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7

2017.03.01

북한

러시아, 김평일 내세워 북한 망명정부 수립 추진?

反김정은 성향의 北 벌목공 미귀환자, 김평일 추대 움직임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7-02-27 1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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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 경찰청은 최근 김정남 암살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다. 일본 TV가 김정남 피살 장면이 담긴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의 폐쇄회로(CC)TV 동영상을 공개하자 이 사건은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말레이시아는 주북한 자국 대사를 ‘소환’하고, 자국 주재 북한대사를 ‘초치’(招致·사람을 불러들이는 것)하는 등 강공책을 펴고 있다.

    북한의 대응은 천안함 피침 사건 때와 비슷하다. 2월 20일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길거리 기자회견을 갖고 말레이시아 경찰과 북한 당국의 공조 수사를 요구했다. 사법권은 속지(屬地)주의에 따라 사건이 발생한 나라에서 행사하는 게 원칙인데, 같이 수사하자고 억지를 부린 것이다.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여덟 차례 제재를 받았다. 그런데도 백주에 김정남 암살까지 했으니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할 공산이 커졌다. 남북관계도 심하게 경색돼 ‘아차’ 하는 순간 무력충돌을 빚을 수 있다.  

    김정남 암살은 국제 제재로는 김정은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북한의 폭주’를 막고자 김정은을 없애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이름이 정권교체, 체제교체로 번역되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다.

    레짐 체인지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거론된다. 첫 번째가 민중봉기나 군부 쿠데타, 두 번째가 저격수나 자생적 테러리스트에 의한 암살, 세 번째가 특수부대를 투입해 사살하는 참수작전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안은 정보기관, 세 번째는 군이 수행할 수 있다. 세 가지 방안을 설명한 한 소식통은 이런 판단도 제시했다.



    “우리가 참수작전을 수행하면 북한 주민은 깜짝 놀라 저항할 수 있다. 북한 지도부가 김정은 피살에 놀란 주민을 선동해 결사옹위를 주문하면 오히려 뭉칠 수도 있다. 저격수에 의한 암살도 우리가 투입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같은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북한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따라서 북한 내부를 와해하는 레짐 체인지를 하려면 김정은 최측근 인사가 김정은을 쏘는 북한판 10·26사태나 군부가 주석궁으로 돌격하는 북한판 5·16군사정변이 가장 현실적이다. 우리의 대북 공작도 그것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안다.”

    그는 장성택, 현영철, 최영건, 김용진, 이용호 등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된 인물의 공통점에 주목하라고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인자로 거론된 이들이다. 그는 북한에서 2인자로 거론되면 처형이나 숙청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람들은 거부하면서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안 돼요, 돼요, 돼요…’ 현상이라고나 할까. 김정은은 한국을 싫어하지만 한국 여론에 가장 신경 쓰며 또한 한국 언론의 애독자다. 한국 언론이 새로 부상한 그의 측근을 2인자 등으로 보도하면 김정은은 그가 한국이나 중국과 내통하지 않았나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꼬투리라도 잡으면 바로 숙청하거나 처형한다. 불안한 독재자의 속성을 가진 그를 다루려면 외부에서 충격을 주는 대외공작보다 우리 언론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김정은은 그걸 보고 측근을 의심할 개연성이 높아 북한판 10·26이나 5·16 등이 저절로 일어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북한을 에워싼 국가는 대부분 이러한 방향으로 레짐 체인지를 하려 한다. 이들은 북한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행동이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리도록 노력하고 있다. 북한 망명정부 수립은 이런 노력의 하나로 오래전부터 논의돼왔지만 최근 갑자기 주목받고 있다.

    이는 김정은이 제거됐을 때 바로 북한으로 들어갈 주체를 마련하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붕괴한다면 북한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친한적(親韓的) 정부가 들어서면 북한은 국회 결의나 국민투표 등을 통해 한국과의 평화통일을 결정할 수도 있다. 친중(親中) 정권이 들어선다면 북한은 중국을 방어하는 변방국가로 계속 남게 되고, 남북통일은 물 건너간다.

