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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人文기행 ⑧ 목포

항구의 불빛 따라 쌓인 사연 가슴 짠하게 밀려왔다

민초들의 애환과 설움 짙게 스민 곳 … 삼학도 해조음 여전히 다정한 속삭임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항구의 불빛 따라 쌓인 사연 가슴 짠하게 밀려왔다

항구의 불빛 따라 쌓인 사연 가슴 짠하게 밀려왔다
내륙 한복판 대전에서 기차가 출발한다. 0시50분에 출발하는 완행열차. 어디로 가는 걸까? 그 가사는 이렇다.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완행열차는 목포로 가는 것이다. 그 완행열차가 여수나 마산이나 부산으로도 갈 수 있지만, 그래도 0시50분에 완행열차는 목포로 가야만 한다.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은 소설가의 고향 순천, 그 앞바다의 안개와 둑방 길을 공간으로 삼는다. 소설 속 주인공은 시골에 처박혀 있는 여선생 하인숙을 만나게 된다. 주인공은 그녀와 하룻밤을 자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하인숙은 말한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고, 안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서울로 가고 싶다고. 그런 한편으로 하인숙은 이미 늪처럼 되어버린 무진의 진공 상태로 빠져 들어간다. 그런 하인숙이 노래를 부른다면?

소설 속의 술자리에서 하인숙은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옥타브의 절규를 포함하고 있었고, 그 양식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광녀의 냉소가 스며 있었고, 무엇보다도 시체가 썩어가는 듯한 무진의 그 냄새가 스며 있었다.”

수많은 시인묵객의 고향 … 가수 이난영, 시인 김지하 등 창작 산실

‘무진의 냄새’가 몸속까지 배어버린 하인숙의 내면을 위하여 김승옥은 ‘목포의 눈물’을 선택하였고, 그 노랫말은 이러하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그런 목포에서 시인묵객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괴이쩍은 일이다. 주위로 광주, 강진, 해남, 진도가 있어 각 고을마다 근현대 200여 년의 창대한 문예 계보가 있지만 그래도 목포를 빼놓고 말한다면 전남의 문예, 혹은 좀더 확장하여 한국 근현대의 문예사에는 상당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남농 허건과 김환기의 그림, 김우진과 차범석의 희곡, 박화성과 천승세의 소설, 김지하와 최하림의 시, 이난영과 남진의 목소리 그리고 문학평론가 김현과 황현산과 서영채의 말들이 목포에서 빚어진 것이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광장의 최인훈도 6·25전쟁 당시 원산에서 월남하여 부산 피난민수용소를 거쳐 목포에 정착하여 목포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1897년 10월1일 개항하여 남도 땅의 모든 물산과 인물이 드나드는 창이 된 목포는, 예컨대 1920년대부터 각지의 목화와 쌀과 소금을 저장하기 위해 창고업이 성행하고 부두가 번창하고 선창가에 불이 밝혀지고, 그리하여 노래가 나오고 가수가 등장하여 이난영이 탄생하였던 것처럼, 곳곳에서 이야기꾼과 시인들이 항구의 불빛을 따라 등장했다.

인천이나 부산이 그렇듯이 큰 항구의 불빛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성장한 문예의 길은 스산하면서도 준열하다. 애환과 설움이 짙게 배어 있는 목포라면 더욱 그러하다. 목포역 맞은편의 대안동에서 태어나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을 처음 쓰면서 발표한 저녁 이야기로 시인 생활을 시작한 김지하가 대표적이다. 단순한 저항시인을 넘어서 심원한 문명적 성찰을 시도하는 이 시인에게 목포는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그에 의하여 목포의 지명들은 문학사에 등재되었다. 목포대학교 목포캠퍼스 뒷산 비녀산, 삼학도 부근 백년로 사거리 뒤편의 낮은 언덕 성자동, 해군부대가 들어선 용당리 등은 김지하가 피로 쓴 1960, 70년대의 시 곳곳에 등장한다. 그는 쓴다.

