 표가 동이 났더군요. 대기자 줄에 서서 여섯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실패했답니다. 그 뒤 두 번 더 허탕치곤 결국 75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멤버십에 가입해 입장할 수 있었죠. 관광객들도 이 전시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멤버십 가입을 망설이지 않더군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가장 몰린 작품은 ‘감자 먹는 사람들’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습니다. 몇몇 커플은 전시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하루 더 뉴욕에 머물자고 속삭이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반 고흐가 아닙니다.

MoMA 초기 관장 맡아 전시방법 혁신하고 전시회 잇단 대박

1929년 세워진 모마의 초기 관장은 앨프리드 바(Alfred H. Barr)였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전시 형태, 즉 작품을 한 줄로 나란히 전시하거나 때에 따라 전시장 벽 하나에 그림 한 점만을 걸거나, 연도에 상관없이 작품의 예술적 형식에 따라 전시하는 것 모두 그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만 해도 벽 하나에 작품을 천장부터 바닥까지 다닥다닥 붙이는 게 상식이었거든요.

그는 시간성을 초월한 작품의 내적 형식을 찾아내 작품 한 점 한 점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관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그의 나이가 27세. 이 진지하고 사려 깊은 예술사가는 1930년대 초 유럽을 여행하며 스탈린주의와 나치즘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만을 옹호하고, 나머지는 퇴폐예술로 낙인 찍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을 본 그는 일체의 정치색을 배제한 전시에 사명의식을 느끼고, 예술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알릴 것을 결심합니다. 1936년 ‘입체파와 추상예술’ 전시회에서 그는 입체파 작품을 분석적 입체파와 종합적 입체파로 나누며 1908년에서 10년 남짓 이어진, 자칫 짧은 생을 마감할 뻔한 입체파에 예술사에 길이 남을 장르로서 의미를 부여합니다.



앨프리드 바는 예술사가로서의 사명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예술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죠. 그는 네덜란드로 반 고흐의 조카인 빈센트 빌헬름 반 고흐를 직접 찾아갑니다. 고흐의 조카는 앨프리드 바에게 자신이 물려받은 작품들을 전시회에 대여해주기로 약속하죠. 그는 손꼽히는 컬렉터 크뢸러 뮐러 부인에게서도 작품을 약속받습니다. 1935년 11월 중순부터 두 달 남짓 열린 ‘빈센트 반 고흐’전에서 앨프리드 바는 전시 도록에 자신의 평론은 단 한 줄도 쓰지 않고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로 서문을 대신합니다. 그는 반 고흐의 신산한 삶에 감동을 받은 것에 더해, 반 고흐의 삶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큰 신화로 작용할지도 가늠했던 것 같습니다.

뉴욕을 예술의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

‘반 고흐와 밤의 색채’전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들은 연일 엄청난 지면을 할애하면서 반 고흐가 생전에 4달러에 초상화를, 25달러에 풍경화를 판 것이 고작이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그의 비극적인 생애에 초점을 맞추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 네 번이나 이 전시회를 방문했다며 독자들을 자극합니다. 권투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대신, 혹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백화점에 가는 대신 전시장에 긴 줄을 서는 것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성숙한 미국 시민의 모습인지를 강조하기도 하고요. 피렌체나 베니스, 마드리드보다 역사는 짧지만 1913년 개관한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에서는 유럽의 전통예술을, 모마에서는 최신 현대예술을 유럽에 가지 않고도 볼 수 있어 뉴욕이 이제는 예술의 중심지로서 손색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무료이던 모마가 25센트의 입장료를 받게 됐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예술 관람에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미국 시민들이 동의했다는 증거죠. 이 전시는 마지막 날 5961명, 전체 관람객 수 12만3339명을 기록하며 당시 최고의 블록버스터 전시로 기록됩니다.

뉴욕을 예술의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
이런 성공에 힘입어 앨프리드 바는 입체파 전시, 초현실주의와 피카소 회고전 등 굵직한 전시를 연이어 열게 됩니다. 물론 미국미술을 미술사에 편입시키려는 노력도 잊지 않았고요. 이러한 노력 덕에 현대미술의 중심지는 파리에서 뉴욕으로 넘어옵니다. 그는 모마를 비롯한 뉴욕의 미술관이 관광객과 학생,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엄청난 자본을 얻게 하고, 뿌리가 없는 미국민에게 확고한 문화적 정체성을 부여한 주인공입니다.



주간동아 2008.10.14 656호 (p78~79)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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