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2

2008.09.09

숨가쁜 변화 복잡한 사회 포착

  • 호경윤 아트인컬처 수석기자 www.sayho.org

    입력2008-09-01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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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가쁜 변화 복잡한 사회 포착

    오프라인_10:20+14:25+18:00,C-print, Ed.6(2008)(왼쪽),Mode_1967+1958, C-print, Ed.6(2008)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등 3D로 무장한 게임이 무수히 쏟아지는 가운데, 단순한 규칙과 비주얼에도 여전히 잊히지 않는 게임으로 테트리스가 있다. 1985년 모스크바의 음성인식과 컴퓨터디자인프로그램 개발 연구원이던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소비에트 일렉트로니카 - 60컴퓨터’를 이용, 어린이들의 공간지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만든 테트리스는 축적하지 말아야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게임이다.

    작가 김상길은 최근 리모델링되어 오래된 흔적과 현대적 요소가 동시에 드러나는 건물을 사진에 담은 ‘Mode’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대형 카메라로 찍어 대형 사진으로 인화해 디테일 표현에 주력한다. “디테일이 극대화돼 오히려 장식성으로 귀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듯, 김상길의 사진은 너무 자세하게 찍혀 ‘피부’로 친다면 모공까지 보일 정도다. 껍데기가 주는 정보는 어쩌면 알맹이의 그것보다 냉정하고 정확할 수 있다.

    언뜻 도시 건축을 기록하는 것으로 보이는 김상길의 사진은 데이터베이스 축적을 통해 의미를 구현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의 작업은 쓰나미처럼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프로세스를 ‘스캐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건물 하나하나를 찍을 때 마치 ‘독사진’을 찍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하는데, 이렇게 찍힌 사진은 특유의 ‘이차원적’ 표면 아래 대상물이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리모델링했던 흔적이 몇 겹의 층위(레이어)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한 장의 사진에서, 1961년 처음 지어진 일본의 한 건물이 보수 때문인지 증축 때문인지 몰라도 1986년과 1995년 고쳐 지어진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식이다.

    김상길의 또 다른 시리즈 ‘오프라인’은 한 직장에서 일하지만 다른 시간대에 근무해 결코 만나지 않는 파트타임 근무자들을 한 화면에 담는다. 과거, 영화나 광고 등을 통해 익숙한 시각 이미지들이 생활 속으로 유입되는 상황을 연출한 ‘모션 픽처’ 시리즈의 모호한 은유성과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나 버버리 패션 등을 좇는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을 오프라인 공간에 불러모아 단체사진을 찍었던 ‘오프라인 커뮤니티’ 시리즈에서 나타난 기이한 일치성이 이번 시리즈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발견된다.

    단, 이번 작품이 ‘오프라인 커뮤니티’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파트타임 근무자들을 불러내 한꺼번에 단체로 찍은 것이 아니라 각각 그들이 일하는 시간에 따로 찍어 한 장의 사진으로 합성했다는 것이다. 작품 제목 ‘오프라인_10:20+14:25+18:00’의 경우 오전/낮/저녁에 일하는 이들을 제목에 표기된 시간대에 찍은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포토샵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각각 원래의 시간대를 존중하는 개념을 잃지 않았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의 제목 ‘레이어’를 두고 실제 합성작업을 할 때 포토샵에서 레이어가 자주 다운돼서 생각해낸 제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레이어’라는 제목이 시간의 층, 의미의 층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사회적 프로세스를 의미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새로운 베타 버전이 숨가쁘게 양산되는 컴퓨터게임 유틸리티처럼, 건축 양식과 도시 풍경 그리고 이 사회를 지탱하는 프로세스 역시 결과가 예측되지 않은 채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처럼 멀티풀한 프로세스를 공고히 하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서 위로 ‘분류’의 역사가 이어진다. 정신 건강에 아주 해롭고 편협하고 폭력적인 학문으로 분류학을 꼽는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보면서 “알렉세이 파지노프의 놀라운 의지를 연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전시는 9월3일부터 10월2일까지 피케이엠 트리니티 갤러리(문의 02-515-9496)에서 열린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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