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7

2008.03.18

대통령 취임식 음악감독 대중 곁으로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8-03-12 14:2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통령 취임식 음악감독 대중 곁으로
    2월25일 열린 17대 대통령 취임식의 음악감독은 30초 만에 결정됐다. 대통령직취임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범훈 중앙대 총장은 영화음악가 지박(31·Ji Bark·본명 박지웅) 씨의 곡을 30초 듣고는 “취임식 음악을 전부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짠 줄 아느냐”는 오랜 경륜의 국악가의 말에 관계자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후문이다.

    지박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박 총장의 결정에 공감할 만하다. 여덟 살 때 미국 뉴욕으로 이민 간 그는 고등학생 때 RCA 클래식작곡경연대회에서 ‘젊은 작곡가상’을 받았다. 이어 줄리어드음대에 진학해 클래식 작곡을 공부하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의 음악감독을 맡아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존 코리글리아노 교수의 조언으로 영화음악으로 전향했다. 버클리음대, 영화음악의 명문 UCLA에서 수학했으며 23세에 세계적 권위의 영화음악상 ‘제리 골드스미스’상을 받았다. 최연소, 그리고 동양인 최초의 수상이었다. 2001년과 2002년 미국음악가협회(ASCAP)에서 주최한 작곡대회에서 2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네다섯 살 때부터 ‘주말의 영화’를 즐겨 봤어요. ‘엠마누엘’ ‘남과 여’ ‘슬픔은 어느 별 아래’ 등을 보면서 영화 속 음악에 푹 빠져 지냈죠. 동네 레코드가게에 가서 1000원 주고 카세트테이프에 영화음악을 녹음해 계속 듣기도 했고요.”

    그는 밥 먹고 잠자는 것 외에는 음악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책을 사다 오선지에 음표 그리는 것을 혼자 터득했으며, 집 근처 링컨도서관에서 악보와 CD 등을 빌려와 외우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음악가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그 버릇은 지금도 남아 요즘도 하루 서너 시간만 잔다고 한다. 그의 매니저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곡만 해도 3000곡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2003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그는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어 ‘사마리아’의 음악감독도 맡았던 그는 요새 김 감독의 차기작 ‘비몽’(오다기리 조, 이나영 주연)의 음악을 제작 중이다. 김 감독이 열흘 만에 70곡이나 작곡해달라고 주문했다는데, 그는 정작 “‘사마리아’ 때는 3박4일밖에 주지 않았다”며 태연하다. 어려서부터 항상 음악을 만들며 살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너끈하단다.



    대통령 취임식 음악감독을 맡았던 것을 계기로 그는 대중 앞에 서는 기회를 좀더 많이 가질 예정이다. 최근 2년간 작업한 30곡의 오라토리오(성담곡·聖譚曲)를 내년에 발표할 계획이며, 세계 진출을 앞두고 있는 ‘발레리나를 사랑한 B보이’의 음악 또한 진행할 예정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갈라콘서트 음악감독 제의도 받았으며, 여러 편의 영화 작업도 예정돼 있다.

    “저는 그림을 많이 그려놨지만 아직 전시회를 열지 않은 화가와 같아요. 앞으로는 더 많은 곡을 대중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댓글 0
    닫기