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8

2008.06.03

고물가 폭탄, 장바구니 비명 뾰족한 대책이 없다

정부, 52개 생필품 관리 유명무실 … 생색용 정책뿐 서민 주름살 늘어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8-05-27 1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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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물가 폭탄, 장바구니 비명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일러스트레이션·임혜경

    “정부는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표현을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물가가 관리됩니까? 그저 정부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하겠다는 거죠.”(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실 관계자)

    3월 호기롭게 서민생활 안정화정책을 발표했던 정부가 석 달도 안 돼 꼬리를 내렸다.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하고 ‘집중점검’ ‘대응’ 등 강한 어조를 구사했던 정부가 “관리라는 말은 안 했다”고 발뺌하는 모습은 최근 예상외로 급등하는 물가에 정부가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예상외 급등하는 물가에 정부 곤혹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서민’을 남다르게 챙겼다. 대선 때는 ‘서민생활비를 30% 절감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성장 중시 경제정책을 추진해나가면서도 서민 챙기기는 잊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52개 생활필수품이 선정된 며칠 뒤 “선진국은 물가는 비싸지만 생필품 값은 싸다”면서 “물가가 오르더라도 최소한의 물자는 값이 싸서 서민의 기본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6%, 생활물가는 4.6% 올랐다. 정부는 “소비자물가나 생활물가는 실제 서민이 느끼는 물가 수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소득 2분위 이하(전체 가구의 하위 40%) 계층이 자주 구입하고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에서 쌀 양파 휘발유 고등어 쓰레기봉투 등 52개를 추렸다(38쪽 표 참조). 그리고 기획재정부는 “열흘 주기로 가격동향을 집중 모니터링하고,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유형에 따라 수급 및 가격 안정을 위한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5월1일,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년8개월 만에 처음으로 4%대로 진입한 것으로 발표되자 정부는 다급해졌다. 당초 6일로 예정된 최중경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의 서민생활안정태스크포스팀(이하 서민TF팀) 회의가 이튿날인 2일로 앞당겨졌고, A4 용지 9장 분량의 대책안이 발표됐다.

    그러나 관리든, 관리가 아닌 대응이든 정부가 하는 서민생활 안정화정책은 그다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국제유가가 계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원-달러 환율까지 가파르게 오르는 이때 어떤 정책이 물가를 끌어내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러한 정책이 서민을 위한 정부의 노력으로 포장돼 전달된다는 점이다. 빈 깡통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셈이다.

    대표적인 예로 석유제품 관련 정책을 꼽을 수 있다. 국제유가가 고공행진하는 현실에서 석유제품의 원가를 낮출 도리는 없다. 이에 정부는 유통구조 개선으로 중간 마진을 줄이고 경쟁 촉진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전략을 택했다. 기획재정부는 석유제품에 붙는 할당관세를 3%에서 1%로 인하하고 대형마트 등 신규사업자가 자기 상표를 내건 주유소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즉 관세인하로 석유제품 수입을 촉진하고,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만들어 4대 정유사에 의한 과점체제를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생색내기용에 불과하다. 먼저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수입된 휘발유가 전혀 없다. 국제 휘발유값이 국내 휘발유값보다 비싸기 때문에 아무도 휘발유를 수입해다 팔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사오는 휘발유가 더 비싼 이때, 할당관세가 낮아졌다고 석유제품이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7월에도 정부는 석유제품에 붙는 할당관세를 5%에서 3%로 낮춘 바 있다. 물론 그 이후에도 휘발유는 전혀 수입되지 않았다.

    ‘이마트 주유소’ 예전에도 가능했던 일

    또한 일명 ‘이마트 주유소’를 위해 정부가 규제를 철폐하거나 새로운 허가를 내줄 것은 하나도 없다. 이번 정부 방침 발표 이전에도 이마트든 개인사업자든, 누구나 원하면 자기 상표를 내걸고 주유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주유소 사업에는 아무런 진입 규제가 없다”며 “기획재정부 발표는 잘못 전달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에는 정유사 브랜드를 달지 않고 개인 상표를 내건 무폴 주유소와 여러 개의 정유사 브랜드를 단 복수폴 주유소가 743개 있다. 이는 전체 주유소에서 5.9%에 해당하는 수치다(2007년 말 기준).

    5월21일 각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국내 스타벅스 커피값 G7 평균의 1.6배’라는 한국소비자원의 발표도 당초 정부의 서민생활 안정화정책의 일환으로 기획된 ‘아이템’이다. 5월2일 서민TF팀은 “국내외의 가격차 발생원인을 분석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해 소비자의 합리적 구매를 유도하겠다”며 “한국소비자원이 5월 중에 커피 화장품 등의 국내외 가격차 정보를 공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소비자원은 5월20일 7개 품목에 대한 가격차 정보를 공개했다. 그런데 이 품목이라는 것이 스타벅스 커피를 비롯해 골프장 그린피, 샤넬·에스티로더·랑콤·크리스찬디올 등의 수입화장품 같은 서민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다. 반면 52개 생활필수품 목록에는 골프장 그린피나 테이크아웃 커피, 수입화장품 등이 들어 있지 않다. 이러한 지적은 한국소비자원도 인정하는 바다.

