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6

2008.05.20

웃음 97%+진지 3%로 조제된 ‘항우울제’

  • 현수정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08-05-13 17: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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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97%+진지 3%로 조제된 ‘항우울제’

    ‘닥터 이라부 에피소드1’은 오쿠다 히데오의 베스트셀러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이라부가 환자들을 치료하는 방식은 절로 웃음을 머금게 한다.

    광속으로 교환되는 정보와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맥박에 가속이 붙는 것을 느끼고,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진짜 같은 가짜 살인을 수없이 목격하며 트라우마를 쌓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경강박증’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신경강박증 환자들과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닥터 이라부 에피소드1’(이하 ‘닥터 이라부’·작/연출 김동연)은 이 시대의 고달픈 관객들에게 배시시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괴롭고 힘들고 짜증나고 두렵고 걱정이 된다면 주사나 한방 맞자. 유쾌한 닥터 이라부가 있잖아.”(‘이라부 송’)

    이 연극이 일관되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1990년대에 유행했던 바비 맥퍼린의 ‘돈 워리 비 해피’, 혹은 최근의 국내 CF 음악인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 등을 연상시키는 ‘인생 뭐 있어? 마음먹기 나름이야’ 식의 정서다. 관객들은 극의 초반에 등장인물들이 다 함께 부르는 ‘이라부 송’을 들으며 이 작품을 어떤 자세로 관람할지 눈치채고 웃을 준비를 한다. 갖가지 강박증에 시달리는 인물들의 상황은 웃기면서도 측은하고, 이들에 대한 이라부의 시선은 연민을 담고 있으면서도 시니컬하다.

    조명이 켜지면 이라부가 사회자로서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선단공포증에 시달리는 30대 초반의 조직폭력배 강철근, 스토커들이 자기를 쫓아다닌다는 피해망상을 보이는 20대 말의 행사도우미 나혜리, 그리고 억눌러왔던 화를 음경강직증이라는 엉뚱한 증상으로 나타내는 30대 중반의 회사원 김수남. 이들은 모두 이라부와의 상담을 통해 치유된다. 강철근은 적성에 맞지 않는 조폭 일을 그만두고, 나혜리는 스스로에 대한 과장된 이미지를 버리고 평범한 모습을 받아들이며, 김수남은 참아왔던 화를 표출하면서 각자의 강박증에서 벗어난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이라부와 간호사의 비일상적이고 기괴한 캐릭터는 이 작품의 희극성을 강조한다. 이라부는 환자들의 소송을 떼로 받아 마땅한 사이비 의사스러운 행동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리고 다크서클이 눈가에 가득한 간호사 마유미는 채찍만 들면 바로 SM 플레이를 시작해도 될 듯한 모습인데, 차가운 표정과 ‘쭉쭉빵빵’ 몸매로 엽기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그녀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성적인 판타지를 느끼게 한다.

    이라부의 치료 방법은 주책 맞을 정도의 천진스러운 모습으로 환자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의 상황에 의리 있게 동참하는 것. 이 때문에 강철근과 조폭들의 모임에 나가고, 나혜리를 따라 뚱뚱한 배를 출렁이며 배우 오디션에 지망하며, 김수남과 함께 바람을 피우고 그를 떠난 전처에게 쳐들어간다. 즉, 환자들을 부추겨 경직된 마음을 풀고 그들이 스스로 집착하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작전이다.



    ‘닥터 이라부 에피소드1’은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 중 ‘고슴도치’와 ‘인더풀’ 가운데 ‘도우미’ ‘아, 너무 섰다!’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결론과 상황 등에서 변화를 주었으나, 기본적인 캐릭터와 대사는 대부분 활용했다.

    강박증에 시달리는 인물들 연민과 시니컬하게 바라보기

    작품 컨셉트에 맞게 효과적으로 무대화한 부분들이 돋보이는데, 등장인물들이 노래로 극의 시작과 끝을 유쾌하게 알린다거나 갑자기 마이크를 꺼내 들고 각각의 테마송을 부르는 등 ‘쇼’적인 부분, 극중극과 일인 다역을 세련되게 활용한 점 등이다.

    그러나 에피소드들의 이음새가 거친 면이 있다. 일관된 시점도, 중심이 되는 인물도 드러나지 않는다. 초반에는 이라부가 사회자로 등장했으나, 이후부터 사회자로서 그는 실종됐다. 세 개의 에피소드가 각 환자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만큼 전체를 꿰는 극적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닐 사이먼의 ‘굿 닥터’에서 굿 닥터가 사회자 역할을 중간중간 견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배우들이 노래할 때 마이크는 소품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소리의 균형이 안 맞고 소극장에서 소화하기에 음량이 과한 감이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웃음의 밑바닥에 깔린 페이소스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강철근이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김수남이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것은 다소 엉뚱한 해결방식으로 보인다. 배우들의 재치 있는 연기는 ‘개그 콘서트’ 식의 유머를 살려내는 데 성공했으나, 양념이 많아서 본재료의 맛이 가려진 면이 있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괴로운 상황을 희화화한다면 분노감을 느낄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아픔을 눈앞에서 비통하게 재현해준다면 반사적으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질 것이다. 부담스럽지 않게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극 ‘닥터 이라부’처럼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처방을 내리지는 않지만, 웃음 97% + 진지 3%로 만든 ‘항우울제’를 투여하는 것도 괜찮은 ‘소통’ 방법이 아닐까. 웃음의 완급만 좀더 예민하게 조절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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