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7

2017.03.01

졸기(卒記)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 열정 ‘장밋빛 인생’ | 판소리 대중화에 앞장선 ‘최고 소리꾼’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7-02-27 11: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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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기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마지막 평가를 뜻하는 말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당대 주요 인물이 숨지면 졸기를 실었다.

    김지영  영화배우 · 탤런트(1938. 9. 25~2017. 2. 19)

    “연기생활 50년이 넘도록 나에게는 상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준비도 못 하고 왔는데, 참 아쉽네요. 멋진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밤이에요’ 이런 것도 좀 해야 하는데…. 감사합니다.”  

    2005년 KBS 2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KBS 연기대상 여자조연상을 수상한 김지영 씨의 소감이다. 김씨는 이날 잿빛 원피스를 입었다. 오랫동안 연기생활을 해왔지만 상을 받은 적이 없던 그는 이날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상식장에 참석한 터라 의상이나 수상소감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기만큼은 철저히 준비된 배우였다.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감초연기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전국 사투리를 누구보다 잘 구사했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각 지역 전통시장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물건을 사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맛깔 나는 사투리를 익혔다.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김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부모가 시집을 보내려 했고, 시집을 안 가려고 극단에 발을 디딘 것이 시작이었다. 1960년 ‘상속자’로 영화에 데뷔한 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서서히 진가를 발휘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2년간 폐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연기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근까지 드라마 ‘여자를 울려’ ‘판타스틱’ 등에 출연했고, 5월 차기작을 위해 운동하며 몸을 만들 정도로 천생 배우였다.



    과거 한 TV 프로그램에서 “카메라 앞에서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듯, 그는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그의 인생은 장밋빛이 었다.




    박송희 국악인(1927. 2. 3~2017. 2. 19)

    서른 중반, 소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던 박송희. 당시 동편제 거목 박록주 명창을 찾아갔다. “그런데 제가 지금 돈이 없습니다.” “소리 공부하는 데 돈이 왜 필요하노. 소리만 잘하면 됐지.”

    열 살 때 박 명창은 단가의 매력에 빠져 본격적인 소리꾼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44년 동일창극단을 시작으로 여성국극단에서 활동하며 무대 경험을 쌓았다. 이후 당대 최고 명창들의 가르침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을 섭렵했다. 춘향가 예능 보유자 김소희 명창에게서 춘향가와 심청가를, 적벽가 예능 보유자 박봉술 명창에게서 적벽가와 수궁가를, 심청가 예능 보유자 정권진 명창에게서 심청가를 배웠다. 박록주 명창으로부터는 흥보가를 사사했다.

    박 명창은 판소리 알리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평소 “판소리 무대를 자주 만들어 사람들이 접하게 해야 한다” “젊은 관객과 많이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등에서 무대를 갖기도 했다. 말년에 고향 전남 화순으로 내려간 뒤에도 지난해 9월 한국판소리보존회가 주최한 ‘판소리 유파 발표회’ 무대에 서는 등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박 명창은 단아한 체구였지만 해가 떠오르는 듯한 힘찬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스승 박록주 명창이 남긴 가사에 그가 곡을 붙인 단가 ‘인생백년’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인생 백년 꿈과 같네. 사람이 백년을 산다고 하였지만 어찌하여 백년이랴. 죽고 사는 것이 백년이랴. 날 적에도 슬프고 가는 것도 슬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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