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2

2008.09.09

화장품 병행수입 가격 거품 얼마나 뺄까

정부, 명품 브랜드 대폭 허용 시기 조율 소비자 선택 기회 확대, 책임 불분명 우려도

  • 이원식 장업신문 기자 wslee6@naver.com

    입력2008-09-01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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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품 병행수입 가격 거품 얼마나 뺄까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수입화장품들. 대부분 다른 국가들에 비해 10~40% 비싸게 팔리고 있다.

    5월 한국소비자원은 여성들에게 꽤나 충격적일 만한 뉴스를 발표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수입화장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내외 가격 차이를 조사한 결과 샤넬, 랑콤, 크리스찬 디올, 에스티 로더 등 이른바 명품 브랜드들의 국내 판매가격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보다 월등히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립스틱과 영양크림 등 여성들이 즐겨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중국 대만 싱가포르보다 10%가량 비쌌고 미국에 비해서는 19.8% 비쌌다. 국내 물가수준을 고려한 구매력지수를 적용할 때는 수입화장품 평균가격이 조사 대상 국가들보다 55%나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수입화장품 가격이 이처럼 비싼 이유는 해당 국가별 정부 정책, 세제, 물류비용, 노동생산성, 원자재 가격 등 복합적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병행수입 금지와 과다한 유통마진이 그것이다.

    수입차처럼 가격 인하 효과 기대

    이 때문에 수입화장품 병행수입 허용이 이슈로 떠올랐다.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화장품 병행수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기획재정부도 12월부터 병행수입을 대폭 허용할 방침이어서 수입화장품 병행수입은 이제 시기 조율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화장품 병행수입이 가능하도록 법규를 손질하고 있다. 즉, 복지부는 화장품에 들어간 성분을 모두 공개하는 ‘전성분 표시제’를 도입해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미 법률상으로는 화장품 병행수입을 할 수 있지만, 시행규칙에서 ‘화장품 제조국의 제조 및 판매 증명서’ 비치를 의무화했기에 사실상 병행수입은 불가능했다. 제조국에서 병행수입자에게 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바로 이 항목을 개정함으로써 병행수입의 길을 터주고자 한다.

    수입화장품이 병행수입될 경우 수입자동차 시장에서처럼 거품이 빠지면서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독점 판매되는 수입제품들이 다양한 유통경로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화장품업계에서는 가격이 20~30%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또한 다양한 유통경로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만큼 품질과 서비스도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여러모로 소비자의 선택 기회가 확대되는 것이다.

    국산 화장품업계 시장 잠식 걱정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수입제품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져 결국 소비자 보호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제조국의 제조 및 판매 증명서가 첨부된 수입 관리 기록서’ 작성 의무가 사라지면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제조된 ‘짝퉁 화장품’이 시중에 대거 유통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다국적 수입사들과 국내 화장품업계는 “불량 및 짝퉁 제품의 유통 차단 대책이나 소비자 보상체계를 마련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화장품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와 소비자단체는 10월부터 도입될 ‘화장품 전성분 표시제’만으로도 소비자가 품질 여부를 충분히 인지하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어 불량 화장품의 유통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현행 화장품법에는 불법 유통되는 화장품의 경우 제조사에 책임을 묻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제조원이 불분명한 불량 및 짝퉁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 피해를 처리할 수 있는 적당한 창구가 없다.

    명품 화장품 병행수입은 국내 화장품업계에도 가격 인하 압력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장품은 고(高)마진 상품이기 때문에 수입업자 간 가격경쟁에 불이 붙고, 그 불똥이 국내 화장품업계에도 미치리라는 분석이다. 그 때문에 국내 중견 및 중소 화장품업체, 시판 수입사들은 가격 하락과 함께 명품 화장품의 시장 잠식을 걱정하고 있다. 즉, 다량의 수입화장품이 들어와 싼값에 판매되면 국산 화장품이 시장에서 밀려나리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화장품 병행수입 가격 거품 얼마나 뺄까

    명품 화장품 브랜드들은 병행수입이 개시된다 해도 당분간 가격 인하를 하지 않는 대신 고객 만족 서비스를 강화할 전망이다.

    반면, 백화점 같은 유통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은 병행수입으로 브랜드의 희소성이 떨어져 상품가치까지 낮아질까 걱정하고 있다. 현재 잘 팔리는 히트 아이템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브랜드들은 병행수입으로 가격경쟁을 벌여도 당분간 가격을 낮추진 않을 전망이다. 그보다는 백화점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피부진단과 상담, 메이크업 강좌 등 고객 만족 서비스를 강화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옥션이나 G마켓 등 온라인 시장에서 팔리는 명품 색조제품의 경우 백화점보다 20~30% 저렴하다. 병행수입이 활성화되면 결국 명품 브랜드도 가격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명품 브랜드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게 유통 관계자들의 견해다.

    한편 화장품 매장 등 시판 유통가에서는 병행수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병행수입으로 일반 화장품 매장에서도 해외 명품 브랜드를 판매할 수 있게 될 경우 매출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중대형 화장품 매장은 명품 브랜드의 인기품목을 구비해놓아 젊은 고객을 확보하고, 고급스러운 피부 관리 시설을 운영해 중년 고객도 유치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올리브영, GS왓슨, H·B숍 등도 병행수입에 따라 명품 브랜드를 매장에서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샤샤’, 프랑스의 ‘세포라’ 등 거대 유통체인이 직접 국내에 들어와 유명 브랜드를 판매할 가능성도 있다. 화장품 병행수입으로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또한 이마트 등 대형할인점에서도 명품 화장품의 병행수입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유통 관계자들은 초긴장 상태다. 전국적으로 거대 유통망을 보유한 대형마트들이 중간 유통업자에게서 병행수입 제품을 공급받아 판매한다면 그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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