지금도 너는 반짝이느냐/ 성자동 언덕의 눈/ 아득한 뱃길 푸른 물굽이 위에/ 하얗게 날카롭게/ 너는 타느냐/ (중략)/ 마주한 저 월출산 아래 내리는/ 저 용당리 들녘에 내리는 은빛/ 비행기의 은빛 비늘의 눈부심, 독한 눈부심 위에 아아 푸른 눈/ 침묵한 아우성의 번뜩임이 거기서 타느냐. - 김지하 ‘성자동 언덕의 눈’에서

동시대 시인으로 그 시대 문객과 독자들에게는 열렬했지만, 지금은 잊힌 듯 보이는, 그러나 목포의 바닷바람이 들려준 해조음을 제대로 들은 이후로 생의 허위와 비밀을 향해 단호한 언어를 선택해온 시인 최하림도, 무엇보다 목포를 위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1939년 목포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최하림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산이 기울어 힘겨운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했던 최하림은 목포의 해안통 거리를 헤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가 그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선창가를 쓸쓸히 걷던 그의 눈에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 배의 돛이 뚜렷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 시 같은 것을 가르쳐준 것은 국어 선생님도 아니었고 문예반도 아니었고 선배들도 아니었다. 사리 때의 해안통 거리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초기 작품 빈약한 올페의 초상에서 이렇게 쓴다.

아무런 이유도 놓여 있지 않은 공허 속으로 어느 날 아이들이 쌓아버린 언어./ 휘엉휘엉한 철교에서는 달빛이 상처를 만들며 쏟아지고 때없이 걸려진 거기 나는 내 정체의 지혜를 흔든다./ 들어가라, 들어가라. 하체를 나붓기며. 해안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닷속으로./ 막막한 강안을 흘러와 쌓인 사아(死兒)의 장소. 몇 겁의 죽엄./ 장마철마다 떠내려온, 노래를 잃어버린 신들의 항구를 지나서./ 유리를 통과한 투명한 표류물 앞에서 교미기의 어류들이 듣는 파도소리./ 익사한 아이들의 꿈.

항구의 불빛 따라 쌓인 사연 가슴 짠하게 밀려왔다
그리고 문학평론가 김현이 있다. 젊은 날의 김현은 목포역 앞의 목포 오거리에서 김승옥이나 최하림 그리고 더러 김지하도 함께 어울리는 시절을 보냈다. 카뮈를 추모하는 문학회가 열리거나 조촐하지만 맹렬했던 자작자연자서(自作自演自書)의 밤들이 열렸다. 그래서 그의 무덤은 경기도 양평읍 도곡리에 있지만 그 문학비는 목포시가 ‘개항 100주년’으로 조성한 방대한 규모의 문화공원 내에 자리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제1회 김현 문학축전’이 열렸고 앞으로 그를 기리는 문학관과 문학제가 상례화될 예정이다. 고종석은 김현의 비평에 대해 “논리와 지식의 전시장이 아니라 직관과 감수성의 연회”였다고 말하면서 “김현의 말 읽기, 마음 그리기는 거의 언제나 독창적이었고, 바로 그 독창적인 의미화를 통해 한 작품을, 한 작가의 정신세계를 두텁게 만들었다”고 썼다.

목포 사람 김현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사후에 정리된 ‘일기’에 보면, 1986년 5월27일치 일기에서 “나는 전라도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 숙고했다. 때로는 혐오하면서, 때로는 연민을 갖고서,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도피의 마음으로.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하숙을 거절당한 것, 사투리 때문에 놀림받은 것, 전라도 사람임에도 80년 이후에도 조용하다는 것… 등의 것들이 뭉쳐져 내 가슴에 밀려 들어왔다”고 썼다.

이 대목은 겹눈으로 읽어야 한다. 유대인 사상가인 아도르노가 역시 유대인 음악가인 말러에 관한 글을 쓰면서, 세상이 그의 음악을 ‘비주류 유대인의 억압과 설움’으로 해석하는 것을 강력하게 견제했던 것처럼, 목포 사람 김현이 ‘일기’에 쓴 내용으로 그의 문학 전체를 지역적 특색으로 미뤄놓는 것은 매우 불성실한 지적 태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바탕에서 그의 글들을, 그의 표현대로 겹눈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김현은 쓴다.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그 다름은 이중적이다. 하나의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풍경들의 모음도 그러하다. 볼 때마다 다른 풍경들은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붙박이로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말들이 갖고 있는 은총이다.

- 김현 ‘말들의 풍경’에서




주간동아 2008.06.03 638호 (p66~68)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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