    정부가 집중 관리 대상으로 선정한 52개 생활필수품
    양파
    휘발유
    쓰레기봉투료
    밀가루
    마늘
    경유
    학원비
    라면
    고추장
    LPG
    가정학습지
    식용유
    등유
    납입금
    쇠고기
    달걀
    화장지
    샴푸
    돼지고기
    우유
    전기료
    위생대
    멸치
    사과
    자장면
    외래진료비
    고등어
    스낵과자
    전철료
    보육시설 이용료
    배추
    소주
    시내버스료
    공동주택 관리비
    설탕
    상수도료
    주거비
    두부
    바지
    도시가스료
    시외버스료
    콩나물
    유아용품(분유 등)
    이미용료
    이동전화 통화료
    세제
    목욕료
    유선방송 수신료


    한국소비자원 장수태 거래조사연구팀장은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비교적 비교가 쉬운 품목을 먼저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됐다”면서 “6월로 예정된 2차 발표 때는 서민생활과 관련된 품목도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물가관리 정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가격정보 공개다. 가격정보 공개를 통해 소비자의 합리적 구매행위와 업체 간 가격인하 경쟁을 유도하고자 한 것. 4월 중순 개시된 주유소 가격 정보사이트 오피넷(www.opinet.co.kr)이나 관세청이 현재 발표 준비 중인 수입단가 정보 등이 그 예다.

    고물가 폭탄, 장바구니 비명 뾰족한 대책이 없다

    *근원물가란 석유류, 농산물 등 가격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하고 계산한 소비자물가지수.<BR>근원물가 상승률이 높다는 것은 물가상승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중장기적 흐름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접근은 소비자에 대한 ‘오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입의류 판매업체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은 인터넷이나 해외여행 등을 통해 외국에서 더 싸게 팔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국내에서 돈을 더 주고 구매한다”며 “관세청의 수입단가 공개가 그다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 정유업체 관계자 또한 “리터당 50원이 싼 주유소보다 50원이 더 비싸더라도 세차장을 갖춘 주유소가 장사가 더 잘되는 게 현실”이라며 “소비자들은 가격(price)이 아닌 가치(value)를 추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개시 초기 30만명을 넘어섰던 오피넷 하루 방문자 수가 현재는 4만~5만명 수준으로 뚝 떨어진 상태다. 한 경제전문가는 “기업들이 수입단가가 공개된 상품을 국내로 들여오길 꺼리게 된다면 시장에 왜곡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52개 품목의 물가관리 대상이 선정된 이후 통계청은 열흘에 한 번 52개 품목의 가격동향을 조사해 기획재정부에 보고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 관계자는 “소비자물가는 한 달에 한 번 나와 대응하기에 늦다”면서 “좀더 빨리 가격동향을 알아내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서민 물가 집착 … ‘강부자’ 정권의 콤플렉스 탓인가

    52개 품목 가운데 가격 상승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돼지고기. 4월 돼지고기 값은 전월 대비 13.1% 올랐다. 열흘마다 돼지고기 값 상승치를 받아보고 있는 농림식품수산부 소비안전과 관계자는 “뾰족한 대책은 없다”면서 “다만 삼겹살에 집중된 돼지고기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돼지고기 저지방 부위의 요리법을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위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더라도 몇 달 지나면 돼지고기 수입량이 증가해 가격이 다소 안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유류세 10% 인하, 석유류 및 곡물류 할당관세 인하 등의 조치는 가파른 물가상승세 탓에 거의 존재 의미를 잃은 상태다. 국제 곡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청정사료인 청보리 재배 면적을 넓힌다는 대책은 한우 농가에만 희소식일 뿐, 배합사료를 쓰는 돼지 닭 농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다. 또 국제 사료값이 30% 이상 올랐기 때문에 관세 인하 효과는 미미한 형편이다.

    이명박 정부가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물가 잡기에 열심인 이유는 잡으면 잡힌다는 구시대적 믿음 때문일까, 아니면 ‘강부자 정권’의 콤플렉스 탓일까. 청와대 핵심 비서관은 최근 사석에서 “52개 품목을 선정할 때부터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데 과연 효과가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고(高)물가 시대. 정부가 무슨 노력을 하든 서민의 주름살만 깊어가고 있다.

    서민생활 안정화정책 주무부처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실무자 전화인터뷰

    “물가 낮추기 현실적 어려움 … 그래도 최선 다하고 있다”


    - 정부의 물가관리 정책이 물가를 낮추리라 보는가.

    “국제유가 및 곡물가 상승이 매우 높다. 현실적으로 물가를 낮추는 것은 어렵다. 정부는 그 여파가 최대한 국민에게 가지 않도록 완화하고자 한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말씀만 드릴 수 있겠다.”

    - 정부의 물가관리 정책이 그다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떤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에게는 가격통제 수단이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된다. 원가가 올라 물가가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유류세도 인하했고 주유소 가격도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런 게 성과 아닐까.”

    - 52개 생활필수품 가격이 정부의 집중 관리 발표 이후에도 계속 오르고 있다.
    “52개 품목의 물가상승률이 높지 않으면 좋겠지만, 현재 같은 추세에서 높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 품목에 대한 물가관리 목표치를 따로 세워둔 것은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오른 품목에 대해 하나씩 대책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 시장참여자를 늘려 경쟁을 촉진하면 가격이 인하되는 효과가 있으리라 판단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입 석유제품에 대한 할당관세 인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내가격이 국제가격보다 싸기 때문에 수입되는 휘발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먼저 시장 문을 열어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가격 자체는 원래 매번 엎치락뒤치락한다. 업자들 말로는 경유의 경우 일본에서 들여올 수 있는 여지가 꽤 있다고 한다.”

    - 지금까지의 물가관리 대책 가운데 성과를 거둔 게 있다면?

    “유류세 및 할당관세 인하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나름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한 것이라 본다. 이로 인해 약 6000억원의 세수가 감소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간 최대 0.1% 인하 효과가 있다. 물론 물가가 많이 올라 이러한 인하 효과가 눈에 보이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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