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6

2008.05.20

밀고 당기는 ‘며느리 리더십’ 시어머니 춤추게 한다

시댁 식구 성향 이해는 필수 … 고부간 영역 구분, 협조대상 만들면 갈등 ‘뚝’

  • 박정희 전 숭의여대 교수·‘고부관계의 심리학’ 저자 dugi88@hanmail.net

    입력2008-05-13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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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고 당기는 ‘며느리 리더십’ 시어머니 춤추게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 이원미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가족관계는 너무 멀어도 문제가 되고 너무 가까워도 문제가 된다. 고부관계도 그렇다. 그러나 적당한 관심과 거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건강한 관계 유지를 위해선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한다. 고부관계, 다루지 않으면 당할 수 있다. 행복한 가족생활을 꾸리려 한다면 ‘며느리 리더십’을 발휘해보라.

    시어머니는 친정어머니가 아니다 |며느리는 생애 ‘두 번째 어머니’ 앞에서 늘 친정어머니와 비교하게 된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결코 친정어머니처럼 할 수 없다. 시어머니(mother-in-law)는 법적으로 맺어진 형식적인 관계다. 낳고 길러준 친정어머니(biological mother)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차피 모든 인간관계는 생면부지의 만남을 시작으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시어머니에게 친정어머니 역할을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면 고부간 사랑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문화차이형’ 사례처럼 ‘서울 아가씨’들은 문화충격에 맷집이 약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결혼 전 ‘남친’이 살던 지역과 시댁 식구의 성향을 이해하는 게 필수다.

    사랑이냐 핏줄이냐 |고부갈등이 생겼을 때 남편에게 ‘어머니냐, 나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부부관계가 허물없는 무촌(無寸) 관계이긴 하지만, 모자관계는 부부관계보다 앞서 맺어졌다. 남편에게 ‘사랑’이냐 ‘혈육’이냐를 놓고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요구다. 모자관계를 인정해주면서 며느리로서의 입장과 고충을 전달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역(逆)고부갈등’을 겪는 이 시대의 사위들도 시어머니를 장모로 바꿔 다시 읽어보라.

    며느리, 독립 만세 |결혼을 하면 아들은 어머니에게서 심리적·정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결혼 전과 같은 모자관계가 그대로 유지될 때 부부관계에 금이 가기도 한다. 또한 시댁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도 고부관계를 바로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 독립이 없는 한 간섭(?)을 피할 수 없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부부 두 사람이 해결해보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필수적이다. ‘외국인 며느리’도 스스로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갈등 해결의 첫걸음이다.

    칭찬은 시어머니도 춤추게 한다 |세상에 좋은 성격이란 없다. 각자 장점과 단점이 있고, 그에 대한 개인의 선호가 있을 뿐이다. ‘애정과잉형’‘아들집착형’처럼 사사건건 관심이 많은 시어머니는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염려가 많은 것이다. 투정하는 ‘궁상형’ 시어머니는 나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것이다. ‘엘리트형’ 시어머니와 힘겨루기를 할 때 오히려 “어머니 덕분에 제가 점점 세련돼지는 것 같아요”라며 권위를 받아주라. 그러면 시어머니는 며느리와의 힘겨루기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계속 권위를 앞세운다면 과감히(!) 무시하자. 싸우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면 생각보다 게임은 쉽게 끝난다. 시어머니를 좀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여러 사람 앞에서 아낌없이 표현해보라. 칭찬은 시어머니도 춤추게 한다.



    참다가 망한다 |앞의 기사 ‘연상 며느리’ 갈등 유형을 보라. 원인은 간단하다. 팔이 안으로 굽듯 시어머니는 대개 자기 자식의 입장부터 헤아리게 된다. 또 ‘동서비교형’ 사례처럼 시어머니도 신이 아닌 이상 며느리들을 매번 공평하게 대할 수는 없다.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말은 아니다. 때로는 냉정하다 못해 발칙하다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할 말은 하는 게 좋다. 다만 같은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묘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너는 왜 그렇게 하느냐’ 대신 ‘나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식의 제안이 훨씬 더 생산적이란 걸 명심하자.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 |딸네만 김치를 해다 주는 시어머니가 야속할 수 있다. 그러나 시어머니 입장은 다르다. 딸이야 내 손으로 담근 김치 맛에 익숙하지만, 며느리 입에는 안 맞을 수 있다. 또 김치나 갖다 주고 생색낸다 할까봐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고부끼리 이런저런 서운함을 들고 티격태격하다 보면 어느새 명분은 사라지고 입장 차이만 남는다. 싸움이 터지기 전에 한 번 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고부간 영역을 구분하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똑같은 역할을 할 때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럴 땐 일을 분담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시장 볼 목록은 시어머니가 정하고 시장 보러 가는 것은 며느리가 한다거나, 김치는 시어머니가 담그는 대신 며느리는 다른 반찬을 만들 수 있다. ‘애정과잉형’ ‘세대차이형’ 갈등을 겪고 있다면 영역 구분부터 해보자.

    싸움을 준비한다면 책임을 다하라 |생활비나 용돈 드리기, 안부전화 드리기처럼 아들 부부로서 해야 할 책임은 확실히 해두는 게 좋다. 그래야 나중에 권리 주장도 수월해진다. 그러나 인격모독이나 무리한 요구가 있을 때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따라서 며느리는 스스로 어떤 한계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양보할 것과 무시할 것, 단호히 대처할 것을 구별해야 한다. 가장 어리석은 것은 큰 것을 참다가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것이다.

    시댁 가족을 활용하라 |시어머니와 잘 지내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는 며느리가 있다면, 시어머니를 잘 아는 분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게 뭔지, 특별한 버릇이나 습관이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이다. 의외로 쉽게 협조자를 구할 수 있다. ‘연상 며느리’는 시누이를 활용하면 좋을 듯.

    당신도 시어머니가 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하는 소리가 있다. “너도 나중에 ‘시에미’ 돼봐라.” 그렇다. 며느리도 언젠간 시어머니가 될 수 있다. 시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시어머니의 존재’를 여성으로서의 삶 속에서 조망할 때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

    ‘아들의 스탠스’는 어떻게

    문제 발생 땐 일단 숨고르기중립적 태도는 해결 미루는 것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낀 아들의 ‘스탠스’는 어떠해야 할까.박정희 전 숭의여대 교수는 문제가 생기면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자리에서 ‘이렇게 하겠다’ 결정하지 말고 ‘집에서 아내와 상의해 말씀드릴게요’하며 일단 자리를 피하라고 충고한다. 모자관계는 이미 형성됐지만 부부관계, 고부관계는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만큼 고부관계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아내와 상의한다고 하면 시어머니도 ‘아들이 가정을 가졌구나’ 하고 며느리를 인정하게 되죠. 어머니의 역정을 순간 회피하려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아내는 더욱 서운한 마음이 들 거예요.” 그는 “‘중립적인 태도’만 유지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이라며 “하지만 똑소리 나는 방법은 없다. 너무 ‘이론적’이어서 각자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고 덧붙였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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