    북한 망명정부 수립은 의지는 물론이고, 현실성도 있어야 된다. 김정남이 암살된 지금 김씨 혈족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가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이다. 극동러시아에서 농업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국제농업개발원의 이병화 연구소장은 “러시아가 주체코 북한대사로 있는 김평일을 내세워 북한 망명정부를 꾸리려 한다는 얘기를 러시아 지인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1979년 주유고 북한대사관에 파견된 김평일은 1984~88년 북한에 들어와 대좌 계급을 달고 인민무력부 작전국 부국장을 지낸 것을 빼면 지금까지 38년째 해외생활을 하고 있다. 작전국 부국장직을 마친 뒤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 주재 대사를 거쳤다. 동유럽이 소련 치하에 있을 때부터 계속 동유럽에서 생활해온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그가 러시아 정보기관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리더를 원하는 미귀환자

    북방정책을 추진한 노태우 정부는 소련과 수교하고자 14억7000만 달러(약 1조6728억6000만 원)의 차관을 제공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그 돈을 갚을 여력이 없자 극동지역의 광활한 땅(달레네골스키 지역)에 고려인자치공화국을 세우는 방안을 우리 측에 제시했다.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고려인을 그곳에 모아 자치공화국을 만드는 것으로 차관을 상계하자고 했다는 것. 그러나 이 계획은 한국 측 거부로 없던 일이 됐다.  

    이 소장은 그때 고려인자치공화국을 만들고 한러관계가 좋아졌다면 우리는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에 버금가는 대(對)북한 후방 기지를 확보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는 고려인자치공화국 건립안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은 40여 년 전부터 벌목공을 극동러시아로 파견해왔다. 이들은 3년 한정으로 파견되는데, 기한이 끝나도 대부분 현지에 체류한다. 북한 측은 뇌물을 받고 눈감아준다. 러시아는 노동력이 부족해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다. 그렇게 러시아에 살게 된 벌목공은 러시아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은 러시아 국적을 갖는다. 이처럼 러시아에 장기 불법체류하고 있는 북한인과 그 자녀를 북한은 ‘미귀환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북한 체제를 거부한다.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만 보내줄 뿐 귀국할 의사가 없다. 러시아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해온 이들은 김정은 독재체제가 무너진 다음에야 가겠다고 한다. 그 대신 러시아에서 이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세력을 찾고 있다.”

    미귀환자의 바람과 북한의 레짐 체인지를 꾀하는 러시아의 의지가 결합하면서 최근 하바롭스크 인근에 북한 망명정부를 세우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 이 정부의 수반으로 김평일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의 보충 설명이다.

    “미귀환자들은 애송이가 불장난을 한다며 김정은을 강하게 비난한다. 이들은 김평일에게는 거부감이 거의 없다. 러시아를 잘 아는 그가 리더를 맡으면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본다. 중국이 김정남을 중국판 북한 망명정부 수반으로 쓰려고 보호해왔다면, 러시아는 김평일을 그런 인물로 보호해왔다. 미귀환자들과 김평일을 묶어 북한 망명정부를 세우려는 안이 러시아 측에서도 검토되고 있다.”

    그는 “김정남이 암살됐기에 김평일은 북한에 들어갈 수 없다. 김평일은 김정남 다음 타깃으로 지목될 수 있다. 결국 김정은과는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김평일의 안전은 러시아의 보호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러시아가 권하면 그가 북한 망명정부의 수반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남 암살은 러시아에 북한 망명정부 수립이라는 새로운 기류를 형성할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인터뷰 |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이북5도청을 북한 대안(代案)정부로”




    한국에서는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사진)이 북한 망명정부 수립을 추진해왔다. 그와 인터뷰를 통해 서방세계에서 추진되는 북한 망명정부 상황을 점검해본다.

    ▼ 2월 21일자 ‘동아일보’는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이 김정남을 수반으로 한 북한 망명정부 수립을 추진했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은 “내가 수반이 되면 결국은 3대 세습이 아닙니까. 김씨 일가 세습은 끊어야 합니다”라며 거절했다고 하는데.

    “김주일 씨는 지난해 4월 19일 세계북한연구센터가 ‘국민일보’ 사옥에서 연 세계탈북자대회에 영국 대표로 참석했다. 북한 망명정부를 주제로 한 행사였는데, 그도 같은 의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가 김정남과 접촉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런던 말고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도 북한 망명정부 수립이 추진되고 있다.”

    ▼ LA에서는 누가 하고 있나.

    “LA에는 탈북자 220여 명이 모여 살며, 19대 총선에도 출마했던 윤모 씨가 중심이다. 그가 올해 말쯤 북한 망명정부를 세우려고 한다. 그는 나와 자주 e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 윤씨는 누구를 수반으로 세우려 하는가.

    “그는 서울에 있을 때도 탈북민에게 대한민국 국회에 진출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국회 앞에서 1인 삭발 시위를 할 정도로 정치력과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김씨 일가가 망명정부 수반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긴다. 그 대신 노동자 출신이 수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북한 망명정부 수립을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2009~2010년 나는 미국 버지니아대 초빙연구위원이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를 하며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다. 그때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 갔더니 클린턴 정부가 준비해뒀다는, 북한 대표부를 위한 땅이 있었다. 그 후 미·북 관계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사업을 추진하는 게 밝혀지면서 깨졌다. 클린턴 정부가 준비해놓은 땅도 비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 주미국 북한대표부가 아니라, 북한 망명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돌아와 2011년 북한 해방을 연구하는 싱크탱크로 세계북한연구센터를 세우고 망명정부 수립을 추진했다.”

