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7

2017.03.01

르포

“문재인이 안 되겠습니꺼” vs “아직 모르지예” (부산·경남)

미지근한 문재인 대세론 속 안희정 바람 살랑살랑

  • 경남 창원·부산=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2-27 1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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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0일 오후 1시 40분, 경남 창원시 신월동에 위치한 한 편의점 앞. 점심식사를 마친 근로자 7명이 벤치에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 40대는 창원이 고향이고 50대는 부산 출신, 또 다른 40대는 경남 합천, 30대 두 명은 각각 경남 진주와 남해 출신이라고 했다. 또 다른 40대 남성은 경북, 가장 젊은 20대 후반 근로자는 전남에서 왔다고 했다.

    “경남의 대선 민심을 살펴보려고 왔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이방인의 낯선 질문에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며 주저할 뿐 말문을 쉽게 열지 않았다. 그러다 창원 출신 40대 남성이 호기롭게 “나는 문재인”이라며 “이번엔 문재인이 될 거라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직 모린다”며 곧바로 반론이 튀어나왔다.

    “그래 쉽게 되겄나. 문재인은 별로라 카던데.”

    “(문재인은) 안 될 끼라는 사람이 많다 아입니꺼.”





    “나는 문재인!” vs “아직 모린다”

    처음 입을 뗀 이가 다시 “문재인이 (여론조사에서) 제일 높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50대 남성이 조용히 대꾸했다.

    “선거는 다른 기라.”

    “하모. (투표는) 해봐야 알지예.”

    다른 40대가 거들고 나섰다.

    “문재인이 아니면 누구를 선호하나요. 안희정? 안철수?”

    기자가 다시 물었다.

    “안희정이 괴안타는 사람도 있고.”

    “안철수는 예서 별로라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어떻습니까.”

    “대통령이 저 모양인데, (대선에) 나올 수 있겠어예.”

    “그래도 문재인이 안 낫겠나.”

    “문재인은 어리하다 안 캅니까.”

    “그라믄 누꼬.”

    “안희정이 어제 (창원에) 왔다 카데예.”

    “아직 어리다 아이가.”

    한 번 말문이 터진 이들은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과열 조짐을 보이자 연장자인 50대 사내가 일어나며 말했다.

    “고마 가소. 쌈 나겠데이.”

    2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돌아본 경남 창원과 부산 분위기는 아직 대선 열기가 뜨겁게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면 위 여론은 차분하게 보일 정도였다. 다만 자리 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하면 끝이 나지 않을 만큼 여론이 팽팽히 나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월 20일 저녁. 부산 서면 먹자골목에 위치한 한 음식점. 기자가 착석한 자리 바로 옆으로 은행원 3명이 모여 앉아 열띤 대선 토론을 이어갔다.

    “이재명(성남시장)이 요새 별로데예.”

    “갸는 인자 배리뿟따. 안희정이 뜬다 아이가.”

    “문재인이 이번엔 될 낀가.”

    “그야 모르제. 탄핵도 아직 안 됐다 안 카나.”

    “김무성이는 뭐 하노. 안 나오나.”

    “안 한다 켔는데 어케 다시 나오겠노.”

    “사람이 그래 없나.”

    “됐다마. 재미읎다. 술이나 한 잔 도.”

    대선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 뚜렷한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많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부산 서면에 위치한 한 음식점의 주인은 “대선후보 가운데 누가 부산에서 가장 인기가 있나”라는 물음에 기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와요. 어디서 왔능교. 조사 나왔능교”라며 잔뜩 경계했다. “민심 취재차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아직 투표할라믄 멀었다 아입니꺼”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문재인 지지율이 가장 높지 않느냐”고 하자 “지금 쪼매 높다고 다 된답디까. 가봐야제”라고 말했다. ‘문재인이 싫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내심 ‘문재인은 아니다’는 속내가 읽히는 말투였다.

    부산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곽모 씨는 “어르신들은 세월호 참사 때 ‘올림머리했다’고 대통령에게 뭐라 카는 것 보고 돌아섰다”고 말했다.

    “그럼 여자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데 머리도 하지 말란 말잉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카이.”

    곽씨는 60대 후반인 장모의 얘기라며,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까지 잠자코 있던 어르신이 그때부터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대학 시절 학생회 간부를 지내고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50대 초반 조모 씨는 “부산서 문재인이 앞서고는 있는데, 아직 확실치는 않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인단 신청을 했다는 그는 “노무현 후보가 나온 2002년 경선 때는 친구, 동문들 사이에서 선거인단에 참여하라고 난리법석이 났는데, 지금은 조용하다”며 “분위기가 그때만 못하다”고 했다. 부산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정모 씨는 “문재인 전 대표 지지율이 크게 앞서 있다 보니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경선 경쟁이 불붙으면 노 전 대통령 때와 같은 열기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거 열기, 노무현 때만 못하다

    자갈치시장에서 30년 넘게 생선을 팔아왔다는 박모(65) 씨는 “그때(2012년 대선)보다 분위기가 좋아졌다”며 “이번에는 문재인이 안 되겠습니꺼”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설 연휴 직후 ‘제가 대세가 맞다’고 언급한 일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고향과도 같은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견고한 지지세가 형성돼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문재인 대세론’이라는 말은 부산·경남에서만큼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부산에서 39.9%, 경남에서 36.3%를 득표했다. 그러나 최근 대선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부산·경남에서 33% 지지율에 머물러 있다(2월 셋째 주 한국갤럽 조사 기준).  이 지역에서 문 전 대표 지지율은 전국 평균 지지율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창원 상남동에서 반림동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만난 60대 후반의 운전기사는 문재인 대세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아입니꺼. 스스로 잘나간다 생각하믄 다른 사람이 눈에 뵈겠어예. 그러다 인심 잃는 깁니다. 그런 꼴 많이 봐왔다 아입니꺼.”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1577만 표를 얻어 당선했다. 경쟁자였던 문재인 후보는 1469만 표를 얻어 100만 표가량 뒤졌다. 18대 대선 결과를 바탕으로 거칠게 풀이하면 박 후보를 찍은 1577만 표는 범여권 지지성향, 문 후보를 선택한 1469만 표는 범야권 지지성향으로 나눠볼 수 있다.

    지난해 4월 20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에서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세 정당이 얻은 유효투표수는 1414만여 표로 2012년 문재인 후보가 얻었던 1469만여 표와 비슷했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표심

    물론 18대 대선 때 투표율은 75.8%로 월등히 높았던 데 반해, 총선 투표율은 57.2%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다만 야권은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으로 분열돼 야권후보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여권보다 야권 성향의 유권자가 대거 투표장에 나섰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얻었던 1577만 표의 절반 수준인 796만 표에 그쳤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 실망한 지지층 상당수가 총선 때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7년 대선에서는 어떤 투표 형태가 나타날까. ‘최순실 게이트’와 그로 인한 대통령 탄핵 상황만 놓고 보면 지난해 총선 결과의 재판이 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10년 만에 다시 정권을 찾으려는 야권 성향 유권자는 총결집하고, 박 대통령 선출에 일조한 여권 성향 유권자는 투표를 기피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야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반면, 여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현 상황이 대선 때까지 이어질 것이란 가정에서다. 그런데 만약 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탄핵 상황에서 침묵하던 ‘샤이 박근혜’ ‘샤이 여권 성향 유권자’가 조용히 투표장에 나가 과거 전통적인 지지성향대로 투표를 한다면? 속단할 수는 없지만 지금 겉으로 드러난 여론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2월 20일 오후, 부산 서면에서 범내골역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만난 운전기사는 이번 대선을 이렇게 전망했다.

    “여론조사를 보면 디비질 것 같지 않지예. 그러다 바람 한번 훅 불면 확 디비지는 게 선거 아잉교. 내사 마 그래 봅니다. 한번 잘 보이소.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교.”

    민주당 경선이 뒤집힌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여야 대선후보 간 본선 맞대결에서 뒤집힌다는 얘기일까. 미지근하지만 문재인 대세론이 느껴졌고, 안희정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었다. 하지만 부산·경남 민심은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없어 보였다. 대선주자들의 바쁜 걸음과 달리, 선택권을 쥔 부산·경남 민심은 한결 여유로운 듯했다. 자갈치시장에 장보러 왔다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선 한 70대 어르신은 기자가 식당 주인과 ‘대선’을 주제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탄핵도 아직 안 끝났는데, 뭐가 그리 바쁜교. (선거는) 아직 멀었다 아입니꺼. 탄핵 결과 보고 그때 (판단)해도 하나도 안 늦다카이.”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꼬장꼬장해 보이는 부산 어르신의 말에서 아직 부산·경남은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PK에 불기 시작한 홍준표 바람?“도코다이(독단)가 무슨….”

    “할 만하지예”

    경남 창원과 부산 일대를 돌며 대선 관련 민심을 청취하면서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물었을 때 나온 대표적인 두 가지 반응이다. 홍 지사가 머물고 있는 창원에서는 의외로 홍 지사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는 이를 만나기 쉽지 않았다. “홍 지사가 내려온 뒤로 시끄러운 일이 많았다”고 푸념하는 이가 오히려 더 많았다.

    반면 부산에서는 “홍준표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 “잘하면 대선후보가 되지 않겠나”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이가 없지 않았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40대 초반의 사장은 “홍 지사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을 한번 확 바꿔야 한다”고 기대감을 표했고, 서면로터리에서 만난 50대 초반 회사원도 “홍준표는 한다면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2월 16일 항소심 무죄 판결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연일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또한 영남권 곳곳을 돌며 강연회 등을 갖고 대권행보에 시동을 걸고 있다. 과연 홍준표발(發) 동남풍은 불 것인가. 부산·경남 여론에 대선주자 홍준표의 운명이 달렸다(12쪽 인터뷰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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