    ▼ 생각과 행동을 같이 하는 분들이 있는가.

    “통일연구원에 계셨던 정모 박사, 중앙대를 퇴직한 이모 박사, 통일연구원에 계신 박모 박사 등이 우리 센터 이사로 있다.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 출신으로는 처음 탈북해 사업가로 성공한 안모 씨도 적극 돕고 있다. 사람은 충분하고,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 준비를 많이 했는데, 왜 아직 망명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있는가.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으면서 김정은이 뒤를 이을 때 망명정부를 세울 적기로 봤다. 그런데 김정은이 장성택 등을 처형하면서 권력을 장악해가는 것이 보였다. 망명정부는 김정은 정권이 흔들려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좀 더 기다렸지만 김정은의 권력 장악이 빨라져 미뤄졌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 핵실험과 김정남 암살로 김정은 반대 여론이 국제적으로 조성됐으니 시도해볼 때라고 생각한다.”

    ▼ 북한 망명정부를 세운다면 누구를 수반으로 할 것인가. 김정남과 접촉했나.

    “미안한 말이지만 김정남은 탕아였다. 북한 사람들도 그의 실체가 어떻다는 것을 알면 동의하지 않으리라 봤다. 우리가 주목한 이는 김평일이다. 당시 주폴란드 북한대사로 있었는데 접촉이 쉽지 않았다.”

    ▼ 어떻게 접촉을 시도했는가.

    “1990년대 동유럽과 소련에서 유학 중이던 북한 학생이 대거 탈북했다. 그때 폴란드에서 공부하던 A씨도 한국에 와 고려대를 다녔다. 나도 고려대 출신으로, 그의 선배다. A씨는 폴란드 등 동유럽을 중심으로 사업을 했고 이후 아예 폴란드에서 살았다. A씨는 폴란드가 주재하는 행사에 참석한 김평일에게 접근해 우리 측 의사를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 뜻을 적은 문서를 많은 이가 보는 가운데서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화라도 나누려고 했지만 김평일이 회피했다. 이후 김평일은 주체코 북한대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체코는 폴란드보다 제약이 더 많아 아직 접촉하지 못하고 있다. 김평일도 의혹을 살 만한 이야기가 김정은 귀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는 것으로 안다.”

    ▼ 김씨 일족이 아닌 이를 수반으로 세울 수도 있지 않은가. 빨리 망명정부를 세우지 않는 이유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 나 같은 탈북자는 대한민국에 들어오면서 자동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획득한다. 그러한 우리가 북한 망명정부를 세우면 국적(國籍) 모순에 직면한다. 대한민국 사람이 세우는 망명정부는 대한민국 망명정부여야지, 북한 망명정부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북한을 우리 영토로 규정해놓았고, 국가보안법은 북한 정권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가 대한민국에 북한 망명정부를 세우면 헌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대상이 될 수 있다.”

    ▼ 쿠바인과 베트남인이 미국에 망명정부를 세웠는데, 이건 어떻게 가능했나.

    “그들은 미국 국적을 얻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영주권만 얻어 살고 국적은 여전히 유지했기에 망명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황장엽 선생 등도 망명정부를 세우려 했는데 김대중 정부가 방해한 것도 있지만 법적 문제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 그렇다면 북한 망명정부 수립은 탁상공론인가.

    “외국에 세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내 아이가 미국에서 공부했기에 나도 미국에 가면 영주권을 빨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북한 망명정부를 세우면 법적인 문제는 해결된다. 다만 우리가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 정부기관인 이북5도청을 활용해 북한 망명정부를 세울 수는 없나. 

    “검토해봤다. 이북5도청이 김정은 정권을 대체한 대안(代案)정부가 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이북5도청이 탈북민도 참여케 해 북한 대안정부로 만든다면 법적인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 이북5도청은 정부기관이니 정부의 지원을 받아 더 적극적으로 북한 해방운동을 추진할 수 있다.”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인 안찬일 소장은 인민군에 입대해 판문점 건너편을 지키는 민경대에 근무하던 1979년 귀순했다. 그 후 고려대 정외과에서 학사·석사학위를, 건국대 정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여러 대학에서 북한학을 강의해왔으며 ‘주체사상의 종언’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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